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연암의 생애
Ⅲ. 연암의 사상
Ⅳ. 연암의 문학 성향
Ⅴ. 연암의 문학 작품
Ⅵ. 맺음말
Ⅱ. 연암의 생애
Ⅲ. 연암의 사상
Ⅳ. 연암의 문학 성향
Ⅴ. 연암의 문학 작품
Ⅵ. 맺음말
본문내용
중 일부를 보면 '문과의 양반이야말로 그 길이가 두 자도 못되어 보잘것이 없지만 온갖 물건이 예서 갖추어 나게 되니 이는 돈자루나 다름이 없다......이웃의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의 농민들을 잡아다가 내 밭의 김을 먼저 매게 하고 ......'라고 되어 있다. 이것들은 부정과 비리에 물들어 있는 양반들의 모습, 하층민을 괴롭히는 양반들의 모습을 제시하여 당시의 위선적인 양반들의 모습을 제시하고 또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식과 허례와 비인도적인 양반의 특권을 모두 듣고 난 천부의 말, '아이구, 그만 두시오. 참 맹랑합니다그려, 당신네들이 날 도둑놈이 되라 하시오? '라는 말은 '양반전'에서 풍자의 극치를 이룬다 할 수 있겠다.
연암은 당시의 하층계급인 천부를 풍자의 주체로 내세워 허례, 허식적인 형식주의에만 얽매어 현실 생활에는 무능력하고 권력에는 아부하면서도 서민들에게는 억압적이었던 당시 양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4.허생전(許生傳)
이 글은 전체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전반부의 내용을 보면 책만 읽던 허생이 그의 아내로부터 질타를 받고 그의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집을 나선 허생은 고을의 부자인 卞氏에게 만금을 빌어 안성에서 온갖 과일을 독점하고 칼, 호미, 베, 명주 등을 사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서 말총을 독점하여 이익을 남긴다. 여기서 허생은 '만금으로 나라의 경제를 기울였으니 나라의 경제를 짐작할 수 있구나'라고 탄식한다. 이러한 탄식은 당시의 국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허생은 변씨와의 대화에서 '우리 조선은 배가 외국과 통치 못하고 수레가 국내에 두루 다니지 못하는 까닭에 백물이 이 안에서 생겨서 곧 이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라는 말로 매점행위를 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점들을 지적하면서 취약했던 경제정책을 풍자하고 나아가 그 해결책 즉, 수레사용의 적극적인 사용도 권장하고 있다. 백만금을 번 허생은 邊山의 도둑 소굴로 찾아가 나눈 대화 중 '너희들은 아내와 밭이 있느냐?'는 물음에 '밭이 있고 아내가 있다면 어찌 이토록 괴롭게 도둑질을 하겠는가?'라는 대화에서 苛斂誅求 에 시달려 농사를 등지고 도적이 되어야만 했던 유망민들의 실상을 통하여 당시의 불합리한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는 북벌론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던 이완 대장과의 대화를 통하여 인재등용의 모순과 무모한 북벌론의 허구성등 정치적인 모순점을 풍자하고 있다. 허생이 이완대장에게 제시한 북벌삼안(北伐三案)에 이러한 내용이 집약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초야에 묻혀 사는 인재를 천거하면서 인재등용의 불합리에 대하여 풍자하였고, 둘째, 명나라 장수의 후예와 國婚을 맺게 하자는 실현 불가능한 의견을 제시하여 비현실주의 적인 북벌주의에 대하여 조소섞인 풍자를 가하고 있으며, 셋째, 胡服 을 입고 변발을 하게 하여 국내의 자제들을 청의 과거 시험에 응시하게 하고 상민들에게는 그 나라의 허실을 보게 하여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이 보다 실질적인 것임을 보여주면서 서 북벌론의 허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정자들을 풍자하였다.
5.광문자전(廣文者傳)
광문이라는 인물은 원래 종루 네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였다. 거지 아이들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구멍집을 지키던 광문은 병든 거지 아이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매까지 맞으며 쫓겨나게 되었는데, 이때 광문은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거지 아이들의 행위를 살펴보면 그들의 속물근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추대한 광문이라는 인물에게 우두머리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대신 자신들의 동료인 거지 아이의 살인자 누명을 씌워 쫓아내는 행위에서 앞 뒤 가려보지 않고 무조건 자신들이 이로울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경솔하고 속된 행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연암은 바로 이러한 행위를 풍자하고 있다.
거지 아이들에게 쫓겨난 광문은 동네 어떤 집에 들어가 주인 영감의 배려로 약방 부잣집에서 고용살이를 하게 된다. 고용살이를 하던 중, 또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지만 처조카의 출현으로 그 누명을 벗게된다. 여기에서도 역시 연암은 인간의 숭고성이나 위대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본래의 약점인 믿음성의 결여 즉, 의심하는 마음을 지적함으로서 속물(俗物)화된 인간 내부의 속성을 풍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더 지적할 점은 약방주인이 비록 광문을 의심하였지만 뒤에 잘못을 깨닫고 광문에게 사과를 시킴으로써 풍자의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선의 목적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광문은 소리도 아주 잘하여 장안의 이름난 기생들은 그의 소리에 맞추어서만 춤을 추었다. 그러나 지위가 높다는 양반들은 그의 겉모양 새만 보고 이름난 기생들의 춤을 보려고 하면서도 광문의 출현을 좋지 않게 여겨 그를 두들겨 몰아내려 하였다.
Ⅵ.맺음말
지금까지 연암의 사상과 문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연암이 이용후생의 중요성과 청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말하고 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였기에 당시에 있어서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사상과 문학정신은 그가 죽은 뒤 조선 정치의 후진성, 즉 정조 사후 세도 정치의 등장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가운데 그의 손자 박규수는 조부의 사상을 연구, 계승 19세기말 유홍기, 오경석등의 개화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또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이 있게 된다.
결국 연암이 당시에 펼쳤던 사상과 문학은 근대화로 가는 첩경이 되었는데 이러한 정신은 그의 근엄. 방정하면서도 호탕. 방일한 양면성을 근간으로한 현실 비판적인 정신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선구자적인 선비의 자세를 고고하게 견지한 18세기의 지식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 참조●
http://dragon.skku.ac.kr
http://www.dajaba.com
http://user.chollian.net/~geumdang/main1-2.ht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myhome.shinbiro.com/~sjstory/hime.htm
이렇게 가식과 허례와 비인도적인 양반의 특권을 모두 듣고 난 천부의 말, '아이구, 그만 두시오. 참 맹랑합니다그려, 당신네들이 날 도둑놈이 되라 하시오? '라는 말은 '양반전'에서 풍자의 극치를 이룬다 할 수 있겠다.
연암은 당시의 하층계급인 천부를 풍자의 주체로 내세워 허례, 허식적인 형식주의에만 얽매어 현실 생활에는 무능력하고 권력에는 아부하면서도 서민들에게는 억압적이었던 당시 양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4.허생전(許生傳)
이 글은 전체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전반부의 내용을 보면 책만 읽던 허생이 그의 아내로부터 질타를 받고 그의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집을 나선 허생은 고을의 부자인 卞氏에게 만금을 빌어 안성에서 온갖 과일을 독점하고 칼, 호미, 베, 명주 등을 사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서 말총을 독점하여 이익을 남긴다. 여기서 허생은 '만금으로 나라의 경제를 기울였으니 나라의 경제를 짐작할 수 있구나'라고 탄식한다. 이러한 탄식은 당시의 국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허생은 변씨와의 대화에서 '우리 조선은 배가 외국과 통치 못하고 수레가 국내에 두루 다니지 못하는 까닭에 백물이 이 안에서 생겨서 곧 이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라는 말로 매점행위를 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점들을 지적하면서 취약했던 경제정책을 풍자하고 나아가 그 해결책 즉, 수레사용의 적극적인 사용도 권장하고 있다. 백만금을 번 허생은 邊山의 도둑 소굴로 찾아가 나눈 대화 중 '너희들은 아내와 밭이 있느냐?'는 물음에 '밭이 있고 아내가 있다면 어찌 이토록 괴롭게 도둑질을 하겠는가?'라는 대화에서 苛斂誅求 에 시달려 농사를 등지고 도적이 되어야만 했던 유망민들의 실상을 통하여 당시의 불합리한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는 북벌론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던 이완 대장과의 대화를 통하여 인재등용의 모순과 무모한 북벌론의 허구성등 정치적인 모순점을 풍자하고 있다. 허생이 이완대장에게 제시한 북벌삼안(北伐三案)에 이러한 내용이 집약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초야에 묻혀 사는 인재를 천거하면서 인재등용의 불합리에 대하여 풍자하였고, 둘째, 명나라 장수의 후예와 國婚을 맺게 하자는 실현 불가능한 의견을 제시하여 비현실주의 적인 북벌주의에 대하여 조소섞인 풍자를 가하고 있으며, 셋째, 胡服 을 입고 변발을 하게 하여 국내의 자제들을 청의 과거 시험에 응시하게 하고 상민들에게는 그 나라의 허실을 보게 하여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이 보다 실질적인 것임을 보여주면서 서 북벌론의 허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정자들을 풍자하였다.
5.광문자전(廣文者傳)
광문이라는 인물은 원래 종루 네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였다. 거지 아이들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구멍집을 지키던 광문은 병든 거지 아이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매까지 맞으며 쫓겨나게 되었는데, 이때 광문은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거지 아이들의 행위를 살펴보면 그들의 속물근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추대한 광문이라는 인물에게 우두머리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대신 자신들의 동료인 거지 아이의 살인자 누명을 씌워 쫓아내는 행위에서 앞 뒤 가려보지 않고 무조건 자신들이 이로울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경솔하고 속된 행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연암은 바로 이러한 행위를 풍자하고 있다.
거지 아이들에게 쫓겨난 광문은 동네 어떤 집에 들어가 주인 영감의 배려로 약방 부잣집에서 고용살이를 하게 된다. 고용살이를 하던 중, 또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지만 처조카의 출현으로 그 누명을 벗게된다. 여기에서도 역시 연암은 인간의 숭고성이나 위대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본래의 약점인 믿음성의 결여 즉, 의심하는 마음을 지적함으로서 속물(俗物)화된 인간 내부의 속성을 풍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더 지적할 점은 약방주인이 비록 광문을 의심하였지만 뒤에 잘못을 깨닫고 광문에게 사과를 시킴으로써 풍자의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선의 목적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광문은 소리도 아주 잘하여 장안의 이름난 기생들은 그의 소리에 맞추어서만 춤을 추었다. 그러나 지위가 높다는 양반들은 그의 겉모양 새만 보고 이름난 기생들의 춤을 보려고 하면서도 광문의 출현을 좋지 않게 여겨 그를 두들겨 몰아내려 하였다.
Ⅵ.맺음말
지금까지 연암의 사상과 문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연암이 이용후생의 중요성과 청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말하고 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였기에 당시에 있어서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사상과 문학정신은 그가 죽은 뒤 조선 정치의 후진성, 즉 정조 사후 세도 정치의 등장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가운데 그의 손자 박규수는 조부의 사상을 연구, 계승 19세기말 유홍기, 오경석등의 개화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또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이 있게 된다.
결국 연암이 당시에 펼쳤던 사상과 문학은 근대화로 가는 첩경이 되었는데 이러한 정신은 그의 근엄. 방정하면서도 호탕. 방일한 양면성을 근간으로한 현실 비판적인 정신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선구자적인 선비의 자세를 고고하게 견지한 18세기의 지식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 참조●
http://dragon.skku.ac.kr
http://www.dajaba.com
http://user.chollian.net/~geumdang/main1-2.ht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myhome.shinbiro.com/~sjstory/him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