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 들어가며
1. `Song of Ariran`의 내용
2. Ideology 선택의 불가피성.~!
3. 조선 독립에 있어 이데올로기..~
4. 맺음말..~
1. `Song of Ariran`의 내용
2. Ideology 선택의 불가피성.~!
3. 조선 독립에 있어 이데올로기..~
4. 맺음말..~
본문내용
보다는 파벌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거했으며 파벌 싸움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조선노동공제회에서도 노동공제회사이에 윤덕병계열과 차금봉계열의 노선대립으로 해산되었다. 장지락도 이러한 파벌 싸움의 희생자이다. 파벌싸움이라는 데에는 어패가 있을지 모르나 중요한 것은 그도 조선인으로부터 모함을 받아 실권하였다는데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징표들은 공산주의도 모두가 바라는 이상주의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시대의 암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믿고 있는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각각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기계적 성질로 인하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조선의 독립으로 가는 철학의 역할을 수행하였음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상의 개개별 이데올로기의 문제 이상의 것이다. 바로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세상을 하나의 기준으론 볼 수 없다. 만약 그런다면 그는 더 이상 무슨 무슨 관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 자체 혹은 자신의 이상이 그리는 코스모 폴리스의 인물이 된다. 사회주의이건 사회진화론이건 한 철학적 이데올로기에의 심취는 그 인간을 궁극적으로 무국적자이게 하고 이론과 이론이 그리는 기계적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이상의 예에서 나온 우리 민족주의 우파의 최종적인 변화는 이데올로기의 성질상 예견된 것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의 소련에의 경도도 그러하다. 국가의 독립을 꿈꾸는 자는 자신들 만의 이데올로기를 창조해 남을 그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그 주창자의 조국이 가진 장점을 그 사회 인식 기준으로 삼게 되고 이데올로기에 빠진 이는 자신의 조국이 그 기준에서 주창자의 조국을 이기기 전에는 자신의 조국을 타국의 우위에 두지 못한다. 결국 이데올로기 한 쪽 만을 고집하지 말고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무국적의 징표라는 점을 인식할 때 이데올로기를 한국화하지 않아야 할 까 생각한다. 이 말은 조국독립을 갈망했던 우리 선조에게만 통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다시 독립운동사를 돌이켜 볼 때, 단합의 역사였는지 아니면 분열의 역사였는지는 감히 평하기 어렵겠으나, 그 당시의 2000만 조선 사람의 모든 염원인 조선독립을 위해 독립운동에 있어 또다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서로서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 사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4. 맺음말..~
아리랑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우리이 민요이다. 아리랑의 연원은 신라때부터있다는 말도 있고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그런데 장지락은 아리랑의 연원에 대해
'서울 근처에는 아리랑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있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수백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이런 젊은이 중의 한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 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 군대와 일본군대가 서로서로 조선의 땅에서 포성을 터뜨리고 거기에서 신음하는 조선사람들의 소리를 귀에 익히고자랐기 때문일 것이라. 어릴 때부터 가난한 곳에서 일본놈들에게 핍박받는 것을 보고 3.1운동이 베르사유의 배반이라는 간단한 말한마디에 수 많은 조선사람들의 피와 교환되는 것을 보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수 많은 조선사람들이 아무런이유없이 맞아 죽는 것을 보고, 톨스토이의 인류애는 이데아에서나 볼수 있는 허망한 것이라 생각하고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장지락의 짧은 생애에 있어 그당시 조선이 가져왔던 시대의 희생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중국의 공산화가 이루어지면 조선의 공산화도 이루어지고 모든 프롤레타리아들은 해방을 맞게 되고 전 세계의 공산화를 일으킬 수 있는 촉진제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그렇게 큰 위치는 점하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은 감동으로 내몬 이유는 좌절과 절망속에서도 꿋꿋히 이겨내고 비록 공산당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나 자신의 생에 대한 최선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옛날의 한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한명과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념하나만 있으면 자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장지락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 결코 뜻을 바꾼적이 없으며 그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1920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이다. 너나 할 거 없이 지식인들이라면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 민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모두다 한결같이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어진 세계를 기계적으로 이해할려고 애썼다. 어쩜 이데올로기가 같는 마술에 전부다 농락당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시대상황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장지락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있어서 하나의 결연한 의지가 쓸데없이 여러곳을 찝적대는 망집이 아니라 하나를 뜰어내는 집중으로 비춰진다는 점이 나를 놀랍게 한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는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라고 하여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한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장지락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였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한 민족주의자건 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각한 최선의 결정인데 좌파계열이 소흘하게 다루어지는 것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일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데올로기의 융합을 꾀하고 민족의 융합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데올로기란 허상을 넘어 민족이라는 실상를 찾아 조국 독립운동사의 옥의 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리랑이라는 책이 장지락이라는 인간적 승리를 담아내는 것에 동시에 강력히 시사하는 역사의 오류이다.!
cf) 참고책자-아리랑2(김산의 생애 및 한국에 관한 보충),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단체연구(金憙坤), 두산동아대백과사전. 국사대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시대의 암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믿고 있는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각각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기계적 성질로 인하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조선의 독립으로 가는 철학의 역할을 수행하였음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상의 개개별 이데올로기의 문제 이상의 것이다. 바로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세상을 하나의 기준으론 볼 수 없다. 만약 그런다면 그는 더 이상 무슨 무슨 관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 자체 혹은 자신의 이상이 그리는 코스모 폴리스의 인물이 된다. 사회주의이건 사회진화론이건 한 철학적 이데올로기에의 심취는 그 인간을 궁극적으로 무국적자이게 하고 이론과 이론이 그리는 기계적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이상의 예에서 나온 우리 민족주의 우파의 최종적인 변화는 이데올로기의 성질상 예견된 것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의 소련에의 경도도 그러하다. 국가의 독립을 꿈꾸는 자는 자신들 만의 이데올로기를 창조해 남을 그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그 주창자의 조국이 가진 장점을 그 사회 인식 기준으로 삼게 되고 이데올로기에 빠진 이는 자신의 조국이 그 기준에서 주창자의 조국을 이기기 전에는 자신의 조국을 타국의 우위에 두지 못한다. 결국 이데올로기 한 쪽 만을 고집하지 말고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무국적의 징표라는 점을 인식할 때 이데올로기를 한국화하지 않아야 할 까 생각한다. 이 말은 조국독립을 갈망했던 우리 선조에게만 통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다시 독립운동사를 돌이켜 볼 때, 단합의 역사였는지 아니면 분열의 역사였는지는 감히 평하기 어렵겠으나, 그 당시의 2000만 조선 사람의 모든 염원인 조선독립을 위해 독립운동에 있어 또다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서로서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 사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4. 맺음말..~
아리랑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우리이 민요이다. 아리랑의 연원은 신라때부터있다는 말도 있고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그런데 장지락은 아리랑의 연원에 대해
'서울 근처에는 아리랑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있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수백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이런 젊은이 중의 한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 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 군대와 일본군대가 서로서로 조선의 땅에서 포성을 터뜨리고 거기에서 신음하는 조선사람들의 소리를 귀에 익히고자랐기 때문일 것이라. 어릴 때부터 가난한 곳에서 일본놈들에게 핍박받는 것을 보고 3.1운동이 베르사유의 배반이라는 간단한 말한마디에 수 많은 조선사람들의 피와 교환되는 것을 보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수 많은 조선사람들이 아무런이유없이 맞아 죽는 것을 보고, 톨스토이의 인류애는 이데아에서나 볼수 있는 허망한 것이라 생각하고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장지락의 짧은 생애에 있어 그당시 조선이 가져왔던 시대의 희생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중국의 공산화가 이루어지면 조선의 공산화도 이루어지고 모든 프롤레타리아들은 해방을 맞게 되고 전 세계의 공산화를 일으킬 수 있는 촉진제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그렇게 큰 위치는 점하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은 감동으로 내몬 이유는 좌절과 절망속에서도 꿋꿋히 이겨내고 비록 공산당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나 자신의 생에 대한 최선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옛날의 한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한명과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념하나만 있으면 자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장지락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 결코 뜻을 바꾼적이 없으며 그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1920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이다. 너나 할 거 없이 지식인들이라면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 민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모두다 한결같이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어진 세계를 기계적으로 이해할려고 애썼다. 어쩜 이데올로기가 같는 마술에 전부다 농락당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시대상황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장지락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있어서 하나의 결연한 의지가 쓸데없이 여러곳을 찝적대는 망집이 아니라 하나를 뜰어내는 집중으로 비춰진다는 점이 나를 놀랍게 한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는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라고 하여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한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장지락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였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한 민족주의자건 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각한 최선의 결정인데 좌파계열이 소흘하게 다루어지는 것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일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데올로기의 융합을 꾀하고 민족의 융합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데올로기란 허상을 넘어 민족이라는 실상를 찾아 조국 독립운동사의 옥의 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리랑이라는 책이 장지락이라는 인간적 승리를 담아내는 것에 동시에 강력히 시사하는 역사의 오류이다.!
cf) 참고책자-아리랑2(김산의 생애 및 한국에 관한 보충),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단체연구(金憙坤), 두산동아대백과사전. 국사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