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본인들에게 있어서의 목욕의 의미
2. 일본 목욕문화의 기원
3. 가정의 목욕
4. 대중목욕탕(센토오)에서의 목욕
5. 온 천
6. 남녀 혼욕에 관하여
7. 목욕에 관한 풍습
2. 일본 목욕문화의 기원
3. 가정의 목욕
4. 대중목욕탕(센토오)에서의 목욕
5. 온 천
6. 남녀 혼욕에 관하여
7. 목욕에 관한 풍습
본문내용
일본 특유의 관습임에 틀림이 없다.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7. 목욕에 관한 풍습
1) 동냥욕과 목욕계
쇠로 만든 냄비나 솥이 부족했던 시절, 모든 집에 목욕통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쇠는 여전히 귀중했고, 큰 목욕솥은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욕통이 있는 집에 가서 목욕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동냥 목욕'의 풍습이 생겼다 .또는 몇 집이 공동으로 목욕통을 설치하고 며칠만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해서 목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공동 목욕' 또는 '목욕계'라고 불렀다. 이런 형태는 주로 농촌이나 산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공동 목욕의 발상이 '센토'로 발전했다.
2) 시욕
또 다른 사람을 목욕 시켜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통 시욕이라 한다. 시욕을 행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 하여 옛날에는 많이 행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엄격히 말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욕에 관한 기록을 보면 대개 자신의 적선(積善)이나 사자(死者)의 추선(追善), 또는 자신이 죽은 후 자기의 명복을 위해 부교 사원의 욕실을 이용하여 승려나 일반인 또는 천민 및 죄인까지 시욕을 베풀었다 한다.
특히 사자의 추선을 위한 시욕의 경우, 욕탕에는 회향(回向)받을 수 있는 고인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고 그 앞에 향불을 피웠다. 이 때 입욕자들은 목욕하기 전과 후에 절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런 풍습은 최근까지 남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고인의 위패가 10여 개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 :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7. 목욕에 관한 풍습
1) 동냥욕과 목욕계
쇠로 만든 냄비나 솥이 부족했던 시절, 모든 집에 목욕통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쇠는 여전히 귀중했고, 큰 목욕솥은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욕통이 있는 집에 가서 목욕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동냥 목욕'의 풍습이 생겼다 .또는 몇 집이 공동으로 목욕통을 설치하고 며칠만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해서 목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공동 목욕' 또는 '목욕계'라고 불렀다. 이런 형태는 주로 농촌이나 산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공동 목욕의 발상이 '센토'로 발전했다.
2) 시욕
또 다른 사람을 목욕 시켜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통 시욕이라 한다. 시욕을 행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 하여 옛날에는 많이 행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엄격히 말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욕에 관한 기록을 보면 대개 자신의 적선(積善)이나 사자(死者)의 추선(追善), 또는 자신이 죽은 후 자기의 명복을 위해 부교 사원의 욕실을 이용하여 승려나 일반인 또는 천민 및 죄인까지 시욕을 베풀었다 한다.
특히 사자의 추선을 위한 시욕의 경우, 욕탕에는 회향(回向)받을 수 있는 고인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고 그 앞에 향불을 피웠다. 이 때 입욕자들은 목욕하기 전과 후에 절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런 풍습은 최근까지 남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고인의 위패가 10여 개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 :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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