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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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인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에게 한결같이 솔선중랑장의 벼슬을 주고 인수를 주었다. 6년에 조서를 내려 왜국의 난두미에게 황색 깃발을 하사하고 인수를 주었다. 8년에는 태수 왕기가 대방군으로 부임했다. 왜국의 여왕 비미호와 구노국의 남왕(南王) 비미궁호(卑彌弓呼) 사이에 불화해서 왜의 재사(載斯)·오월(烏越) 등이 대방군으로 파견되어 두 나라 사이에 서로 공격하는 모양을 보고했다. 이에 중국에서는 색조연사(塞曹 史) 장정(張政) 등을 보내서 조서와 황색 깃발을 내려 난승미에게 벼슬을 주고 깨우치도록 했다.
비미호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직경이 백여 보나 되었다. 노비 백 명 이상이 순장되었다. 비미호의 뒤를 이어 남왕을 세웠으나, 온나라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고 저희끼리 서로 죽이고 싸워서, 이때 죽은 사람만도 천여 명이나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비미호의 일가 딸 일여(壹與)를 세웠다. 이때 일여의 나이는 겨우 30세였는데, 나라 안의 인심이 정해졌다. 장정 등이 일여를 타이르는 격문을 보냈다. 일여는 왜의 대부로 솔선중랑장 액사구 등 20명을 보내 와서 뵙고, 남녀 노예 30명을 헌상하고, 흰 구슬 50덩이, 청대구주(靑大句珠) 두 장, 이문잡금(異文雜錦) 20필을 바쳤다.
*평하여 말한다.---<<사기>>나 <<한서>>는 조선이나 양월(兩越 ;南越과 東越)의 일을 기록하였고, 후한의 역사서는 서강(西羌)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위나라 시대에는 흉노가 마침내 쇠퇴해가면서, 다시 오환·선비가 나타났다. 이어 동이에 이르러서는 통역을 통해 사신이 늘 왕래했다. 역사의 기술이란 사건에 따라야 하니, 어찌 평범한 일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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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3.11.12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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