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속에서 토끼를 겨냥해서 잡아들고 귀가하는 사냥꾼처럼 의미 있는 순간을 좇는 사냥꾼을 자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에반스의 사진에 영향을 받은 로버트 프랭크 이후 현대의 많은 사진가들은 의미 있는 순간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 자신이 의미를 만들 뿐이며, 사진의 행운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순간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있는 데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즉 사고와 의미 이전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제 사진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말하는 것을 언제나 넘어서는 존재, 사고의 바깥으로 거품을 쏟아내는 존재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 강조해서 사진의 “사실”은 더 이상 “의미”를 일으키지 않으며 더욱이 “사실”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 말하면서 결국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의미, 즉 의미의 가능성은 너무나 많고 다양해서 선택한다는 것조차가 허사이다.
여기에서 로베르 드아노의 표현을 빌린다면, “닫힌”사진의 뒤를 이어 “열린”사진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능한 모든 의미에 대해 열려 있는 그런 사진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에반스의 사진에 영향을 받은 로버트 프랭크 이후 현대의 많은 사진가들은 의미 있는 순간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 자신이 의미를 만들 뿐이며, 사진의 행운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순간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있는 데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즉 사고와 의미 이전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제 사진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말하는 것을 언제나 넘어서는 존재, 사고의 바깥으로 거품을 쏟아내는 존재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 강조해서 사진의 “사실”은 더 이상 “의미”를 일으키지 않으며 더욱이 “사실”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 말하면서 결국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의미, 즉 의미의 가능성은 너무나 많고 다양해서 선택한다는 것조차가 허사이다.
여기에서 로베르 드아노의 표현을 빌린다면, “닫힌”사진의 뒤를 이어 “열린”사진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능한 모든 의미에 대해 열려 있는 그런 사진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