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본 론
결 론
본 론
결 론
본문내용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아주 미미한 소리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들에게 “왜”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하는 것이다.
18세기 의 영국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에 의하면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골드 스미스의 법칙이라고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악에 대하여 항의를 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더욱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 에드먼드 버크의 법칙이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칼럼리스트 홍사중의 ‘선량한 방관자’의 한 구절이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아주 좋아한다) 대화와 연대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를 향해 끊임없이 “왜”라는 문제제기를 하여야 한다. 지금은 사라졌으면 하는 악역에 불과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의 제기는 언젠간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우리들,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은 바로 이 끊임없는 문제제기일 것이다.
결 론
오늘은 4월 15일 총선날이다. 우리 집이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할 그 어떤 것도 없지만,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께서는 그리 한나라당이 좋은지(죄송합니다^-^;;), 나보고 누굴 찍을꺼냐고 계속 물어보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왜 한나라당을 찍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특정한 정치적인 이유나 아니면 인물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거구(한 일에 비해 너무 작긴 하지만), 그냥 될만한 사람을 찍고 그 사람이 잘하나 못하나 감시한다는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다음에 또 잘못해도 그때도 그러실꺼예요?”
어머니께서는 왜 화를 내고 그러냐며 또 나에게 화를 내신다. 선거 때문에 조용하던 집안에서 큰 목소리가 오고간다. 차라리 잘됐다. 무정의보다는 무질서가 좋은 것이다. 서로가 감정이 상해도 얘기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왜냐고 물어보자.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참지 말고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여 의문을 제기하자.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숨쉬고 있는 이 순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의 현재 상황과 방향성에 대해서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명심하고 있어야 할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병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별다른 고생 없이 나을 수 있지만 덮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온 몸으로 퍼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왜 끊임없이 말하는가. 왜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사회가 살아있기 위해서다. 고인 물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아픔이 뒤따른다. 그 아픔을 외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공포에 대한 소견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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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의 영국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에 의하면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골드 스미스의 법칙이라고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악에 대하여 항의를 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더욱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 에드먼드 버크의 법칙이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칼럼리스트 홍사중의 ‘선량한 방관자’의 한 구절이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아주 좋아한다) 대화와 연대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를 향해 끊임없이 “왜”라는 문제제기를 하여야 한다. 지금은 사라졌으면 하는 악역에 불과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의 제기는 언젠간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우리들,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은 바로 이 끊임없는 문제제기일 것이다.
결 론
오늘은 4월 15일 총선날이다. 우리 집이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할 그 어떤 것도 없지만,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께서는 그리 한나라당이 좋은지(죄송합니다^-^;;), 나보고 누굴 찍을꺼냐고 계속 물어보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왜 한나라당을 찍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특정한 정치적인 이유나 아니면 인물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거구(한 일에 비해 너무 작긴 하지만), 그냥 될만한 사람을 찍고 그 사람이 잘하나 못하나 감시한다는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다음에 또 잘못해도 그때도 그러실꺼예요?”
어머니께서는 왜 화를 내고 그러냐며 또 나에게 화를 내신다. 선거 때문에 조용하던 집안에서 큰 목소리가 오고간다. 차라리 잘됐다. 무정의보다는 무질서가 좋은 것이다. 서로가 감정이 상해도 얘기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왜냐고 물어보자.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참지 말고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여 의문을 제기하자.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숨쉬고 있는 이 순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의 현재 상황과 방향성에 대해서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명심하고 있어야 할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병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별다른 고생 없이 나을 수 있지만 덮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온 몸으로 퍼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왜 끊임없이 말하는가. 왜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사회가 살아있기 위해서다. 고인 물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아픔이 뒤따른다. 그 아픔을 외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공포에 대한 소견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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