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세기의 신학사상과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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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야기이며, 신앙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선택받은 것의 표징은 신앙의 행위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내적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통해서, 그리고 신의 축복과 도덕성을 들 수 있다. 예정받은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법을 성취시켜야 한다. 루터는 신앙의 삶(Christan Life)은 하나님과의 즐거운 일치이다. 그러나 칼빈은 신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의견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신의 법을 지키려면 신과 일치해야 하고, 신과 일치해야만 신의 법을 지킬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는가이다. 루터는 조금 더 원론적이고, 칼빈은 조금 더 실천적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신의 법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칼빈은 이에 대해서 금욕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카톨릭에서 말하는 금욕과는 다른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의 삶으로서의 금욕은 노동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노동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도 금욕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것은 칼빈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칼빈의 노동을 통한 이익이라는 측면이 칼빈이 자본주의의 시작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보통 막스 베버가 칼빈에 대해서 이런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막스 베버는 칼빈이 자본주의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다. 칼빈 이전에도 자본주의는 존재했었다. 칼빈의 자본주의 정신의 나의 노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어도,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쓰면 안되고, 사회와 공익을 위해서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국가에 대한 생각도 루터와는 다르다. 칼빈은 혁명적인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루터는 국가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인간이 악하고 그 악한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무질서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러나 칼빈은 기본적으로는 혁명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한 개인개인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반대하지만, Lower(비교적 낮은)한 관리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허용한다. 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이 최고에 있는 사람이 자연법을 어겼을때에는 혁명을 일으켜도 좋다는 것이다. 조건부 혁명론이다. 칼빈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철저하게 분리한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참 교회이다. 카톨릭은 성직자가 있어야 교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칼빈에게는 교회가 있고, 성직자가 있고, 또 계율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계급을 성직자, 교사, 장로, 집사로 나눈다. 이것이 칼빈이 말하는 칼빈의 4중 교회 직제이다. 여기서 교사는 주로 사회와의 관련을 갖고 있다. 이 교사를 통해서 그는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시민들의 훈련도 강조하였다. 칼빈의 성서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칼빈은 굉장히 어떤 면에서는 루터보다 더 규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서속에 있으니까..."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칼빈이 생각하는 성서의 권위는 성서의 저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기록한 기자는 완전히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칼빈은 성서의 저자들을 사필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불러주신대로 썼다는 것이다. 거기에 작용한 것은 성령이다. 여기서부터 나온 사상이 축자영감설이다. 이러한 것이 보수측에서 연구하는 중심사상이다. 그러나 칼빈이 축자영감설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이러한 말을 할 때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것이지, 사람이 그냥 도구일 뿐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성서의 문자적인 잘못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칼빈도 성서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성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성서해석은 누가 하는가?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성령뿐이다. 이것을 성령의 내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서 기자에게 역사했던 성령이 지금 나에게 역사할때에 나는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성서의 통일성을 이야기한다.
5. 종교개혁이후에서부터 현대까지의 신학적인 흐름
16세기의 종교 개혁이후 루터주의와 칼빈주의가 발생하였다. 16세기에 개혁을 일으킨 루터나 칼빈의 사상은 굉장히 역동적(Dynamic)이고 생명력이 있다. 그러나 17세기에 가서는 루터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루터의 사상을 체계화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칼빈 또한 마찬가지이다. 체계화가 불가피하지만, 이 사상이 체계화되니까 사상이 Dogma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17세기를 Classic(Protestant) Orthodoxy 라고 말한다. 이것을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라고 말한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스콜라 주의 시대이다. 이러한 말이 나오면 17세기이다. 이러한 시대가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철학적인 상황이 바뀐다. 과학도 상황이 바뀐다. 신대륙의 발견, 데카르트, 스피노자, 존 로크, 임마누엘 칸트 등의 근대철학이 생기면서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같은 시대가 온다.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 사상에 젖어 있을때에 이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다. 이러한 도전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 이신론, 루돌프 오토의 사상, 리췰의 도덕신학, 슐라이에르마하의 신학등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신학은 17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가 근대철학의 영향에 의해서 생기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성서비평방법, 역사적인 예수 문제등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18세기 말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된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서적인 측면에서 기적을 부인하고, 마리아의 처녀탄생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런 자유주의신학적인 해석에 반발을 하면서 19세기에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 (Neo-Orthodoxy)가 등장한다. 이것이 끝난 후 실존주의 신학이 등장하고 1960년대에 와서 각 민족의 토착문화가 생기면서 토착화 신학이 생기게 되고, 그 당시에 제 3 세계의 문제를 다루면서 3세계의 해방신학등이 등장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영성신학, 여성신학, 문화신학(1970년대부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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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30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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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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