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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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지도의 의미

2.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3. 천하도

4. 대동여지도

5. 18세기 지도제작기술

6. 19세기 군현지도 : 경기도 지도 해설

7. 고산자 김정호의 지리사상

본문내용

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 방식이다. 즉 각 지역 단위로 지역의 성격을 기술하는 지역별 지지와, 강역?도로?국방?산천 등 주제별 지리학을 결합시킨 형태로서 주목된다. 이는 조선 전기의 전국지리지 편찬과 조선 후기의 읍지 편찬의 맥을 계승한 후 조선 후기에 새로 꽃피운 실학적 지리학의 연구 성과를 지리지라는 틀에 종합하여 집대성하려는 시도였다고 보인다.
현대지리학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지역지리학의 연구방법과 계통지리학적인 연구 방법을 결합하여 완벽한 지지를 만듦으로써 국토를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틀을 「대동지지」에서 정립하려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실학적 지리학의 대두와 발전은 상업?유통 경제의 발달 등 국내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와 그와 관련된 국토 공간 구조의 변화에 바탕한 것이기 때문에, 실학적 지리학을 지리지에 접합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변모되고 있던 사회, 경제, 공간 구조를 반영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내용상으로 보면, 김정호의 지지들은 이전의 전국지리지나 읍지들과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중시되던 인물?성씨?시문에 관련된 항목들과 내용이 제외되어, 지리지의 사실적, 물질적 측면이 강조된 점이다.
둘째는 군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동여도지」에는 무비(武備) 편을 두고 「성지(城池)」?「전략(戰略)」 조를 항목으로 설정하였으며, 「대동지지」에는 「전고(典故)」조를 독립항목으로 만들어 외국의 침략과 역대 전투를 기록하였다. 「대동지지」에서는 「산수(山水)」 「성지(城池)」 「영아(營衙)」 「진보(鎭堡)」 「봉수(烽燧)」 「창고(倉庫)」 「진도(津渡)」 「목장(牧場)」 등의 조항도 국가의 방어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여 국방을 중시하였던 그의 지리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셋째, 내용의 철저한 사실성과 고증을 기초한 지지 편찬의 자세, 계속적인 보완을 통한 지역의 변화상을 반영한 태도 등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지지학(地誌學)의 논리를 살필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3종의 지지는 각기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동여도지」는 김정호가 섭렵한 많은 문헌들을 광범위하게 비교, 인용함으로써 자료 수집에 노력한 고산자 지지(地誌)의 초기 형태이다. 「여도비지」는 내용의 압축과 간략한 서술이 특징이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각 도의 첫머리에 정리되어 있는 호구(戶口), 전부(田賦), 강역표(疆域表), 극고표(極高表), 방위표(方位表), 군전적표(軍田籍表) 등의 군현별 통계표이다.
특히 그의 지도 제작에 참고가 되었다고 보이는 극고표와 방위표는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기록이다. 「대동지지」는 김정호의 일생의 집념과 노력이 결집된 지지이다. 「대동지지」에는 성숙한 지리학자로서의 자세와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이 책에는 김정호의 독자적인 견해가 정리되어 있는데, 연혁, 지명, 산천, 도로 등에서 드러난다. 또한 철저한 사실성에 기초하여 분명하지 않은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항목을 조정하였다.
김정호가 편찬한 3종의 전국지리지는 조선 전기에 국가적인 사업으로 시행하였던 전국지리지 편찬 이후, 그리고 17세기 후반 반계 유형원이 편찬한 <동북여지지> 이후에 제작된 가장 훌륭한 사찬 전국지리지이다. 그는 전통적 지역지리학인 지지학과 계통지리학에 가까운 실학파 지리학의 양대 맥락을 결합하여 새로운 지지학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4) 김정호 사상의 진보성
김정호는 지리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업적과 그의 영향은 우리 국토와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학문, 모든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지리학을 종합하려 했던 그의 선진적인 자세와, 그의 저작들이 지니는 사실성에 기인한다.
고산자 김정호는 국가의 경영에서 지도와 지지를 제작하고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천하의 경륜은 모두 지지도에 있다(「추측록(推測錄)」 권6 「추물측사(推物測事)」 ??지지학??).??고 한 최한기의 지적은 김정호의 견해이기도 하다. 김정호는 지지와 지도를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인식하였으며, 지도의 미진한 곳을 지지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하여 개인의 힘으로 지도와 지지를 집대성하고, 지도와 지지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결국 그가 이룩한 지도와 지지의 제작, 편찬은 19세기 조선의 국토 정보를 집대성하여 구축하고, 체계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국토 정보화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실천한 선각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만든 지도와 지지들은 전통적인 동양식 지도와 지지의 마지막 금자탑이다.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국토관과 지역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투영하고 있는 점에서 시대성을 발휘하며, 이는 지도와 지지가 성취해야 할 본질에 성공적으로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고산자 김정호는 지도와 지지를 제작, 편찬한 데서 나아가 이들 자료를 간행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도 간행을 달성한 것은 국토에 대한 정보를 국가와 지배층이 독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며, 국토 정보를 일반에게 보급하여 국민들이 공유할 대상으로 인식했음을 보여 준 것이다. 국토 정보의 구축과 체계화는 물론, 정보를 보급하고 대중화하려 하였던 그의 사상이 급변하고 있던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현실 속에서 더 돋보인다.
또한 <대동여지도>에서 볼 수 있는 휴대용 형태의 지도 제작은 상세하고 풍부한 국토 정보를 이동하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는 점에서 선진적이다. 이용자와 수요자를 고려한 것이며, 역시 지역 정보의 실제적인 활용을 추구한 것이다.
한미한 계급 출신이었던 김정호가 광범위한 국토 정보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을 주도하였던 사회계층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즉 조선 전기에는 국가 주도의 지도?지리지 편찬이 이루어졌고, 조선 후기에는 국가와 양반층이 중심이 되어 지도와 지리지를 만들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일반 평민층에서도 고급 국토 정보에 접근하여 그것을 한층 발전시켜 새로운 국토 정보 체계로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은 김정호 사상의 진보성을 보여 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개인을 탄생시켰던 조선 사회와 국토의 변모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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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29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5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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