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관 객(觀客)
1. 관객의 중요성
관객은 왜 극장을 찾는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재정적 지원과 연극사업계획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연극이 제공하는 것
관객의 육체적 존재
2. 관객에 관한 이론
(1) 시간적 동일성 획득으로 인한 환상작용
(2) 시간적 동일성 배제에 의한 소외효과
(3) 삼각형의 귀환효과
환경연극
1. 관객의 중요성
관객은 왜 극장을 찾는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재정적 지원과 연극사업계획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연극이 제공하는 것
관객의 육체적 존재
2. 관객에 관한 이론
(1) 시간적 동일성 획득으로 인한 환상작용
(2) 시간적 동일성 배제에 의한 소외효과
(3) 삼각형의 귀환효과
환경연극
본문내용
및 연출가들을 단원으로 하여 설립한 것이었다. 공연단체라기보다는 워크샵에 더 가가왔던동극단은 부정기적으로 작품을 공개했을 분이며 1974년에 해체되었다.
클토우스키처럼 차이킨과 펠트만도 연극특유의 요소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은 여러 다양한 조건 아래서 공연을 했지만, 항상 배우와 관객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허용하는 큰 개방공간을 선호했다. 대체로 장치는 없었고 조명도 최소한으로 국한되었다. 배우들은 공연중 내내 연습복이나 일상복을 입었으며; 분장을 하지 않았고 도구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배우와 행동에 거의 모든 역점이 주어졌다.
그러나 오픈 씨어터가 폴랜드 실험극단과 많은 수법들을 공통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의식과 정화에 대한 관심은 함께 나누지 않았다. 그 보다는 오히려 오픈 씨어터의 대부분의 작업은 당대의 정치적·도덕적 ·사회적 가치체계에 대한 촌평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 작업은 역할연기에 대한 현대심리학 이론들과 그리고 비올라 스폴린의 '즉흥연극'에서 묘사된 것들과 유사한 연극놀이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변신'에 관심을 두었다. 변신의 대상은 사람, 동물 또는 물체, 상황, 목표 또는 시간과 공간 등이었다. 변화들은 전이과정없이 급속하게 발생하기 일쑤였다. 따라서 리얼리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취급되었고 개성과 역할도 앞뒤의 내용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상태로서 다루어졌다. 오픈 씨어터의 배우들은 성격창조의 보조수단으로서 분장이나 의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변신을 전달함에 있어서 순정히 즉흥과 연기에 의존했다. 예를 들어 반 이탤리의<뱀>에서는 같은 배우가 행렬을 구경하는 군중의 일원으롭터, 자객, 뱀, 또는 나무의 한부분, 구혼자, 아이, 자기자신 등등으로 바른 속도로 변해갔다.
오픈 씨어트의 공연물들은 대체로 자체의 희곡작가들과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진행된 워크샵으로부터 발전한 대본에 바탕을 두었다. 전형적으로 한 작각가 아웃라인과 상황 또는 착상을 제공하면; 배우들이 즉흥연기와 기타의 기술을 통해서 모든 가능치들을 추구해 본다; 여기서 극작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선택한다. 동 극단의 가장 흥미로왔던 공연 가운데 일부는 이런 방법으로 탄생하였다.
환경연극
캐프롱로 하여금 해프닝을 고안하도록 자극했던 환경에 대한 관시은 1960년대에 다른 사람들로 항금 '환경연극'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였다. '환경연극'은 TDR의 편집기자였던 리차드 세크너가 일반화한 용어이다. 세크너에 다르면, 환경연극은 해프닝과 전통연극 사이의 어딘가에 속한다. 여기서는 관객들과 배우들이 같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며 관객은 제아무리 자기가 관람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해도 전체 이벤트의 한 부분이 된다. 이벤트는 '발견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또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적합한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개조된 장소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극장구조가 파기되고 그 대신 관객과 배우들이 서로 뒤섞일 수 있는 장소가 들어선다. 공간과 관객-연기자 관계의 성격상, 초점이 신축적이며 다양해지고 또한 한 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된다.
1968년 세크너는 그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퍼포먼스 그룹을 창단했다. 이 그룹은 개조된 차고에서 작업하는데 여기서는 공간이 완전한 신축성을 갖는다. 좌석은 없다; 약간의 픗랫포옴들이 흩어져잇어 관ㄱㄱ들이 그 위에 앉을 수도 있고, 또는 연기구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그룹은 제1회 공연작품인 <다이어너스69>로써 상당한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제나 '환경연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니지만 세크너가 묘사한 유형의 공연들이 1960년대말에는 비교적 일반화되었다. 1969년에 루카 론ㅋ니는 <오를란드 퓨리오소>로써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원래 이태리의 스폴레토에서 있었던 동서양의 축제에서 공연되었고 그 뒤 파리와 뉴욕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큰 개방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무대를 사용했는데, 매우 빠른 속도로 드나들 수 있는 바퀴달린 높은 이동식 플랫포옴들과 서있는 관객들이 각 무대를 점거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각각의 고정된 N대 위에서, 그리고 가운데 구역의 하나 도는 그 이상의 수레 위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론코니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의 이야기가 요술에 걸린 성들, 무당들, 사로잡힌 처녀들,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기사들의 여러 모험담들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플로트 가닥들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 원래 이야기가 창조하는 난잡한 효과와 동일한 요과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효과는 거리의 구경거리, 행렬, 해프닝, 및 여러 희곡단편들을 결합한 것으로서 모두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환경연극의 또다른 주요 예가 장-루이 바로의 <라블레>인데, 파리이 운동경기장에서 초연된 후 브레쉘, 런던, 베를린, 뉴욕 및 기타 지역에서 상연되었다. 라블레의 작품들을 세 시간 짜리로 각색한 이 작품은 -어떤 부분은 해설되었고, 또 어떤 부분은 연기되었으며, 때대로 여러 장면들이 동시에 벌어졌다-중앙의 링과 객석으로 뻗어나온 RUDTKAS 위에서 공연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환경연극이 아리안느 무시킨이 지휘하는 떼아뜨르 뒤 쏠레이유가 창조한 <1789>이다. 이 작품은 1970년 밀리노에서 초연된 후 파리 바로 바깥의 폐허화된 화약공장으로 옮겨갔다. 작품은 프랑스 혁명의 초기 국면을 다루었고 이 혁명의 목표들이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욕망 때문에 좌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공연을 위해서 공연공간의 사방을 둘러싸고 플랫포옴들이 세워졌다. ;혁명군중으로 취급되는 관객은 한 가운데 서 있었다. 1975년에 떼아뜨르 뒤 쏠레이유는 <황금시대>를 상연하였는데, 이는 물질주의의 주제를 복잡하게 변형시킨 것으로서 여기서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움직이도록 요구받았다. 이렇게 복잡한 공연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연극의 개념을 확대하고 혁신적인 제작기술을 자극하는 역할을 해냈다.
<참고문헌>
한국 극작가론, 김길수, 평민사, 2002
클토우스키처럼 차이킨과 펠트만도 연극특유의 요소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은 여러 다양한 조건 아래서 공연을 했지만, 항상 배우와 관객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허용하는 큰 개방공간을 선호했다. 대체로 장치는 없었고 조명도 최소한으로 국한되었다. 배우들은 공연중 내내 연습복이나 일상복을 입었으며; 분장을 하지 않았고 도구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배우와 행동에 거의 모든 역점이 주어졌다.
그러나 오픈 씨어터가 폴랜드 실험극단과 많은 수법들을 공통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의식과 정화에 대한 관심은 함께 나누지 않았다. 그 보다는 오히려 오픈 씨어터의 대부분의 작업은 당대의 정치적·도덕적 ·사회적 가치체계에 대한 촌평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 작업은 역할연기에 대한 현대심리학 이론들과 그리고 비올라 스폴린의 '즉흥연극'에서 묘사된 것들과 유사한 연극놀이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변신'에 관심을 두었다. 변신의 대상은 사람, 동물 또는 물체, 상황, 목표 또는 시간과 공간 등이었다. 변화들은 전이과정없이 급속하게 발생하기 일쑤였다. 따라서 리얼리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취급되었고 개성과 역할도 앞뒤의 내용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상태로서 다루어졌다. 오픈 씨어터의 배우들은 성격창조의 보조수단으로서 분장이나 의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변신을 전달함에 있어서 순정히 즉흥과 연기에 의존했다. 예를 들어 반 이탤리의<뱀>에서는 같은 배우가 행렬을 구경하는 군중의 일원으롭터, 자객, 뱀, 또는 나무의 한부분, 구혼자, 아이, 자기자신 등등으로 바른 속도로 변해갔다.
오픈 씨어트의 공연물들은 대체로 자체의 희곡작가들과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진행된 워크샵으로부터 발전한 대본에 바탕을 두었다. 전형적으로 한 작각가 아웃라인과 상황 또는 착상을 제공하면; 배우들이 즉흥연기와 기타의 기술을 통해서 모든 가능치들을 추구해 본다; 여기서 극작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선택한다. 동 극단의 가장 흥미로왔던 공연 가운데 일부는 이런 방법으로 탄생하였다.
환경연극
캐프롱로 하여금 해프닝을 고안하도록 자극했던 환경에 대한 관시은 1960년대에 다른 사람들로 항금 '환경연극'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였다. '환경연극'은 TDR의 편집기자였던 리차드 세크너가 일반화한 용어이다. 세크너에 다르면, 환경연극은 해프닝과 전통연극 사이의 어딘가에 속한다. 여기서는 관객들과 배우들이 같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며 관객은 제아무리 자기가 관람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해도 전체 이벤트의 한 부분이 된다. 이벤트는 '발견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또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적합한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개조된 장소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극장구조가 파기되고 그 대신 관객과 배우들이 서로 뒤섞일 수 있는 장소가 들어선다. 공간과 관객-연기자 관계의 성격상, 초점이 신축적이며 다양해지고 또한 한 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된다.
1968년 세크너는 그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퍼포먼스 그룹을 창단했다. 이 그룹은 개조된 차고에서 작업하는데 여기서는 공간이 완전한 신축성을 갖는다. 좌석은 없다; 약간의 픗랫포옴들이 흩어져잇어 관ㄱㄱ들이 그 위에 앉을 수도 있고, 또는 연기구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그룹은 제1회 공연작품인 <다이어너스69>로써 상당한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제나 '환경연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니지만 세크너가 묘사한 유형의 공연들이 1960년대말에는 비교적 일반화되었다. 1969년에 루카 론ㅋ니는 <오를란드 퓨리오소>로써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원래 이태리의 스폴레토에서 있었던 동서양의 축제에서 공연되었고 그 뒤 파리와 뉴욕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큰 개방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무대를 사용했는데, 매우 빠른 속도로 드나들 수 있는 바퀴달린 높은 이동식 플랫포옴들과 서있는 관객들이 각 무대를 점거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각각의 고정된 N대 위에서, 그리고 가운데 구역의 하나 도는 그 이상의 수레 위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론코니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의 이야기가 요술에 걸린 성들, 무당들, 사로잡힌 처녀들,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기사들의 여러 모험담들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플로트 가닥들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 원래 이야기가 창조하는 난잡한 효과와 동일한 요과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효과는 거리의 구경거리, 행렬, 해프닝, 및 여러 희곡단편들을 결합한 것으로서 모두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환경연극의 또다른 주요 예가 장-루이 바로의 <라블레>인데, 파리이 운동경기장에서 초연된 후 브레쉘, 런던, 베를린, 뉴욕 및 기타 지역에서 상연되었다. 라블레의 작품들을 세 시간 짜리로 각색한 이 작품은 -어떤 부분은 해설되었고, 또 어떤 부분은 연기되었으며, 때대로 여러 장면들이 동시에 벌어졌다-중앙의 링과 객석으로 뻗어나온 RUDTKAS 위에서 공연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환경연극이 아리안느 무시킨이 지휘하는 떼아뜨르 뒤 쏠레이유가 창조한 <1789>이다. 이 작품은 1970년 밀리노에서 초연된 후 파리 바로 바깥의 폐허화된 화약공장으로 옮겨갔다. 작품은 프랑스 혁명의 초기 국면을 다루었고 이 혁명의 목표들이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욕망 때문에 좌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공연을 위해서 공연공간의 사방을 둘러싸고 플랫포옴들이 세워졌다. ;혁명군중으로 취급되는 관객은 한 가운데 서 있었다. 1975년에 떼아뜨르 뒤 쏠레이유는 <황금시대>를 상연하였는데, 이는 물질주의의 주제를 복잡하게 변형시킨 것으로서 여기서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움직이도록 요구받았다. 이렇게 복잡한 공연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연극의 개념을 확대하고 혁신적인 제작기술을 자극하는 역할을 해냈다.
<참고문헌>
한국 극작가론, 김길수, 평민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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