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의 감정과 본성이다. 지금 사람이 배가 고파도 어른을 보면 감히 먼저 먹지 않는 것은 사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면서도 감히 쉬려고 하지 않는 것은 대신해서 일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사양하고 아우가 형에게 사양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하고 아우가 형에게 사양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하고 아우가 형을 대신해서 일하는데, 이 두 가지 행동은 모두 본성에 반대되고 감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효자의 도리요 예의의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과 본성을 따르면 곧 사양하지 않게 되며, 사양을 하면 곧 감정과 본성에 어긋나게 된다. 이로부터 보면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선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서이다.
위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정과 성을 섞어 쓰고 있으며, 사람의 생리 욕구가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생리 욕구를 그는 악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적극적인 '化性起僞'가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순자가 말한 성악설의 성은 맹자가 성선을 말했을 때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순자의 성은 맹자가 보면 耳目之欲이요, 禽獸之性이다. 이에 맹자와 순자의 성론을 각각 心善論과 情惡論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때 심과 정이란 용어는 다분히 맹자의 용례를 따른 것이다. 사실 맹자는 심을 성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주어가 틀린 것이다. 따라서 양자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적어도 인성론상에서는 서로 반대의 입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순자가 성이라고 말한 금수지성과 다를 바 없는 이목지욕을 맹자도 선하다고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다시피 순자는 욕망을 성이라고 보아 그것은 악하다는 입장에서 맹자를 줄곧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가 욕망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끝내 인간이 악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인간을 적극적으로 선으로 이끌기 위한 전제로서 성악을 말했던 것이다. 순자 윤리학의 기본 틀은 '화성기위'이다. 성에 대한 적극적인 개조가 순자 인성론의 핵심이다. 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면 개조 대상인 성은 악의 자리를 차지 할 수밖에 없다. 화성기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예의와 사법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인간은 마침내 도덕적일 수 있게 된다. 한편 여기에 금수와의 차별성이 생긴다. 금수는 아무리 도덕 교화를 시켜도 도덕적으로 되지 않는다. 곧 화성기위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순자는 인간이 금수와 다른 이러한 '도덕적 가능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에게 악한 성 이외에 또 다른 성을 가정할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그의 성악론은 탄탄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성악」편 이외에서는 사람과 금수간의 차이점을 풍부하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른 존재와 달리 '氣', '生', '知'와 더불어 '義'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룸으로써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왕제편」), 사물이나 도덕에 대한 인식 능력도 본구하고 있음(「비상편」)을 말한다. 이 모두가 화성기위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근거이다. 이 모든 것을 빼 버린채 인간의 생리 욕구만을 들어 인성이 악하다고 한 주장은 자기 이론 체계 안에서도 모순을 일으킨다. 결국 순자는 맹자에 대해 비판에만 너무 급급했으며, 도덕론의 필요에 의해 너무 지나치게 성악론을 요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 선진 인성론의 종합적 검토
인성론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논의의 초점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선악 규정이다. 위에서 언급된 선진 시기의 인성론만 보아도, 공자의 성론은 선악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한다고 해도 고자의 성무선무불선에서 순자의 성악론까지 모두 다섯 가지이다. 이렇게 볼 때 논의의 중심이 되는 것은 성이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욕망, 바로 '금수지성'이 논쟁의 중심에 있다. 고자와 순자가 인간과 짐승간의 공통의 성에 착안하여 금수지성을 바로 인간의 성이라고 본 반면, 맹자는 인간과 짐승간의 차별성에 착안하여 인간만이 가진 '유'적 본성으로 도덕적 본성을 제기한다.
선진 시대의 인성론이 비록 도덕적 관심 아래 제한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양한 단계의 논의를 함께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별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선악 규정의 대상인가 아닌가, 그것은 선한가 악한가, 그렇다면 도덕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등이다. 이러한 단계의 논의를 가지고 선진 시대의 각 인성론을 한번 검토해 보면
고자의 '성무선무불선론'에서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선할 것도 선하지 않을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은 선악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 행위도 후천적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성가이위선가이위불선론'에서는 선천적인 본성이라든가 그것의 차별성, 선악이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다만 인간의 가소성을 강조한 뒤 선불선의 나뉨은 어디까지나 후천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자의 '성론'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유성선유성불선론'에서는 선천적인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다만 선천적인 차별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선한 사람과 불선한 사람을 선명히 나누고 있다. 결과적으로 불선한 사람은 끝내 도덕적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공자의 '上知'와 '下愚', '生而知之者'와 '學而知之者'등의 구분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맹자의 '성선론'은 금수와는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 도덕적 가능성을 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연히 선하다. 그러나 그 본성은 맹아의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존양과 확충의 공부가 필요하다.
순자의 '성악론'에서는, 고자와 같이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바 없게 된다. 이에 적극적으로 악한 본성을 변화시켜 도덕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위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정과 성을 섞어 쓰고 있으며, 사람의 생리 욕구가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생리 욕구를 그는 악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적극적인 '化性起僞'가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순자가 말한 성악설의 성은 맹자가 성선을 말했을 때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순자의 성은 맹자가 보면 耳目之欲이요, 禽獸之性이다. 이에 맹자와 순자의 성론을 각각 心善論과 情惡論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때 심과 정이란 용어는 다분히 맹자의 용례를 따른 것이다. 사실 맹자는 심을 성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주어가 틀린 것이다. 따라서 양자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적어도 인성론상에서는 서로 반대의 입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순자가 성이라고 말한 금수지성과 다를 바 없는 이목지욕을 맹자도 선하다고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다시피 순자는 욕망을 성이라고 보아 그것은 악하다는 입장에서 맹자를 줄곧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가 욕망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끝내 인간이 악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인간을 적극적으로 선으로 이끌기 위한 전제로서 성악을 말했던 것이다. 순자 윤리학의 기본 틀은 '화성기위'이다. 성에 대한 적극적인 개조가 순자 인성론의 핵심이다. 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면 개조 대상인 성은 악의 자리를 차지 할 수밖에 없다. 화성기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예의와 사법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인간은 마침내 도덕적일 수 있게 된다. 한편 여기에 금수와의 차별성이 생긴다. 금수는 아무리 도덕 교화를 시켜도 도덕적으로 되지 않는다. 곧 화성기위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순자는 인간이 금수와 다른 이러한 '도덕적 가능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에게 악한 성 이외에 또 다른 성을 가정할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그의 성악론은 탄탄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성악」편 이외에서는 사람과 금수간의 차이점을 풍부하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른 존재와 달리 '氣', '生', '知'와 더불어 '義'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룸으로써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왕제편」), 사물이나 도덕에 대한 인식 능력도 본구하고 있음(「비상편」)을 말한다. 이 모두가 화성기위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근거이다. 이 모든 것을 빼 버린채 인간의 생리 욕구만을 들어 인성이 악하다고 한 주장은 자기 이론 체계 안에서도 모순을 일으킨다. 결국 순자는 맹자에 대해 비판에만 너무 급급했으며, 도덕론의 필요에 의해 너무 지나치게 성악론을 요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 선진 인성론의 종합적 검토
인성론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논의의 초점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선악 규정이다. 위에서 언급된 선진 시기의 인성론만 보아도, 공자의 성론은 선악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한다고 해도 고자의 성무선무불선에서 순자의 성악론까지 모두 다섯 가지이다. 이렇게 볼 때 논의의 중심이 되는 것은 성이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욕망, 바로 '금수지성'이 논쟁의 중심에 있다. 고자와 순자가 인간과 짐승간의 공통의 성에 착안하여 금수지성을 바로 인간의 성이라고 본 반면, 맹자는 인간과 짐승간의 차별성에 착안하여 인간만이 가진 '유'적 본성으로 도덕적 본성을 제기한다.
선진 시대의 인성론이 비록 도덕적 관심 아래 제한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양한 단계의 논의를 함께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별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선악 규정의 대상인가 아닌가, 그것은 선한가 악한가, 그렇다면 도덕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등이다. 이러한 단계의 논의를 가지고 선진 시대의 각 인성론을 한번 검토해 보면
고자의 '성무선무불선론'에서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선할 것도 선하지 않을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은 선악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 행위도 후천적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성가이위선가이위불선론'에서는 선천적인 본성이라든가 그것의 차별성, 선악이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다만 인간의 가소성을 강조한 뒤 선불선의 나뉨은 어디까지나 후천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자의 '성론'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유성선유성불선론'에서는 선천적인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다만 선천적인 차별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선한 사람과 불선한 사람을 선명히 나누고 있다. 결과적으로 불선한 사람은 끝내 도덕적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공자의 '上知'와 '下愚', '生而知之者'와 '學而知之者'등의 구분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맹자의 '성선론'은 금수와는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 도덕적 가능성을 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연히 선하다. 그러나 그 본성은 맹아의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존양과 확충의 공부가 필요하다.
순자의 '성악론'에서는, 고자와 같이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바 없게 된다. 이에 적극적으로 악한 본성을 변화시켜 도덕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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