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사에 대하여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발해의 건국

2.발해의 발전

3.발해의 혼란

4.발해의 멸망

5.발해의 정치기구

6.발해의 사회경제

7.발해의 문화

본문내용

보이는데, 몸통이 홀쭉하고 입술이 두 겹으로 된 것 등은 모두 말갈적이 전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계통의 것은 물레를 사용하였고 굽는 온도도 높았는데, 이에 비하여 말갈 계통의 것은 손으로 직접 빚었고 굽는 온도가 낮았다고 한다. 이처럼 그릇의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다른 문화요소와 구별되는 말갈의 특성이 있었던 것이다.
4) 고유 문화
발해 문화에서 창조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덤 양식의 경우 벽돌로 쌓는 당나라 양식과 돌로 공간을 줄여나가면서 천장을 쌓는 고구려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덤 위에 탑을 쌓았는데, 이것은 바로 발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정효공주의 무덤이 그 좋은 예이다.
무덤의 매장방식에 있어서도 발해 고유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발해는 1부1처제를 기본으로 하여 부부합장이 이루어졌지만,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묻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한 가족인지 순장인지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왕릉급 무덤에서도 이런 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발해에도 순장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 또한 현지의 토착적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기둥과 주춧돌이 만나는 부분에 도자기를 씌워 빗물로 인한 부패를 방지한 것이라든가, 구멍이 많이 뚫리고 형태도 다양한 허리띠 장식, 독특한 기와 문양 등에서도 발해 고유의 창조적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상 발해문화에 영향을 끼친 여러 문화요소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적 요소도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연해주에서 발굴된 유물의 경우이다. 연해주는 현재 러시아의 영토이지만, 과거에는 발해 영토의 일부분이었다. 따라서 연해주에서도 발해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곤 한다. 그 중에는 독특한 장식의 도기, 소그드 화폐, 경교 십자가 등도 있는데, 러시아 학자들은 이런 것들이 중앙아시아나 남부 시베리아에서 전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발해 문화를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초기에는 고구려 문화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 후 8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당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유입하여 더욱 다양한 요소를 띄게 되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편차가 없을 수 없었다. 과거 고구려 영역이었던 함경도 등지에서는 고구려전통이 많이 남아있었던 반면, 그렇지 않았던 길림성, 흑룡강성 등지에서는 고구려 외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우리는 흔히 발해 문화가 고구려 문화를 단순하게 계승한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러나 발해 문화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주변 및 토착 지역의 여러 문화를 발해인들이 혼합하여 만든 창조적 양식인 것이다. 발해 문화가 당나라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중국 측의 입장을 우리는 공정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발해 문화가 그저 고구려의 것을 계승하였다고만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지나친 주관적 판단일 것이다. 발해인의 입장에서 발해 자체의 고유한 문화적 요소를 살펴보려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4.06.12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519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