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 현상의 제시
1.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누드 열풍
Ⅱ . 본 론 : 구체적 분석
1. 현상적 측면에서 살펴본 누드 콘텐츠의 변천
2.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본 한국 사회의 누드 열풍
3. 누드 콘텐츠와 뉴미디어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분석
(1) 생산자 측면 - 왜 뉴미디어를 통해 공급하는가
(2) 소비자 측면 - 왜 뉴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는가
4. 누드 콘텐츠의 위상에 대한 분석 - 과연 성공거두었다 할수 있는가
(1) 인터뷰
(2) 설문조사
(3) 전문가의 코멘트
Ⅲ . 결 론 : 본문의 요약, 우리의 제언
1.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누드 열풍
Ⅱ . 본 론 : 구체적 분석
1. 현상적 측면에서 살펴본 누드 콘텐츠의 변천
2.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본 한국 사회의 누드 열풍
3. 누드 콘텐츠와 뉴미디어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분석
(1) 생산자 측면 - 왜 뉴미디어를 통해 공급하는가
(2) 소비자 측면 - 왜 뉴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는가
4. 누드 콘텐츠의 위상에 대한 분석 - 과연 성공거두었다 할수 있는가
(1) 인터뷰
(2) 설문조사
(3) 전문가의 코멘트
Ⅲ . 결 론 : 본문의 요약, 우리의 제언
본문내용
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예술로써 인정하기에 예술이라는 것이다. 마네가 그린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인정하기에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만일 19세기 프랑스에서 그러했듯, 대다수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며 야하고 음탕하다고 생각한다면, 마네의 그림은 아직까지도 저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누드 콘텐츠를 받아들임에 있어 ‘예술이라기 보다는 자극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더욱이 그러한 판단에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누드 콘텐츠는 예술이 아닌 자극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앞서 설문조사에서 모든 응답자가 ‘예술이라기 보다는 선정적이다.’라는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을 통해 누드 콘텐츠가 아직은 사회적으로 ‘야한 사진’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판단을 내릴수 있다. 누드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의 코멘트는 이러한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다음은 한국의 대표적 누드 모델이자 한국 누드 모델협회 회장인 하영은씨의 길거리 강연 중 연예인 누드에 대한 언급이다.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벗기만하면 돈을 번다는 생각이 순수 누드 예술을 훼손하고 더럽히고 있다. 누드예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연기를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단지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성적 호기심만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는 예술적 가치가 안 보인다. 단순히 벗었다는 이미지밖에 없다. 그것은 상업적 외설이다. 한마디로 누드가 뭔지도 모르면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알몸 보여주기에 불과한 얼치기 포르노그라피다. 벗기만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순수 누드예술을 훼손하고 더럽히고 있다. 누드는 완전한 알몸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가릴 거 다 가리고 단지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성적 호기심만을 부추기고 있다. 연기에서부터 연예인들은 누드예술을 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난다. 그들은 몸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누드모델들은 뼈(대)를 중심으로 인체예술을 표현한다. 그들은 인체의 아름다운 맛을 제대로 표현 못 하고 있다.”
<기사제공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
Ⅲ. 결론
우리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고있는 누드열풍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그러한 열풍을 몰고온 주역인 이른바 연예인 누드를 집중적으로 조망해 보았다. 연예인 누드는 올드 미디어 시대에도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폭발적(수백만에 이르는 접속자)이고 지속적(최근 2~3년간 끊임없이 발표되는 누드)인 현상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변화에 주목했다. 즉, 올드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던 누드 콘텐츠가 뉴미디어를 만남으로 인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도약할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보다 세밀한 관찰을 위해, 뉴미디어를 통해 어떤 연예인의 누드 콘텐츠가 서비스 되었으며, 생산자, 소비자 측면에서 뉴미디어 누드 콘텐츠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실제 사례를 근거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누드 콘텐츠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 ① 뉴미디어를 통해 누드 콘텐츠는 보다 강력한 힘을 획득했으며, 이는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누드 열풍의 바탕으로 작용했다.
② 누드 콘텐츠의 생산자는 수익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③ 그러나 실제 사례를 통해, 누드 콘텐츠를 통한 수익획득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될 수 없으며,
④ 예술성을 강조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하나의 자극’ 또는 ‘예술의 탈을 쓴 상업전략’ 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
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덧붙여 지금의 누드 열풍은 사회 전반 또는 문화 콘텐츠 전반에 걸친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이라기 보다는, 과장된 수치, 포장된 예술성이라는 껍데기만 존재하는 알맹이 없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수익성, 예술성 두 가지 측면 모두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는 누드 콘텐츠는 무의미한 것인가.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 과거 한국사회서 ‘누드’는 천대받고 금기시되던 단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누드 콘텐츠의 존재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실수이든 허수이든, 누드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부각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일본’ 이라고 하면 무조건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러브레터’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일본영화가 수입조차 되지 않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누드 콘텐츠가 문화의 한 영역으로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면, ‘누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느낌 나아가 감동은 우리의 문화적 경험의 하나로 존재할수 없을 것이다. ‘성’을 입밖에 올리는 것 조차 금기시하던 우리의 과거 현실과 비교해, 적어도 지금은 누드 콘텐츠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비록 연예인이 주체가 되어 누드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 서비스 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접어든이후 최근의 2~3년사이에 발생한 것이며, 다시말해 지극히 초보적이고 유아적인 단계라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누드 콘텐츠가 아직 걸음마 수준임을 전제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모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자료>>
-http://chunma.yu.ac.kr/%7Em0017041/rule1.html
-http://chunma.yu.ac.kr/%7Em0017041/rule6.html
-네이버,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31106000039499017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벗기만하면 돈을 번다는 생각이 순수 누드 예술을 훼손하고 더럽히고 있다. 누드예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연기를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단지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성적 호기심만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는 예술적 가치가 안 보인다. 단순히 벗었다는 이미지밖에 없다. 그것은 상업적 외설이다. 한마디로 누드가 뭔지도 모르면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알몸 보여주기에 불과한 얼치기 포르노그라피다. 벗기만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순수 누드예술을 훼손하고 더럽히고 있다. 누드는 완전한 알몸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가릴 거 다 가리고 단지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성적 호기심만을 부추기고 있다. 연기에서부터 연예인들은 누드예술을 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난다. 그들은 몸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누드모델들은 뼈(대)를 중심으로 인체예술을 표현한다. 그들은 인체의 아름다운 맛을 제대로 표현 못 하고 있다.”
<기사제공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
Ⅲ. 결론
우리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고있는 누드열풍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그러한 열풍을 몰고온 주역인 이른바 연예인 누드를 집중적으로 조망해 보았다. 연예인 누드는 올드 미디어 시대에도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폭발적(수백만에 이르는 접속자)이고 지속적(최근 2~3년간 끊임없이 발표되는 누드)인 현상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변화에 주목했다. 즉, 올드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던 누드 콘텐츠가 뉴미디어를 만남으로 인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도약할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보다 세밀한 관찰을 위해, 뉴미디어를 통해 어떤 연예인의 누드 콘텐츠가 서비스 되었으며, 생산자, 소비자 측면에서 뉴미디어 누드 콘텐츠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실제 사례를 근거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누드 콘텐츠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 ① 뉴미디어를 통해 누드 콘텐츠는 보다 강력한 힘을 획득했으며, 이는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누드 열풍의 바탕으로 작용했다.
② 누드 콘텐츠의 생산자는 수익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③ 그러나 실제 사례를 통해, 누드 콘텐츠를 통한 수익획득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될 수 없으며,
④ 예술성을 강조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하나의 자극’ 또는 ‘예술의 탈을 쓴 상업전략’ 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
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덧붙여 지금의 누드 열풍은 사회 전반 또는 문화 콘텐츠 전반에 걸친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이라기 보다는, 과장된 수치, 포장된 예술성이라는 껍데기만 존재하는 알맹이 없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수익성, 예술성 두 가지 측면 모두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는 누드 콘텐츠는 무의미한 것인가.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 과거 한국사회서 ‘누드’는 천대받고 금기시되던 단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누드 콘텐츠의 존재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실수이든 허수이든, 누드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부각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일본’ 이라고 하면 무조건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러브레터’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일본영화가 수입조차 되지 않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누드 콘텐츠가 문화의 한 영역으로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면, ‘누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느낌 나아가 감동은 우리의 문화적 경험의 하나로 존재할수 없을 것이다. ‘성’을 입밖에 올리는 것 조차 금기시하던 우리의 과거 현실과 비교해, 적어도 지금은 누드 콘텐츠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비록 연예인이 주체가 되어 누드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 서비스 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접어든이후 최근의 2~3년사이에 발생한 것이며, 다시말해 지극히 초보적이고 유아적인 단계라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누드 콘텐츠가 아직 걸음마 수준임을 전제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모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자료>>
-http://chunma.yu.ac.kr/%7Em0017041/rule1.html
-http://chunma.yu.ac.kr/%7Em0017041/rule6.html
-네이버,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31106000039499017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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