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음악의 주체성과 음악이 북한주민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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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론
Ⅰ. 북한사회에서의 음악의 정의


☆ 본론
Ⅱ. 북한 음악의 개괄적 설명
ⅰ) 북한 음악의 이해

ⅱ) 시기별 북한음악의 특징(북한음악 변천과정)

Ⅲ. 북한 음악 교육
ⅰ) 북한 음악 교육의 목표

ⅱ) 음악교육 실상과 내용

ⅲ)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


Ⅳ. 주체의 음악 예술 교육이론
ⅰ) 주체음악의 내용과 형식

ⅱ) 주체음악으로서의 민족음악

ⅲ) 혁명 가극



☆ 결론
Ⅴ. 북한음악이 걸어온 역사회고와 전망과
단순한 음악이 아닌 사상으로서의 북한 음악

본문내용

걸고 중환자를 후방으로 호송하는 임무를 완성한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북한에서는 "공산주의의 전형을 창조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북한용어 400선집>, 연합뉴스, 1999, p.296
「금강산의 노래」는 1973년 4월 김일성의 61회 생일 기념작품으로 만들어 졌다. 일제때 나라 없고 돈 없는 죄로 생이별을 강요당했던 황석민 일가가 북한 공산체제하에서 다시 만나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수령이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구현하여 이 땅위에 마련한 사회주의 제도의 비할 수 없는 우월성을 밝혀 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현실주제의 가극창작에서 힘들다는 신비주의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영역에까지 도달해 가극예술의 위력을 새롭게 과시한 혁명적 대장"아리고 선전하고 있다. 「밀림아 이야기하라」는 1972년 첫 공연을 가졌으며 일제시대 구장으로 있던 주인공 최병훈의 이른 바 항일 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을 김일성 찬양과 결부시킨 작품이다. 북한에서는 "수령에 의하여 육성된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투철한 혁명정신과 영웅적 투쟁에 대한 영웅 서사시적 화폭을 통하여 수령이 밝혀준 정치적 생명에 관한 위대한 사상의 진리를 예술적으로 심오하게 일반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음악이론>,노동은 목원대 교수,「북한의 5대혁명가극과 5대민족가극」. pp.108 ~ pp.109
Ⅴ. 북한음악이 걸어온 역사회고와 전망,
그리고 단순한 음악이 아닌 사상으로서의 음악
역사적으로 서울이 음악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해방 후 북한은 5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남한과 비교하여 거의 대등한 수준에까지 왔는데 그것은 조선시대와 같이 국가적인 지원·육성·관리정책에 기인한다. 해방직후 북한 음악계는 남한에 비해 전문음악인수·단체·교육기관 등의 음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였다. 이런 북한 음악계가 비약적으로 발전을 한 것은 6.25로 인해 100 여명에 이르는 음악인들이 월북한데서 비롯한다. 그 음악인들이 당시 한반도 차원에서 전 장르에 걸쳐 민족음악을 추구한 중진으로서 월북을 북한의 음악계 조직과 전문기관이 개편되었고 여기에서 양성된 인재들을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등으로 유학시켜 부단하게 음악인들을 양성시킬 정도로 국가가 직접 관리했다는 점 등이 그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월북음악인들이 명인·명창으로 알려진 중진이었다는 점은 비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1966년부터 천리마 시대를 맞아 민족 음악의 현대화와 함께 혁명적 음악예술의 창작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월북한 민족 전통음악계가 판소리 발성과 창법이 비판을 받는 것과 같이 이 기간에 위축을 받는다. 이 기간 북한은 음색과 주법을 현대적 미감과 시대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민족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민족 전통악기 개량사업을 본격화한다. 가극이나 그 밖의 창작품, 또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배합하거나 민족발성(민성)과 양악발성(양성)이 배합되는 '주체적 관현악 편성이나 합창'이라는 '배합관현악'
) '배합관현악'은 1969년에 창설된 '만수대예술단'에서 선을 보이며 그후 1971년에 만들어진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피바다의 악기편성은 (개량된) 국악기에서 서양악기 (목·금관 및 현악)에 전자종합악기까지 혼합되어 있다.
또는 '배합합창'등의 편성법이 확립되어 창작의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1970년에 주목할 사실은 60년대 초반부터 문학예술계에 깊이 관여하고 문학 예술정책의 핵심주도자로 알려진 김정일의 지도에 의한다는 점이다. 즉, 음악을 비롯하여 북한 문화예술이 70년대부터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도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 영향력은 80년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80년대 들어와 주목할 사실은 82년 주체사상이 체계적인 면에서 완성성을 인정받고 등장하여 전 분야에 적용·실천한 점이다. 87년부터 주체음악총서 전 15권 중 제 1권인 「주체적 음악예술 건설방침」이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창작·연주·교육·연구·매스컴분야에 이것을 적용해갔다. 북한이 1984년에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주목받기에 충분한데 그것은 이 연구소가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음악흐름을 파악하고 교류 및 북한음악의 세계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국내외 음악창구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무릇 그러하듯 북한 역시 음악과 음악인들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집중적인 지원과 관리의 순기능과 국가의 방침이 절대적으로 나타난다는 역기능은 동시에 가진다.
요컨대, 음악교육은 그들의 교육이념에서 요구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집단주의, 증오교육, 이론과 실천의 결합, 조기 교육, 평등주의, 혁명전통교양, 주체사상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음악교육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위한 도구과목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교육 외에도 전파매체를 통해 오염된 음악의 충격에서 북한 주민들은 보호되어야 하며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음악교육자와 방송매체 관계자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하며,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민족 그 국가가 어떤 식으로 달라지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음악은 그 민족의 자각에 의해서만이 올바르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 음악은 단순한 곡조와 가사를 전달하는 자본주의 음악과는 달리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인간을 위한다는 주체 철학의 정초이다. 주체철학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것은 바로 주체사상의 핵심적 요구이기 때문에 이 요구를 구현하여 사회주의적 음악 예술의 본성과 사명을 밝히고 있는 주체 문예 이론에서 개념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사상으로서의 교시인 것이다.
●참고 문헌 (가나다 순)
·<북한의 예술>, 김문환, 을유문화사, 1989
·<북한 음악의 실상과 허상>, 한상우, 신원문화사, 1989
·<북한학 총론>, 김동규, 교육과학사, 1999
·<음악 사회학>, theodor w.adorno/권혁면 옮김, 탑출판사, 1989
●참고 사이트
·http://www.kpaf.org/kpaf_art/200004/200004(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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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8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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