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일지를 통해본 백범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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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 일지를 통해본 백범김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의 어머니는 왜 간수가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나는 네가 경기 감사나 한 것 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면회는 한 사람밖에 못한다고 해서 네 처와 화경이는 저 밖에 와 있다. 우리 세 식구는 잘 있으니 염려 말아라. 옥중에서 네 몸이나 잘 보중 하여라. 밥이 부족하거든 하루 두 번씩 사식 들여 주랴?"
하시고 어성 하나도 떨리심이 없었다. 저렇게 씩씩하신 어머니께서 자식을 왜놈에게 빼앗기시고 면회를 하겠다고 왜놈에게 고개를 숙이고 청원을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황송하고도 분하였다. 우리 어머님은 참말 갸륵하시다! 십 칠년 징역을 받을 아들을 대할 때에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실 수가 있었으랴. 그러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어서 발부리가 아니 보이셨을 것이다.비록 그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일본인 간수에게 굽신거리며 들어왔을지언정 아들 앞에서는 조금도 굴함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어찌 자식을 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일본 왕 명치와 그의 처가 잇달아 죽었다고 해서 거푸 감형이 된 김구는 오 년 만에 가출옥되어 안악으로 돌아을때, 그곳에는 집도 없이, 안신 학교에 교원으로 있는 김구의 아내가 교실 한 간을 얻어 살고 있었다. 일곱 살 난 딸 화경은 김구의 수감 중에 죽고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그의 어머니의 꼿꼿한 성품은 변하지 않았던 듯하다. 출옥한지 며칠 뒤에 친구들이 위로 잔치를 베풀고 기생을 불러 가무를 시켰는데, 도중에 김구 선생은 어머니에게 불려 나왔다. 어머니는 "내가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한 것이 오늘 네가 기생을 다리고 술 먹는 것을 보려고 한 것이냐!"하고 호통을 쳤다. 이것은 며느리의 고발에 따른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고생하는 며느리를 감쌌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에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해 본 일이 없었고, 내외 싸움에 한번도 이겨 본 일이 없었다"고 김구 선생은 술회하고 있다.
또 피난지 가흥에서 김구 선생 모자가 다시 만났을때, 일흔여덟의 고령이 된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구년만에 보는 아들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인제부터 너라고 아니하고 자네라고 하겠네. 또 말로 책하더라도 초달로 자네를 때리지는 않겠네. 들으니 자네가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청년들을 교육한다니, 남의 사표가 된 모양이니, 그 체면을 보아주자는 것일세."
상해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백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바지를 걷어 올리게 하고 매질을 했었고, 백범은 매질하는 어머니의 힘이 그전 같지 않은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이렇게 강직하고 현명한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그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커다란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이것이 김구 선생이 바라던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침략하지 않고 남에게 침략 당하지 않을 정도의 힘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가난하지 않고 생활을 풍족히 할만한 부력, 높은 문화....지금 우리나라는 얼마나 김구 선생의 바람에 가까이 가 있는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지도 반세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 바램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을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민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가 발할 것이다.
백범일지를 읽고 만약 내가 김구 선생이 살고 있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난 어떠한 삶을 살았겠는가? 그러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김구 선생님 외에도 나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그때 그때마다의 상황에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지금 시기에 나는 나의 삶을 충실히 사는게 우리 곧 우리의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일전 포탈사이트 다음에서의 설문조사를 보고 놀랐다. 설문조사의 내용인즉 다시 태어나도 우리나라에 태어나고 싶은지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지에 관한 설문조사였다. 그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한 사람들은 전체 설문 조사 인원 중에 23% 만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싶고 그 외에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과거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힘쓰고 피를 흘렸는지를 망각하고 지금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노력해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들어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나라에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피하려고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기에 백범일지는 민족의 소중함과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하나의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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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4.05.05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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