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김두한의 생애
1)유년기 및 청년기(~해방)
2)30대 이후 <정치가로서의 삶>
2. 김두한 : 사회심리학적 분석
1)Erikson의 이론 5단계 - 정체감 대 역할혼미 (청년기 12~20세)
2)Erikson의 이론 6 단계 - 친밀감 대 고립감(초기 성인기)
3)Erikson의 이론 7단계 - 생산성 대 침체감(성인중기)
3. 김두한의 생태학적 분석 / 거시체계 분석
1)일제 시대
2)해방 직후
3)유신 체제
Ⅲ. 결 론
Ⅱ. 본 론
1. 김두한의 생애
1)유년기 및 청년기(~해방)
2)30대 이후 <정치가로서의 삶>
2. 김두한 : 사회심리학적 분석
1)Erikson의 이론 5단계 - 정체감 대 역할혼미 (청년기 12~20세)
2)Erikson의 이론 6 단계 - 친밀감 대 고립감(초기 성인기)
3)Erikson의 이론 7단계 - 생산성 대 침체감(성인중기)
3. 김두한의 생태학적 분석 / 거시체계 분석
1)일제 시대
2)해방 직후
3)유신 체제
Ⅲ. 결 론
본문내용
보자.
김두한이 개성의 외숙댁에 있을 때의 일이다. 김두한의 외숙집 옆에 계란빵 장사를 하는 노인 한 분이 있었다. 그 때 당시 김두한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놀고 있었으므로 곧잘 계란빵 장사 가게에 들리곤 했다. 하루는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계란빵 영감님 집을 들렀는데, 빵을 굽던 영감님이 일은 안하고 울고 있었다. 김두한은 “아저씨 왜 우세요.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물으니 “우리나라의 훌륭한 애국자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하고 대답했다. 김두한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계란빵 영감님이 말하는 애국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외숙댁에 돌아온 김두한은 또 다시 외숙의 우는 얼굴을 보고 또 물었다.
“아저씨 왜 우세요?”
“너희 부친이 돌아가셨단다. 그것도 우리나라 공산당 청년에게.”
외숙의 말씀에 김두한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10살이었다. 당시 김두한에게 있어서 외숙집의 생활은 그리 유쾌한 추억이 못된다. 아버지가 피살된 후부터 외숙은 김두한을 그리 귀중히 보아주지 않았다. 냉대는 갈수록 심했고, 그때 이미 열 살이 된 김두한은 어느 정도 눈치를 살필 수 있었기에 독립생활을 뜻하고 도보로 서울을 찾아 남하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한데 잠을 자고, 또 날이 새면 걸어가면서 구걸 행각을 했다. 1주일 남짓을 걸어서 서울로 내려왔다. 이 때 당시에는 주인에게 끌려 마구간으로 들어가 따뜻한 여물을 맛있게 먹는 소가 자신보다 팔자가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캄캄한 밤을 외롭게 지내면서 김두한은 반항을 배웠다. 무엇이든지 반항하고 싶었고 어떤 뚜렷한 반항의 대상도 없었지만 '왜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왜놈을 없애야겠다.' 이러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고 전해진다. 당시에 그가 차선책으로 서울에서 받은 교육은 '영화'였다. 그 영화는 주로 서부 영화로서 남성들의 폭력을 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후에 김두한에게 있어 폭력은 생활의 수단이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미화된 기제로 쓰인다.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일제 시대'였기 때문에 쌓인 울분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
해방 직후는 좌파와 우파간의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때였다. 김두한은 처음에 좌파였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좌파 청년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우파로 돌변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빨갱이'를 죽이겠다는 단일의 의지로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친밀한 친구조차 사상이 다르면 끔찍하게 살해했다. 그가 가담했던 '대한민청'은 우익의 선봉으로 이승만 정권의 행동대였고, 그는 이승만을 추앙하는 세력에 서게 된다. 김두한은 해방 이후에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
) "나의 아버지 김좌진 장군도 만주 벌판에서 일본과 싸운 한국 의용군의 사령관이었다. 나는 내 아버님의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공산당들과 싸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정에서 나를 '한국의용군사령관'으로 대접을 안 해주면 더 이상 재판을 못 받겠다. 내가 살인하고 방황하고 납치하고 협박 공갈을 한 것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투다. 공산당들이 먼저 무력으로 이 땅을 적화하려 했다. 이것을 앉아서 방관하는 것이 나에겐 죽기보다 싫었다." 김두한, 「해방과 건국의 소용돌이에서」,『김두한 자서전 2』, 메트로, 2003, 60쪽 인용
하여, 마치 좌익을 죽이는 것이 독립투사의 행동인 양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즉 그는 당시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는 자기 안에서 모든 폭력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일제에 항거한 김좌진 장군과 같이 자신도 좌익이라는 상대에 극한으로 싸운 투쟁의 인물로 인식된 까닭이다.
유신 체제
그가 지지하던 장면 정권이 무너지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김두한은 박정희에 반하는 '반독재'의 자세를 견지한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발생하고, 김두한은 국회에 출석하여 국무위원석에 직접 분뇨를 뿌리며 부패정권에 반감을 표한다. 이 사건이 바로 김두한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국회 오물투척사건'이다. 이로 인해 그는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에게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내란 음모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까지 받는다. 후에 김두한이 제명대로 살지 못한 것을 두고 이 때 고문이 원인이 된 것이라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말한 바 있다. 당시 특이한 점은 장준하 의원이 규탄궐기대회에서 박정희를 몰아붙여 국가원수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김두한과 그의 대응방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오물을 투척하는 것과 규탄궐기대회의 모습은 김두한의 행동이 과격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통쾌함을 줄만큼 영웅담으로 인식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즉 이 시기 김두한의 모습은 반 박정희, 반 독재의 모습으로 사나이 영웅담을 가질 정치인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Ⅲ. 결 론
지금까지 김두한의 삶을 사회심리학적 차원과 생태학적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본 발표조는 이를 통해, 개인의 삶에서 환경이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데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김두한의 전 생애는 아버지인 '김좌진' 장군과 이에서 비롯된 반일,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좌익'에 대한 극도의 혐오로 일관된다. 일제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빈틈없는 반공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환경을 기반으로 한 의지의 표출로 귀결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흥미에 기반해서 이끌어냈다. 특히 '사나이' 다운 면을 강조하여, 시대의 영웅담 혹은 무용담으로 그려낸 것이 대개이다. 본 발표조는 김두한의 생애와 성장기를 살피면서 최대한 김두한의 영웅담을 배제하였으며, 그가 시대의 비극에 철저히 길들여진 희생자이자, 그것을 온 몸으로 체득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 그의 삶을 좌우한 핵심 기제들은 '반공', '아버지(김좌진)', '민족' 이며 이는 환경과 개인 의지가 맞물린 채 영향을 끼친다. 김두한의 개인적인 삶은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삶이지만, 그 또한 환경의 피해자이자 시대의 비극임을 느낄 수 있다.
김두한이 개성의 외숙댁에 있을 때의 일이다. 김두한의 외숙집 옆에 계란빵 장사를 하는 노인 한 분이 있었다. 그 때 당시 김두한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놀고 있었으므로 곧잘 계란빵 장사 가게에 들리곤 했다. 하루는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계란빵 영감님 집을 들렀는데, 빵을 굽던 영감님이 일은 안하고 울고 있었다. 김두한은 “아저씨 왜 우세요.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물으니 “우리나라의 훌륭한 애국자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하고 대답했다. 김두한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계란빵 영감님이 말하는 애국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외숙댁에 돌아온 김두한은 또 다시 외숙의 우는 얼굴을 보고 또 물었다.
“아저씨 왜 우세요?”
“너희 부친이 돌아가셨단다. 그것도 우리나라 공산당 청년에게.”
외숙의 말씀에 김두한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10살이었다. 당시 김두한에게 있어서 외숙집의 생활은 그리 유쾌한 추억이 못된다. 아버지가 피살된 후부터 외숙은 김두한을 그리 귀중히 보아주지 않았다. 냉대는 갈수록 심했고, 그때 이미 열 살이 된 김두한은 어느 정도 눈치를 살필 수 있었기에 독립생활을 뜻하고 도보로 서울을 찾아 남하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한데 잠을 자고, 또 날이 새면 걸어가면서 구걸 행각을 했다. 1주일 남짓을 걸어서 서울로 내려왔다. 이 때 당시에는 주인에게 끌려 마구간으로 들어가 따뜻한 여물을 맛있게 먹는 소가 자신보다 팔자가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캄캄한 밤을 외롭게 지내면서 김두한은 반항을 배웠다. 무엇이든지 반항하고 싶었고 어떤 뚜렷한 반항의 대상도 없었지만 '왜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왜놈을 없애야겠다.' 이러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고 전해진다. 당시에 그가 차선책으로 서울에서 받은 교육은 '영화'였다. 그 영화는 주로 서부 영화로서 남성들의 폭력을 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후에 김두한에게 있어 폭력은 생활의 수단이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미화된 기제로 쓰인다.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일제 시대'였기 때문에 쌓인 울분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
해방 직후는 좌파와 우파간의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때였다. 김두한은 처음에 좌파였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좌파 청년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우파로 돌변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빨갱이'를 죽이겠다는 단일의 의지로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친밀한 친구조차 사상이 다르면 끔찍하게 살해했다. 그가 가담했던 '대한민청'은 우익의 선봉으로 이승만 정권의 행동대였고, 그는 이승만을 추앙하는 세력에 서게 된다. 김두한은 해방 이후에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
) "나의 아버지 김좌진 장군도 만주 벌판에서 일본과 싸운 한국 의용군의 사령관이었다. 나는 내 아버님의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공산당들과 싸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정에서 나를 '한국의용군사령관'으로 대접을 안 해주면 더 이상 재판을 못 받겠다. 내가 살인하고 방황하고 납치하고 협박 공갈을 한 것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투다. 공산당들이 먼저 무력으로 이 땅을 적화하려 했다. 이것을 앉아서 방관하는 것이 나에겐 죽기보다 싫었다." 김두한, 「해방과 건국의 소용돌이에서」,『김두한 자서전 2』, 메트로, 2003, 60쪽 인용
하여, 마치 좌익을 죽이는 것이 독립투사의 행동인 양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즉 그는 당시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는 자기 안에서 모든 폭력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일제에 항거한 김좌진 장군과 같이 자신도 좌익이라는 상대에 극한으로 싸운 투쟁의 인물로 인식된 까닭이다.
유신 체제
그가 지지하던 장면 정권이 무너지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김두한은 박정희에 반하는 '반독재'의 자세를 견지한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발생하고, 김두한은 국회에 출석하여 국무위원석에 직접 분뇨를 뿌리며 부패정권에 반감을 표한다. 이 사건이 바로 김두한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국회 오물투척사건'이다. 이로 인해 그는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에게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내란 음모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까지 받는다. 후에 김두한이 제명대로 살지 못한 것을 두고 이 때 고문이 원인이 된 것이라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말한 바 있다. 당시 특이한 점은 장준하 의원이 규탄궐기대회에서 박정희를 몰아붙여 국가원수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김두한과 그의 대응방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오물을 투척하는 것과 규탄궐기대회의 모습은 김두한의 행동이 과격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통쾌함을 줄만큼 영웅담으로 인식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즉 이 시기 김두한의 모습은 반 박정희, 반 독재의 모습으로 사나이 영웅담을 가질 정치인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Ⅲ. 결 론
지금까지 김두한의 삶을 사회심리학적 차원과 생태학적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본 발표조는 이를 통해, 개인의 삶에서 환경이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데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김두한의 전 생애는 아버지인 '김좌진' 장군과 이에서 비롯된 반일,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좌익'에 대한 극도의 혐오로 일관된다. 일제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빈틈없는 반공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환경을 기반으로 한 의지의 표출로 귀결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흥미에 기반해서 이끌어냈다. 특히 '사나이' 다운 면을 강조하여, 시대의 영웅담 혹은 무용담으로 그려낸 것이 대개이다. 본 발표조는 김두한의 생애와 성장기를 살피면서 최대한 김두한의 영웅담을 배제하였으며, 그가 시대의 비극에 철저히 길들여진 희생자이자, 그것을 온 몸으로 체득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 그의 삶을 좌우한 핵심 기제들은 '반공', '아버지(김좌진)', '민족' 이며 이는 환경과 개인 의지가 맞물린 채 영향을 끼친다. 김두한의 개인적인 삶은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삶이지만, 그 또한 환경의 피해자이자 시대의 비극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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