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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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인 의미를 지닌 것도 점점 많아졌다. 온갖 종류의 부가물들을 통해서 화려해진 종교적인 축제행렬, 이외에 세속적인 축제행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6부 풍속과 종교부분의 내용을 살펴보자.
16세기 초 르네상스 문화가 결정에 도달하고, 동시에 이탈리아 국민의 정치적 불행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을 때 이런 불행을 도덕성의 결핍과 연결시킨 마키아벨리라는 사상가가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사상 체계안에서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다,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비종교적이고 악하다"라고 말하였다.
16세기 초에 이탈리아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빠져 있었다. 더 나은 사람일지라도 거기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였다. 즉 노름벽, 복수욕, 간통, 온갖 범죄, 도둑떼, 청부살인, 독살등의 여러 도덕적 위기가 나타난 것이다.
최고 계층의 삶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당시 이탈리아인의 주요한 성격적 특성을 요약하고자 한다면 곧 발전된 개인주의였다. 이런 개인주의적인 발전은 그 자신의 잘못으로 그에게 온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만 온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이탈리아 문화의 힘을 입어서 유럽의 다른 모든 국민에게도 찾아왔으며, 그 이후로는 그들이 그 안에서 활동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르네상스 이전 시대에 신에 대한 의식은 기독교와 그 대표 기관인 교회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교회가 타락하였을 때 인류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확고하게 지켰어야 했을 것이다. 르네상스 전성기에 이탈리아 상류층과 중간층의 교회에 대한 느낌은, 깊고도 경멸에 가득 찬 못마땅함, 교회의 관습이 온갖 방식으로 일상 생활과 뒤섞인 것에 대한 묵인, 성사, 예배, 예식에 대한 종속감등으로 요약된다.
르네상스의 종교와 정신에 대해 살펴보자. 당시 이탈리아의 교양 계층인 이들 현대인들의 종교심은 중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개인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 있어서도 다른 문제들처럼 완전히 '주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외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의 발견이 가져다준 매혹이 너무나 커서 '세속적'으로 되었다. 르네상스 사람들은 종교적인 맥락에서 젊은이의 특성을 보였다. 그들은 선과 악을 날카롭게 구분하였으나 죄라는 것을 몰랐다. 내면의 조화가 깨지는 것을 자신의 조형적인 힘을 빌어서 복구시키려고 하였으나, 그 때문에 후회라는 것도 몰랐다, 구원에의 욕구는 빛이 바랬다. 동시에 명예욕과 시대의 정신적인 노력 앞에서, 정신은 저승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거나 아니면 교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시적인 형태로만 받아들였다.
르네상스를 중세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세속성은, 자연과 인성에 관련된 새로운 관점, 사상, 의도들이 대량으로 넘쳐나면서 생겨났다. 그 자체로 살펴보면 이 세속성은 오늘날의 입장, 이른바 교양적 관심이 보여주는 것보다 종교에 대해서 훨씬 덜 적대적이었다. 이 세속성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고귀하게 된 진지한 세속성이다, 그것은 현대 정신의 고귀한 필연성이다. 인문주의는 전체적으로 세속적이었고, 15세기에 연구가 확대되면서 더욱더 세속적으로 되어갔다. 이미 개인주의의 선구자들로 소개를 했던 인문주의자들은 보통, 아주 특이한 요구들을 가진 그들의 종교심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교와 무관한 것으로 보일 정도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기독교에 무관심하였고, 교회에 대해서 가차없는 발언들을 해서 무신론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고대는 도그마의 형식으로 위험한 작용을 하였다. 고대는 르네상스에 고대의 미신을 전해준 것이다. 일부 사람들에게서 신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은 엄청난 불의와 불운을 통해서 흔들리게 되었다. 점성술은 13세기에 갑자기 매우 강력하게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의 표면에 등장하였다. 이러한 점성술은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에서 비극적인 요소였다. 전쟁결정이 별자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전쟁을 벌일 때 점성술사를 통해서 출정시간을 결정한 것도 미신의 예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말을 따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건강한 인간 이성과 관찰에서 얻은 것을 발언하는 점성술의 반대세력도 있었다. 망령들의 세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민간의 믿음은 이탈리아에서도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았다. 인기 있고 원시적인 형태로, 아마도 로마시대 이후로 끊임없이 계속되어온 것은 마녀라는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불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시 미움을 받던 교회에서 내적으로 아무런 덕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불멸에 대한 모든 의심의 강력한 원천이었다. 죽음의 순간에 다시 마음이 돌아서서 종부성사를 받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교회의 덕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품고 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깊은 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강력한 종교심은 유신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적 존재를 향한 더욱 높은 긍정적 신앙심이 유신론이며, 감정을 위해 다른 대체물을 구하거나 찾아내지 않고서 기독교를 벗어버린 사고 방식이 유신론을 주도하였다. 중세의 신비주의가 플라톤 학설 및 독자적인 현대 정신과 공명을 얻게 된다. 어쩌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가장 소중한 열매 하나가 여기서 여물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바로 이런 인식으로 인해서 현대 세계의 선도자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이상이 부르크하르트의 뛰어난 박식과 꼼꼼한 문헌고증을 통해 규명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의 내용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주제별로 시대의 특징을 끄집어냈으며 커다란 상자를 그리는가 하면 아주 세밀하게 당대 인간들의 심리를 묘사하기도 한다. 또 그의 의식속에 르네상스와 중세를 완전히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근세의 시작은 중세로부터가 아닌 고대로부터라는 주장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저마다 그들의 국민적인 문화를 창출한 황금기를 갖는다. 14∼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참으로 현란한 문화를 가졌고, 난 이 책을 통해 그 전체의 모습을 이해하고 간접경험을 하는 감흥을 누릴 수 있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4.05.02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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