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전의 또 하나의 전쟁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의 유격투쟁과 이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은 한반도의 남한이 사실상 전쟁 이전의 전쟁상태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38선을 경계로 한 지역에서는 49년부터 사실상의 전쟁상태를 경험했다. 북한의 자료에 의하면 38선 이북에 대한 남한군의 공격은 432회였으며, 49,000여 명에 달하는 군인과 경찰이 동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자료에서도 874회에 달하는 북한군의 불법침입이나 사격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두 기록에 의하면 원인이 무엇이든 38선을 둘러싼 엄청난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38선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분할점령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38선 경계를 미군이 남한군에게 념겨주면서 분쟁이 발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정부수립 후 남한 내에서 좌파의 무장투쟁과 김구 암살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미군 철수가 진행되던 시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은 미군 철수를 차단하거나, 미군의 철수를 차단하지 못할 경우 군사원조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38선 분쟁을 격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반면 북한은 미군 철수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38선 도발에 대해서 대응을 자제하는 편이었고, 미국 역시 38선 분쟁의 확산을 원하지 않았다. 38선 분쟁은 49년 5월의 송악산 전투에서 시작되어 38선 전역에서 일어났지만 분쟁의 핵심지역은 서해안의 옹진반도를 중심으로 전투였다. 이 분쟁은 다음해 50년의 한국전쟁을 예비하는 작은 전쟁이었다.
  • 가격1,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4.10.05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957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