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보엠`의 의미
2. 토스카니니에 의한 초연
1) 푸치니
2) 오페라
3) 악기편성
4) 볼프
5) 브람스
6) 모짜르트
7) 리스트
8) 세자르 프랑크 (Cesar Franck, 1822-1890)
9)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10) 멘델스존, 펠릭스 Felix Mendelssohn(1809 ~ 1847 / 독일)
2. 토스카니니에 의한 초연
1) 푸치니
2) 오페라
3) 악기편성
4) 볼프
5) 브람스
6) 모짜르트
7) 리스트
8) 세자르 프랑크 (Cesar Franck, 1822-1890)
9)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10) 멘델스존, 펠릭스 Felix Mendelssohn(1809 ~ 1847 / 독일)
본문내용
했다. 드뷔시의 작품 「프렐류드」도 그의 작품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5인조그룹 중에서는 특히 보로딘이 라벨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드뷔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라벨의 상당 작품들에서는 프랑스 로코코의 목가풍이 반영되어 있다(예, 라모에 근접된 양식). 쿠프랭과 라모 이상으로 라벨의 흥미를 끈 것은 스카를랏티의 기교적 측면이었다. 이것은 이미 리스트에 가까운 그의 작품 「물의 희롱」(Jeux d'eau)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리스트의 역동적인 기교주의와는 다르게 라벨의 기교적 작품들은 세밀한 음향구성에도 강하게 집착하는 면을 보여준다.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라벨의 멜로디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선을 가진다. 화성에서는 높은 3도층들이 즐겨 사용된 반면 증3화음이나 온음음계 등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폴리포니적 작곡경향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삼중주의 파싸칼리아 등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복조성도 가끔씩 발견된다. 라벨의 작품에서는 또한 오스티나토 기법 등이 곡의 뼈대로 자주 사용된다. 예로써 G장조 피아노 콘체르토의 중간악장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오스티나토 기법을 연상시킨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당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볼레로」역시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개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두개의 오스티나토 선율이 많은 악기들이 점차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취적인 ff로 상승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순성을 이용하여 의식적(儀式的) 효과를 거둔다. 즉, 모티브작업도 없고 섬세한 형식도 없으며, 전조조차 하지 않다가 끝에 가서야 E장조로 전조한다.라벨은 오랫동안 심도있게 숙고를 하는 반면 빠르게 악보를 써내려가는 작곡방법을 가졌다. 작품을 위해 쓰여진 스케치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주요작품>
<물의 희롱>(1901), 현악사중주 F장조(1902-03), 소나티네(1903-05), 거울(1904-05), 밤의 가스파르(1908),
관현곡 <스페인 광시곡>(1908),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1908), <마 메르 루와>(1911),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1911),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11), 스페인의 시간(1911), 피아노삼중주(1914),
쿠프랭의 무덤(1917), 왈츠(1920), 치가느(1924), 어린이와 요술(오페라, 1925),
<볼레로>(1928),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1930), <피아노 협주곡 G장조>(1929-1931),
▶멘델스존, 펠릭스 Felix Mendelssohn(1809 ~ 1847 / 독일)
'멘델스존'은 1809년 2월 3일 독일 함부프크에서 태어나, 1847년 11월 4일 역시 독일의 라이 프찌히에서 38세로 세상을 떠난 독일 낭만파 작곡가이다. 멘젤스존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작곡가로서, 낭만주의 음악이 개화한 중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음악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유태인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역사상 음악가로서는 보기 드문 부유한 가족 환경에서 자랐고, 또한 일생을 경제적인 구애나 빈곤을 모르고 지냈다. 이러한 환경이 음악가로서의 '멘델스존'에게 플러스가 되었는지 또는 마이너스가 되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의 기질과 더불어 그의 음악이 밝고 경쾌한 반면, 중후한 맛이나 심각성이 없다는 대조적 반응이 이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과거의 전통이나 질서에 대해 부정적 태도나 저항을 하는 사례에 비하여 그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기존형식을 아무 주저없이 받아 들이는 보수적인 작곡가였다.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을 주로 베를린에서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데다가 일찍부터 모친으로부터 피아노지도를 받았으며 후에 피아노를 베르거에게, 그리고 작곡을 체르터에게 배우는 등 부모의 각별한 배려로 윤택한 음악 교육을 받아 일찍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9살 때 공개 연주를 하였고 11살때부터는 작곡을 시작하였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 의한 유명한 서곡을 쓴 것은 그의 나이 불과 17살때의 일이다. 그는 여러 차례의 여행으로 북쪽은 스코틀랜드로부터 남쪽은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온 유럽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러한 여행을 통해 가는 곳마다 인상과 감흥을 통 해 작곡의 소재를 얻어 작품을 썼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고전주의 적인 형식감을 이어받아 여기에 묘사적이고 표제적인 내객을 담은 작품들로 지방색이 짙은 리듬이나 멜로디, 여기에 색채적인 관현악법 등 낭만적인 감각이 짙게 풍긴다. 멘젤스존은 또한 1833년부터 듕셀르도르프의 교회음악과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서, 그리고 케른의 라인 음악제의 지휘자로서도 활약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그는 창작가로서 뿐 아니라 연주가로서 지휘자로서 또한 교사로 서 분망한 생활을 해야했고 라이프찌히에 음악학교를 설립하는등, 사회적인 책임도 무거워져 겹친 과로로 38세라는 단명으로 일생을 마쳤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보는 보수주의적인 음악가였으나, 그를 단적으로 말하면 정신은 낭만주의에다 형태는 고전주의적 질서와 조화의 감각을 가진 작곡가라고 하겠다. 그의 형식이 완벽에 가깝도록 완성된 데 비해 심각한 내객이 부족한 탓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감동이 없다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그의 생활 환경이 너무나 행복하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현실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 각된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에서 강렬한 열정이나 비창은 느낄 수 없지만, 밝은 빛과 시적이고 그림처럼 경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세련된 형식은 그의 약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요작품>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1842] 교향곡 4번 "이탈리아" [1833] 교향곡 5번 "종교개혁" [1832]
서곡 "한 여름밤의 꿈" [1826] "핑갈의 동굴" [1832] "성 바울" [1836] "무언가" [1829-45]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라벨의 멜로디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선을 가진다. 화성에서는 높은 3도층들이 즐겨 사용된 반면 증3화음이나 온음음계 등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폴리포니적 작곡경향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삼중주의 파싸칼리아 등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복조성도 가끔씩 발견된다. 라벨의 작품에서는 또한 오스티나토 기법 등이 곡의 뼈대로 자주 사용된다. 예로써 G장조 피아노 콘체르토의 중간악장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오스티나토 기법을 연상시킨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당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볼레로」역시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개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두개의 오스티나토 선율이 많은 악기들이 점차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취적인 ff로 상승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순성을 이용하여 의식적(儀式的) 효과를 거둔다. 즉, 모티브작업도 없고 섬세한 형식도 없으며, 전조조차 하지 않다가 끝에 가서야 E장조로 전조한다.라벨은 오랫동안 심도있게 숙고를 하는 반면 빠르게 악보를 써내려가는 작곡방법을 가졌다. 작품을 위해 쓰여진 스케치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주요작품>
<물의 희롱>(1901), 현악사중주 F장조(1902-03), 소나티네(1903-05), 거울(1904-05), 밤의 가스파르(1908),
관현곡 <스페인 광시곡>(1908),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1908), <마 메르 루와>(1911),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1911),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11), 스페인의 시간(1911), 피아노삼중주(1914),
쿠프랭의 무덤(1917), 왈츠(1920), 치가느(1924), 어린이와 요술(오페라, 1925),
<볼레로>(1928),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1930), <피아노 협주곡 G장조>(1929-1931),
▶멘델스존, 펠릭스 Felix Mendelssohn(1809 ~ 1847 / 독일)
'멘델스존'은 1809년 2월 3일 독일 함부프크에서 태어나, 1847년 11월 4일 역시 독일의 라이 프찌히에서 38세로 세상을 떠난 독일 낭만파 작곡가이다. 멘젤스존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작곡가로서, 낭만주의 음악이 개화한 중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음악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유태인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역사상 음악가로서는 보기 드문 부유한 가족 환경에서 자랐고, 또한 일생을 경제적인 구애나 빈곤을 모르고 지냈다. 이러한 환경이 음악가로서의 '멘델스존'에게 플러스가 되었는지 또는 마이너스가 되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의 기질과 더불어 그의 음악이 밝고 경쾌한 반면, 중후한 맛이나 심각성이 없다는 대조적 반응이 이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과거의 전통이나 질서에 대해 부정적 태도나 저항을 하는 사례에 비하여 그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기존형식을 아무 주저없이 받아 들이는 보수적인 작곡가였다.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을 주로 베를린에서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데다가 일찍부터 모친으로부터 피아노지도를 받았으며 후에 피아노를 베르거에게, 그리고 작곡을 체르터에게 배우는 등 부모의 각별한 배려로 윤택한 음악 교육을 받아 일찍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9살 때 공개 연주를 하였고 11살때부터는 작곡을 시작하였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 의한 유명한 서곡을 쓴 것은 그의 나이 불과 17살때의 일이다. 그는 여러 차례의 여행으로 북쪽은 스코틀랜드로부터 남쪽은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온 유럽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러한 여행을 통해 가는 곳마다 인상과 감흥을 통 해 작곡의 소재를 얻어 작품을 썼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고전주의 적인 형식감을 이어받아 여기에 묘사적이고 표제적인 내객을 담은 작품들로 지방색이 짙은 리듬이나 멜로디, 여기에 색채적인 관현악법 등 낭만적인 감각이 짙게 풍긴다. 멘젤스존은 또한 1833년부터 듕셀르도르프의 교회음악과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서, 그리고 케른의 라인 음악제의 지휘자로서도 활약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그는 창작가로서 뿐 아니라 연주가로서 지휘자로서 또한 교사로 서 분망한 생활을 해야했고 라이프찌히에 음악학교를 설립하는등, 사회적인 책임도 무거워져 겹친 과로로 38세라는 단명으로 일생을 마쳤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보는 보수주의적인 음악가였으나, 그를 단적으로 말하면 정신은 낭만주의에다 형태는 고전주의적 질서와 조화의 감각을 가진 작곡가라고 하겠다. 그의 형식이 완벽에 가깝도록 완성된 데 비해 심각한 내객이 부족한 탓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감동이 없다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그의 생활 환경이 너무나 행복하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현실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 각된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에서 강렬한 열정이나 비창은 느낄 수 없지만, 밝은 빛과 시적이고 그림처럼 경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세련된 형식은 그의 약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요작품>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1842] 교향곡 4번 "이탈리아" [1833] 교향곡 5번 "종교개혁" [1832]
서곡 "한 여름밤의 꿈" [1826] "핑갈의 동굴" [1832] "성 바울" [1836] "무언가" [1829-45]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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