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①박제가의 생애 및 가계
② 시대상황과 북학의 당위성
③ 박제가의 『북학의』
④ 그의 중심사상
ⅰ. 박제가의 실학학풍의 형성과 그 배경
ⅱ 이용후생(利用厚生)
ⅲ. 전통적인 검약주의에 대한 반대
ⅳ. 상업의 중시
Ⅲ. 결 론
Ⅱ. 본 론
①박제가의 생애 및 가계
② 시대상황과 북학의 당위성
③ 박제가의 『북학의』
④ 그의 중심사상
ⅰ. 박제가의 실학학풍의 형성과 그 배경
ⅱ 이용후생(利用厚生)
ⅲ. 전통적인 검약주의에 대한 반대
ⅳ. 상업의 중시
Ⅲ. 결 론
본문내용
도 볼 수 있듯이, 장사꾼을 천시하고 선비만을 존중하는 풍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중국의 시장이 번성한 것을 보고 장사꾼의 이익만을 숭상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것이다. 상인은 엄연히 사민(四民: 사농공상)의 하나이며, 상업으로서 나머지 사농공 사이를 유통시키는 것이니, 그 숫자가 사민의 10분의 3은 되어야 한다.」고 하여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한 선비 계급도 상업에 종사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Ⅲ. 결론
박제가의 북학론은 청조 문화를 주로 이용후생적 측면에서 수용하여 조선의 낙후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상업·무역·화폐유통·농업기술·수공업·교통 운수·국방등의 문제들이 박제가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박제가는 이용후생 속에서만 정덕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성리학보다 오히려 유교적 사회 질서 확립의 근거가 되는 선진 유학 사상을 받아들였다. 선진 유학은 교화에 앞서 양민을, 항심에 앞서 항산을 더욱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사회의 문제들을 진단하면서 이용후생의 측면에서 이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다른 실학자들과 달리 그 시대의 제도 개혁 측면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합리적 이용과 이로 인한 농업 생산의 증가 및 농업 기술의 개량에 치중하였고 더 나아가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가난을 어떻게 구제해서 나라를 발전시킬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박제가는 사회신분제도·문벌제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 사상을 갖고 있다.그는 사회 신분제도가 신분의 세습과 사회 이동의 폐쇄를 특징으로 하여 아무리 무능해도 고위 양반관료의 자제는 고위양반관료가 되고 아무리 유능해도 서민의 자제는 서민이 되기 만드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양반신분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관료충원제도로서의 과거제의 개혁과 양반신분층의 상인계층화를 구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박제가의 생각은 그 당시 너무나 진보적이고 자신들의 기존의 이득을 지키려는 양반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제도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교육학적인 시사를 주고 있다.
<<참고문헌>>
『북학의』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한길사, 1992
『조선철학사(상)』 정진석, 정성철, 김창원 지음, 이성과 현실사, 1988
『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연구회, 예문서원, 1996
『조선후기 실학파의 사회사상연구』 신용하 지음, 지식산업사, 1997
「우리 나라 사람들의 중국의 시장이 번성한 것을 보고 장사꾼의 이익만을 숭상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것이다. 상인은 엄연히 사민(四民: 사농공상)의 하나이며, 상업으로서 나머지 사농공 사이를 유통시키는 것이니, 그 숫자가 사민의 10분의 3은 되어야 한다.」고 하여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한 선비 계급도 상업에 종사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Ⅲ. 결론
박제가의 북학론은 청조 문화를 주로 이용후생적 측면에서 수용하여 조선의 낙후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상업·무역·화폐유통·농업기술·수공업·교통 운수·국방등의 문제들이 박제가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박제가는 이용후생 속에서만 정덕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성리학보다 오히려 유교적 사회 질서 확립의 근거가 되는 선진 유학 사상을 받아들였다. 선진 유학은 교화에 앞서 양민을, 항심에 앞서 항산을 더욱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사회의 문제들을 진단하면서 이용후생의 측면에서 이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다른 실학자들과 달리 그 시대의 제도 개혁 측면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합리적 이용과 이로 인한 농업 생산의 증가 및 농업 기술의 개량에 치중하였고 더 나아가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가난을 어떻게 구제해서 나라를 발전시킬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박제가는 사회신분제도·문벌제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 사상을 갖고 있다.그는 사회 신분제도가 신분의 세습과 사회 이동의 폐쇄를 특징으로 하여 아무리 무능해도 고위 양반관료의 자제는 고위양반관료가 되고 아무리 유능해도 서민의 자제는 서민이 되기 만드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양반신분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관료충원제도로서의 과거제의 개혁과 양반신분층의 상인계층화를 구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박제가의 생각은 그 당시 너무나 진보적이고 자신들의 기존의 이득을 지키려는 양반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제도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교육학적인 시사를 주고 있다.
<<참고문헌>>
『북학의』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한길사, 1992
『조선철학사(상)』 정진석, 정성철, 김창원 지음, 이성과 현실사, 1988
『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연구회, 예문서원, 1996
『조선후기 실학파의 사회사상연구』 신용하 지음, 지식산업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