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작하는 말
① 19C 유럽의 시대상황
② 중요한 Q&A
♧본문 - 민족주의 자세히 알아보기
① 민족주의란?
② 민족주의의 전개 과정과 발전
③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 ( Key point! )
④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
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⑥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마치는 말 - 토론
: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① 19C 유럽의 시대상황
② 중요한 Q&A
♧본문 - 민족주의 자세히 알아보기
① 민족주의란?
② 민족주의의 전개 과정과 발전
③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 ( Key point! )
④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
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⑥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마치는 말 - 토론
: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본문내용
할 지상 과제였습니다. 개인 및 개인의 자아는 민족 또는 민족정신과 동일시되었고, 국가는 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신성시 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의 이념에 반대하면서 과거의 독일 특히 중세 동일에 영광이 부여되었고 세습적인 군주정과 귀족의 지배는 찬양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심어주었던 지도적인 역할은 부르주아등의 일반 민중이 아닌 절대 군주의 정부 및 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반 민중들의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 혹은 증오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과 모순 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민족주의를 옹호하고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민족주의가 당초부터 민주주의나 합리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다루어졌고, 국민의 권리보다도 왕실의 영광이, 이성보다도 본능이 구가되었습니다. 혁명은 미치광이 짓으로 간주되고 도리어 과거의 전통이 찬미되었습니다. 절대군주나 귀족들은 이와 같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그들의 권위를 지켰고 혁명을 방지하는 방패로 삼았던 것입니다.
- 중요한 Q&A
질문) 문화적 민족주의에서 정치적 민족주의로 어떻게 넘어갔을까요?
답변) 독일의 민족주의로 문화적 민족주의에서 정치적인 민족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독일은 중세 이래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침입을 맞이하여 두 가지 자극을 받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나폴레옹을 출현시켰던 프랑스혁명과 그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되던 프랑스의 계몽사상에 맞서서 독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신을 확인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과거 독일인들이 체험하고 형성시킨 과거의 유산에 대한 관심,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역사와 언어, 종교, 그리고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자극은 독일이 아직도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침입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뼈저린 체험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독일인들은 단지 언어와 종교, 문학 등에 의해서만 동일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끼던 문화적 민족주의의 단계를 넘어서, 하나의 정치적 통합성과 동질성을 느끼고자 하는 정치적 민족주의를 지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은 추구되어야 할 지상 과제였습니다. 개인 및 개인의 자아는 민족 또는 민족정신과 동일시되었고, 국가는 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신성시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의 이념에 반대하면서 과거의 독일 특히 중세 독일에 영광이 부여되었고 세습적인 군주정과 귀족의 지배는 찬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④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
: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 민족주의의 긍정적 기능
가. 서구 선진국의 경우 : 민족 국가 형성의 이념적 기반 제공
나. 후진 국가의 경우 : 1차대전이후 강대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
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역점을 두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가장 유력한
정치이데올로기 기능을 가짐
- 민족주의 부정적 기능
가. 민족주체성과 애국애족의 정신, 국가에 대한 봉사와 희생 강조할 경우 : 민주주의와 사 회 복지 정책의 성장 저해
나. 종족의 우월성과 전통 문화의 우수성 과정 : 국수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짐.
다. 배타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한 결과 : 팽창주의, 침략주의, 식민주의 추구
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양립되기 어려운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주의가 모든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원리라면, 민족주의는 개인을 민족에 종속시키는 다소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도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운동을 지지했었습니다. 민족해방 특히 절대주의체제 아래에서의 해방 및 민족통합은 근대화를 촉진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인 Carbonari(숯 굽는 사람)의 전통이 Mazzini의 민족주의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벨기에의 독립운동을 지지했습니다. 19세기 중엽이후 민족주의운동은 자유주의와 갈등을 보이게 됩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낭만주의, 사회주의 등 제반 세력들이 진출했던 1848년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인 민족주의운동이 퇴색하고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민족주의가 추구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국가의 무력 내지 물리력의 강화를 통한 민족통합 내지 국가통합의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헝가리는 자치를 획득했습니다. 민족자결을 추구했던 슬라브 소수민족들의 동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간단히 언급합니다.)
- 19세기 말에 들어 민족주의는 보다 국수적이고 팽창적인 면모를 띠면서 침략전쟁의 이데올로기, 곧 제국주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자유와 국가적 통일을 위하여 국가권력은 이제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할 지고의 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각 국가는 자국의 강화를 위해 물리적 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발칸지역을 둘러싸고 슬라브족과 게르만족 사이에서 벌어진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는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는 말
- 지금까지 민족주의에 대한 저희조의 발제 내용이었습니다. 저희 조는 이번발제를 조사하고 준비하면서 민족주의 조사 이외에 약간의 토론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민족주의의 시작과 민족주의에 전개과정 중에서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점을 고려하여 민족주의의 바람직한 모습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입니다.
*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토론의 결론이라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저희 조에서 나온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현 세계의 흐름과 추세에 맞추어 민족주의의 모습이 평화 지향적이고 국제 협조 지향적이며 개방적. 도덕적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중요한 Q&A
질문) 문화적 민족주의에서 정치적 민족주의로 어떻게 넘어갔을까요?
답변) 독일의 민족주의로 문화적 민족주의에서 정치적인 민족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독일은 중세 이래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침입을 맞이하여 두 가지 자극을 받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나폴레옹을 출현시켰던 프랑스혁명과 그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되던 프랑스의 계몽사상에 맞서서 독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신을 확인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과거 독일인들이 체험하고 형성시킨 과거의 유산에 대한 관심,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역사와 언어, 종교, 그리고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자극은 독일이 아직도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침입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뼈저린 체험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독일인들은 단지 언어와 종교, 문학 등에 의해서만 동일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끼던 문화적 민족주의의 단계를 넘어서, 하나의 정치적 통합성과 동질성을 느끼고자 하는 정치적 민족주의를 지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은 추구되어야 할 지상 과제였습니다. 개인 및 개인의 자아는 민족 또는 민족정신과 동일시되었고, 국가는 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신성시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의 이념에 반대하면서 과거의 독일 특히 중세 독일에 영광이 부여되었고 세습적인 군주정과 귀족의 지배는 찬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④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
: 민족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 민족주의의 긍정적 기능
가. 서구 선진국의 경우 : 민족 국가 형성의 이념적 기반 제공
나. 후진 국가의 경우 : 1차대전이후 강대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
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역점을 두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가장 유력한
정치이데올로기 기능을 가짐
- 민족주의 부정적 기능
가. 민족주체성과 애국애족의 정신, 국가에 대한 봉사와 희생 강조할 경우 : 민주주의와 사 회 복지 정책의 성장 저해
나. 종족의 우월성과 전통 문화의 우수성 과정 : 국수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짐.
다. 배타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한 결과 : 팽창주의, 침략주의, 식민주의 추구
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양립되기 어려운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주의가 모든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원리라면, 민족주의는 개인을 민족에 종속시키는 다소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도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운동을 지지했었습니다. 민족해방 특히 절대주의체제 아래에서의 해방 및 민족통합은 근대화를 촉진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인 Carbonari(숯 굽는 사람)의 전통이 Mazzini의 민족주의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벨기에의 독립운동을 지지했습니다. 19세기 중엽이후 민족주의운동은 자유주의와 갈등을 보이게 됩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낭만주의, 사회주의 등 제반 세력들이 진출했던 1848년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인 민족주의운동이 퇴색하고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민족주의가 추구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국가의 무력 내지 물리력의 강화를 통한 민족통합 내지 국가통합의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헝가리는 자치를 획득했습니다. 민족자결을 추구했던 슬라브 소수민족들의 동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간단히 언급합니다.)
- 19세기 말에 들어 민족주의는 보다 국수적이고 팽창적인 면모를 띠면서 침략전쟁의 이데올로기, 곧 제국주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자유와 국가적 통일을 위하여 국가권력은 이제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할 지고의 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각 국가는 자국의 강화를 위해 물리적 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발칸지역을 둘러싸고 슬라브족과 게르만족 사이에서 벌어진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는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는 말
- 지금까지 민족주의에 대한 저희조의 발제 내용이었습니다. 저희 조는 이번발제를 조사하고 준비하면서 민족주의 조사 이외에 약간의 토론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민족주의의 시작과 민족주의에 전개과정 중에서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점을 고려하여 민족주의의 바람직한 모습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입니다.
*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토론의 결론이라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저희 조에서 나온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현 세계의 흐름과 추세에 맞추어 민족주의의 모습이 평화 지향적이고 국제 협조 지향적이며 개방적. 도덕적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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