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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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구공업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대구공업의 발생기 (1910~1920년)
2. 대구공업의 확립기 (1920~1930년)
3. 대구공업의 침체기 (1930~1937년)
4. 대구공업의 부흥기 (1937년~해방까지)

결론

본문내용

는 그러한 과잉자본이 투자되기에 알맞은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구에 이식되어 대자본으로 건설된 공장은 군제제사의 대마공장, 조선어망의 대구제망공장과 가네부찌방적의 섬유공장 등이 있었고 중소자본에 의한 것으로는 동화직물, 남선타올 등의 섬유공장과 다나까철공의 닛다철물 등의 금속공장이 있었다.
대구에 있어서의 근대공업의 발전은 종래의 공장제수공업으로부터 공장제 공업으로 옮겨가는 고전적 발전과정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전시 경제체제의 확립을 서두는 일본 독점자본에 의하여 폭력적으로 강행되었다.
대구의 공업이 섬유공업에 편중되어 있었으므로 응당 타지역의 공업에 우선하여 개발되어야 했음에 불구하고 뒤늦게 본격적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것, 섬유공업 중에서도 대중의료품을 생산하는 면공업에 대한 자본이식이 선행되었다는 점 등은 자본이식의 목적이 나변에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결론
당시 식민지로서의 한국의 공업이 일본의 군사적 필요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지배되고 있었다. 한국공업이 그 근대적 기간공업의 발전에 있어서 식료품공업, 특히 정미공업의 발전지수가 높았다는 것은 한국산업구조의 식민지형적 성격을 일층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무렵의 대구공업의 발전은 균형적인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구축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도리어 대구공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만큼 일본경제에의 예속이 강화된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을 뿐이었으니, 이러한 일제가 남긴 소비재일변도의 특화현상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대구공업의 자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큰 암영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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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4.07.04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9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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