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여론조사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세종대왕의 여론조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대왕의 여론조사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하여 공부하다 보면 모든 정책의 중심에 백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과정에서 겪었듯이 그 어려운 세법 개혁에서도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당시 과전법에 근거하여 소출의 10%를 납부토록 하는 제도는 소출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매년 작황에 따라 납부하여야 할 세액이 달라지고 그 작황을 파악하는 과정에 주관적인 편견이 개입하여 공평치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작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조사관을 파견하기도 하고, 혹은 지방의 감사에게 위임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의 인구주택총조사도 5년마다 시행하는 것을 감안할 때 그 당시에 대규모의 조사를 매년 시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매년 일정 세액을 부과하는 공법 도입을 고려하였던 것 같은데 우선 문과의 책문(策問)에서 공법 도입과 관련하여 의견을 수렴(세종 9년, 1427년 3월 27일)하고, 수차례 조정에서 논의하였다. 공법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세종대왕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세종 10년, 1428년 1월16일 기록에 나와 있다.

“만약 공법을 한번 시행하게 되면 풍년에는 많이 취하는 걱정은 비록 면할 수 있겠지마는, 흉년에는 반드시 근심과 원망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어찌하면 옳겠는가.”

거듭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중신들은 공법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이 사실은 아래 집계한 여론조사 결과의 서울 고위직 란에 잘 나와 있다. 이는 토지를 많이 소유한 기득권층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데 10분의 일을 거두던 기존 제도에 비하여 세율이 낮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반대한다는 것은 소출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혹은 토지를 측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농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중신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반대를 하면서도 백성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식으로 논리를 내세운다. 아마도 세종대왕은 이런 중신들의 반응을 역이용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여론조사를 생각한 듯하다.
그 논의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세종 11년, 1429년 11월 16일 기록에 보면 명나라에 진헌할 해청의 수에 대해 의논하다가 뜬금없이 공법의 시행에 대하여 논의하고도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는 말과 함께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 가격5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25.03.19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기타(docx)
  • 자료번호#242333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