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평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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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평화`(平和)에 관한 연원적 고찰
1. 고대 희랍세계의 평화관 : Eirene
2. 로마제국의 평화관 : Pax
3. 구약성서의 평화관 : Shalom

Ⅱ. 기독교 평화운동의 역사적 발전과 유형
1. 평화지상주의 운동
1) 첫 3세기 동안의 평화지상주의
2) 종교개혁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평화지상주의
3) 재세례파와 메노나이츠의 평화운동
4) 퀘이커의 평화주의운동
2. 의로운 전쟁론에 따른 평화운동
1)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의로운 전쟁론`
2) 루터와 칼빈의 의로운 전쟁론
3) 성전론적(聖戰論的) 평화운동

본문내용

살펴보면, 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통치(regnum Dei)와 악마의 통치(regnum diaboli)의 투쟁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하나님의 통치는 '교회'와 '국가'의 두 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둘은 상호간에 역할이 구분되지만 악마의 통치에 대한 투쟁에 는 함께 기여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나름대로 복음에 대한 합법성을 지니고 있고(justitia Dei), 국가도 또한 그 나름대로의 합법성(justitia civilis)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합법성은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그는 종교개혁좌파에 속하는 평화지상주의자들이 오직 신약성서의 산상수훈
) 마태복음 5-7장
만을 매우 중시했던데 반해, "세상권세에 복종하라"고 하는 로마서 13장의 사도바울의 가르침
) 로마서 13:1-7
을 아울러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윤리에 있어서는 '산상수훈'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타자를 위한 정치 윤리에 있어서는 세상인(Weltperson)으로서의 로마서 13장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전쟁은 개인윤리가 아닌 정치윤리의 차원이므로 그것은 국가가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며, 따라서 루터는 당시의 집권 영주층의 정치적 권세에 대항한 어떤 무력적 항거도 성서적으로 옳지 않다고 파악한다. 그는 불의한 전쟁에는 참여하지 말되 그것이 정의로운지 불의한지 판단하기가 애매할 때는 세속권위 내지는 국가의 결정에 복종하라고 말할 정도이다.
) 루터의 두왕국론은 문제가 있다. 왜냐면, 어떤 권력체 또는 국가권력 모두가 신으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나치정권의 경우 나치정권은 루터의 두왕국론을 스스로의 도덕적·종교적 정당화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칼빈(Johan Calvin)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의로운 전쟁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칼빈 자신은 군사주의에 반대했으며 심지어는 스위스가 군수산업에 개입하는 것조차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그는 악을 처벌하기 위해서 때로는 전쟁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고도 본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causa justa) 또는 국방을 위해 다른 수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마지막에 취할 수 있는 수단일 경우(debitus modus)에 한한다고 했다. 또 루터가 교회와 국가가 역할분담으로 국가의 평화성취를 외향적인 국가의 합법성(justita civilis) 회복에 한정시킨 데 반하여, 칼빈은 국가의 평화의무에 교회의 합법성(justita Dei)도 포함된다고 보았다. 그것은 주지하는 대로 칼빈의 신정통치(Theokratie)에 근거하는 것이고, 이미 제네바에 신정을 실행한 바도 있다.
또한 칼빈은 그의 신정론에서 국가권력의 절대화를 신의 절대주권을 내세워 철저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전자가 후자에 철두철미하게 종속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가리켜 칼빈의 '그리스도 왕권론(Konigsherrschft Christi)이라 이름한다. 루터가 군주(국가)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 데 반해 칼빈은 군주(국가)의 폭정에 관한 철저한 '저항권(Widerstandsrecht)'을 인정하며 루터가 군주국, 국교를 선호한 데 반하여 칼빈은 민주국, 자율형태의 교회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의로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합법적 실체가 루터의 경우에는 국가에 무한대로 주어진 반면(물론 복음에 입각함을 전제로), 칼빈에게는 저항권을 인정한다는 조건부로 국가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합법적 당국(legitima potestas)에 관한 양자의 입장 또한 서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3) 성전론적(聖戰論的) 평화운동
성전론은 말하자면, 앞에서 살핀 의로운 전쟁의 극대화 내지는 왜곡화라고 볼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 우리는 중세기의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1096∼1099, 1147∼1149, 1189∼1192, 1202∼1204, 1217∼1221, 1228∼1229, 1248∼1254, 1270∼1272)을 들 수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전쟁은 교황에 의한 군사주의적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이며, 기독교 선교와 지배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그 배후에서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이 함께 고려되었고, 그리스도의 의용군(militia Christi)이라는 종교군사주의의 확대, 이에 따른 참전자들의 종교적 특전(예 : 전면적 면죄부 발행), 경제적 특전 및 천국에서의 구원의 약속 등등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이러한 성전(Crusade)의 원형을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성전(Holy War) 사상에서 찾으려 든다. 실제로 구약성서에는 야훼의 성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전(Crusade)에서 등장한 경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른바 야훼의 전쟁(War of YHWH)이라 일컫는 성전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적대자들이 동시에 하나님의 적대자들인 점.
둘째로 인간의 참여가 배제된 철저한 하나님 자신의 전쟁이라는 점.
셋째로 이스라엘 생존권을 위한 전쟁이라는 점.
넷째로 하나님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자신의 구원의 축복 속에 포함시킨다는 점.
다섯째로 이방신에 속한 적들의 섬멸로 야훼의 주권을 세운다는 점.
여섯째로 지배이념에 의한 정복전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약자, 가난한 자를 세우기 위한 '희년실천'으로서의 해방전쟁이었다는 점 등이다.
참고문헌
1.『평화-이론과 실천의 모색(Ⅱ)』(한신대 평화연구소, 삼민사, 1992.)「기독교 평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유형」.
2. H. Fuch, Ausustin und der antike Friedensgedanke, Berlin / Zurich, 1965(2판), p. 39.
3. J. Moltmaan, Gerechitigkeit schafft Zukunft, Friedenspolitik und Schopfungsethik in einer bedrohten Welt (Munchen, 1989), pp. 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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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8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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