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시의 자아 찾기―자살
여성의 자아 찾기
여성의 자아 찾기
본문내용
어려울지 몰라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JESSIE : ..... (There is no selfpity here) That's what this is about. It's somebody I lost, all right, it's my own self. Who I never was. Or who I tried to be and never got there. Somebody I waited for who never came. And never sill. So, see, it doesn't much matter what else happens in the world or in this house, even. I'm what was worth waiting for and I didn't make it. Me . . . who might have made a difference to me . . . i'm not going to show up, so there's no reason to stay, except to keep you company, and that's . . . not reason enough because I'm not . . . very good company. (Pause) Am I. (p. 76)
위의 제시의 대사에도 나타나듯이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고, 그녀는 자아마저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이미 상실한 그 자아 즉 "그녀의 내적인 자아"는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참된 자아를 다시 한번 애타게 기다려 왔으나 어린 시절 잠깐 빛을 발했던 그녀의 진정한 자아는 두 번 다시 찾아와 주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자아를 상실한 제시에게는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었다. 달리 좋게 바꾸어 볼 수도 없었으며, 설사 지금 보다 나아진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그녀는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제시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삶과 죽음의 선택에 있어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비록 제시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자살이란 그녀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죽음이 패배자로서의 삶의 도피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와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는 즉 자아를 찾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직장 사람들로부터, 부모 형제로부터, 남편과 아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제시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 진실한 대화와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늘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만이 초래되는 부조리를 경험해야만 했으며, 그럼으로써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삶 속에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런 그녀는 삶의 전면적인 실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소한의 자유, 즉 자기의 방식으로 자기가 선택한 시간에 죽을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의 한 조각을 붙들었던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자살 의도를 분명히 했고, 약속대로 방아쇠를 당긴 제시의 경우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의 델마의 대사에서도 보이듯이 제시를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의, 가족의, 그리고 사회의 종속물인 것처럼 그녀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대해 왔던 제시의 주변 상황이 그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즉 제시로 하여금 방아쇠에 걸린 그녀의 손가락을 움직이게끔 했을 것이다.
MAMA : Jessie, Jessie, child . . . Forgive me. (Pause) I thought you were mine. (p.89)
JESSIE : ..... (There is no selfpity here) That's what this is about. It's somebody I lost, all right, it's my own self. Who I never was. Or who I tried to be and never got there. Somebody I waited for who never came. And never sill. So, see, it doesn't much matter what else happens in the world or in this house, even. I'm what was worth waiting for and I didn't make it. Me . . . who might have made a difference to me . . . i'm not going to show up, so there's no reason to stay, except to keep you company, and that's . . . not reason enough because I'm not . . . very good company. (Pause) Am I. (p. 76)
위의 제시의 대사에도 나타나듯이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고, 그녀는 자아마저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이미 상실한 그 자아 즉 "그녀의 내적인 자아"는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참된 자아를 다시 한번 애타게 기다려 왔으나 어린 시절 잠깐 빛을 발했던 그녀의 진정한 자아는 두 번 다시 찾아와 주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자아를 상실한 제시에게는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었다. 달리 좋게 바꾸어 볼 수도 없었으며, 설사 지금 보다 나아진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그녀는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제시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삶과 죽음의 선택에 있어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비록 제시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자살이란 그녀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죽음이 패배자로서의 삶의 도피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와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는 즉 자아를 찾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직장 사람들로부터, 부모 형제로부터, 남편과 아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제시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 진실한 대화와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늘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만이 초래되는 부조리를 경험해야만 했으며, 그럼으로써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삶 속에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런 그녀는 삶의 전면적인 실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소한의 자유, 즉 자기의 방식으로 자기가 선택한 시간에 죽을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의 한 조각을 붙들었던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자살 의도를 분명히 했고, 약속대로 방아쇠를 당긴 제시의 경우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의 델마의 대사에서도 보이듯이 제시를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의, 가족의, 그리고 사회의 종속물인 것처럼 그녀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대해 왔던 제시의 주변 상황이 그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즉 제시로 하여금 방아쇠에 걸린 그녀의 손가락을 움직이게끔 했을 것이다.
MAMA : Jessie, Jessie, child . . . Forgive me. (Pause) I thought you were mine.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