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재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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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의 재평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명성황후에 대한 비판적 조사
1. <명성황후>에 없는 ‘역사성’
2. 민비 시해 사건
3. 민비는 어떤 인물인가
4. 민비의 실정
5. 동학혁명과 민비와의 관계
6. 민비의 외교 정책
7. 민비에 대한 평가에 대해
8. 역사적 평가는 사실을 바탕에 둔 총체적 해석이라야 한다.

Ⅲ. 타당성 및 재평가

본문내용

의 총명을 가리우며 백성을 착취하고 나의 정령(政令)을 어지럽히며 벼슬을 팔고 탐욕과 포악이 지방에 퍼지니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워졌다…”고 기록했다. 비록 일제에 의해 왜곡된 기록이긴 해도 민비에 대한 부정적인 기술은 놀랍게도 당시 많은 야사(野史)들, 특히 매천 황현(黃玹·1855-1910)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일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비의 사대굴종적 태도(態度)가 있다. 민비 일파가 대원군을 정권(政權)에서 축출(逐出)하고 정치(政治)를 장악한 명분(名分)으로 대외정책 중 대일국교회복(對日國交恢復) 거절 건을 내세웠다. 그리고 대원군이 축출 당한 뒤 민씨 일파는 일본과 수교를 맺었다. 이때 민씨가 맺은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조약으로 유명하다. 후(後) 1882년 민씨의 개화정책(開化政策)에 대한 불만과 급료문제로 구식군대들이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일으켜 그녀를 죽이려 하자 민비는 궁녀로 변장해 탈출했고 민영익의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비밀리에 고종과 접촉해 청나라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이들에게 부탁해 대원군(大院君)을 납치케 했다.
임오군란 이후 민비는 친청정책을 실시했고 이것이 개화파의 불만을 사게 됐다. 1884년 개화파들은 정치개혁, 대원군 석방을 요구하며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켜 3일간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도 민비는 역시 청국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다시 찾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나고 자꾸만 관군이 지자 민비는 "제 나라 국민을 치기 위해" 남의 나라 군대인 청국에 원군 요청을 했고 청군이 들어오자 조선 안의 자국민을 지킨다는 구실로 일본군 역시 조선에 상륙했다. 이에 동학군(東學軍)은 국제정세에 조선이 위급해지자 서둘러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청일전쟁(淸日戰爭)이 일어나 일본군이 이겼다. 남의 땅에서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이 전쟁 우리 땅에서 벌어지게 된 이유는 동학농민운동 때문이 아니라 청국군을 요청해 일본군 상륙의 빌미를 제공한 민비가 이끄는 민씨 정권의 부패와 무능, 외세의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청을 몰아내고 조선의 패권을 차지해 민비는 일본에 정치적 제한을 받고 있었다. 또한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요동반도를 얻었다. 이에 일본의 팽창을 염려한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가 요동반도를 돌려주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이것이 삼국 간섭인데 이때 민비는 자신이 의지할 곳이 러시아라 판단해 러시아 쪽으로 붙으려 했고 이를 눈치챈 일본은 1895년 8월 20일 옥호루에서 왜 낭인(浪人)들을 보내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국모가 다른 나라 이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충분히 굴욕적이고 가슴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그 자존심 때문에 너도나도 죽은 한 여인을 미화시키려고만 하고 그녀의 살아생전 한 일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채 깊숙이 묻어 버리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여러 기록들이 민비와 그 일족의 부패와 사치. 사대굴종적 태도를 고발하는데도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민비의 죽음, 그 비극적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움 이전에 우리는 우리 역사를 망치고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누구인지를 직시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민비는 정권을 노리고 세도정치를 폈으며 사치로 인해 국고를 낭비한데다 시종일관 사대굴종적인 외교를 한, 위대한 국모일 수도 없고 그렇게 떠받들어서도 안 되는 여인이다.
어쩌면 이 책 역시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책이라는 비판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무조건적인 옹호에서 벗어나 이렇게 한번쯤은 다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제일 첫걸음이 아닐까?
※참고문헌 및 인터넷 주소
- http://www.chondogyo.or.kr/shiningan/n2002/n03/n0312.htm
- http://naking7.hihome.com/history2-5.htm -- 임오군란
- <두산대백과사전>참고
- http://www.minjog21.com/ - 민족 21
- http://rose0.kyungpook.ac.kr/~z9459024/ - 조선왕조사 홈페이지
- 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5-1-3-1.html - 서울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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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4.01.16
  • 저작시기2004.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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