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과 원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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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글은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논란에 대한 글입니다.

본문내용

었다.
그리고는 “원균의 공을 가로채고 그 아들까지 모함하는 聖雄 이순신”이라 하여 이순신을 저열한 인격을 가진 자로 모질게 매도하고 야유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고정욱이 ?원균 그리고 원균?에서 이 사건을 다룬 대목은 이렇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러 내려간 사람은 이덕형이었다.
그는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했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가득한 자였다. …(중략,주:이 부분에서, 이덕형의 훌륭한 임품을 말해주는 유명한 ‘제호탕’의 일화를 소개)… 그런 이덕형인지라 남쪽으로 내려와 원균과 이순신을 불러다 대질을 할 때 두 사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균 그리고 원균? 하권, 175 176쪽).
고정욱은 “원균의 아들 원사웅은 아버지를 닮아 날카롭고 사나운 용모를 하고 있는 홍안의 용사였다”면서, 이덕형(李德馨) 앞에서 이순신과 원균이 ‘원균의 아들 문제’로 대질신문을 받고 있는 자리에 원균의 아들 원사웅이 들어오자 이덕형은 “오, 대단한 헌헌장부요”하고 감탄한다. 고정욱은 원사웅까지 등장하여 이순신의 모함을 명백하게 증명해낸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뒤에 이렇게 서술했다.
“(이덕형과 원균과 원사웅 앞에서) 이순신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확인도 안 해본 소문을 진실로 알고 언급했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원균 그리고 원균? 하권, 177쪽).
이로써 고정욱은 선조 당시 해당 사건에 대한 엄정한 진상조사를 거쳐서 ‘원균의 아들까지 모함’한 이순신의 죄상이 명백하게 밝혀졌었음을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순신은 원균과 함께 이덕형에게 불려가서 대질심문을 받기는 커녕, 이덕형과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음이 다음 해에 이덕형 자신이 쓴 장계의 내용에 의해서 극명하게 밝혀져 있다. 다음은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뒤에, 체찰사(體察使:지방에 전쟁이나 군란이 있을 때 왕을 대신하여 그 지방에 나아가 군사관계 업무 전체를 두루 총찰하던 군직(軍職), 재상이 겸임함)로서 당시 전라도에 내려가서 머물고 있던 좌의정 이덕형이 현지에서 선조에게 올린 장계의 일부이다.
좌의정 이덕형의 장계에,
“이순신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 듣건데 그가 금년 4월에 고금도(古今島)에 들어갔는데, 모든 조치를 매우 잘하였으므로 겨우 3 4개월이 지나자 민가와 군량의 수효가 지난 해 한산도(閑山島)에 있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의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은 유제독(劉提督, 주:명나라 육군 제독)이 힘을 다해 적과 싸우려는 뜻이 없다는 걸 간파한 뒤에는, 국가의 대사를 전적으로 수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주사(舟師:수군)에 자주 사람을 보내어 이순신으로 하여금 기밀의 일을 주선하게 하였더니, 그는 성의를 다하여 나라에 몸바칠 것을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서하였고, 영위하고 계획한 일들이 모두가 볼 만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국가가 주사의 일에 있어서만은 훌륭한 주장(主將)을 얻어서 우려할 것이 없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가 전사하였으니 앞으로 주사의 일을 책임지워 조치하게 하는 데 있어 그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합니다. 첩보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인부들조차 이순신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지한 노약자라 할지라도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하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선조실록? 선조 31년 12월 7일 무오조).
2. 김탁환의 ?불멸? (전4권, 미래지성, 1998)
김탁환은 고정욱보다 한 차원 더 심화된 악의적인 부당한 역사 왜곡을 통해서 ‘원균 명장론’을 내세우고 있는데, 당연한 결과로 이순신을 매우 비루하고 비열하며 초라하고 유약한 인물로 만들었다.
김탁환의 경우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고찰한다.
Ⅲ. KBS 대하 드라마 ‘이순신’의 원작소설들이 지닌 문제
현재 KBS 텔레비전에서는 ‘이순신이 주인공인 100회짜리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 드라마는 이순신을 다룬 두 개의 소설, 김탁환의 ?불멸?과 김훈의 ?칼의 노래?(전2권, 생각의 나무, 2001)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번 KBS의 이순신 드라마 제작작업은 여러 모로 걱정스럽기 그지 없다. 원작인 두 소설 모두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과 업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다가,
더구나 ?불멸?의 경우에는 매우 악의적인 역사 왜곡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김탁환의 ?불멸?이 원작 중 하나로 선정된 사실 자체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였지만, 보도에 따르면 담당 제작진은 이 드라마에서 “원균은 명장”임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KBS에서는 이미 1994년에도 ‘원균 명장론’을 기본구조로 한 다큐멘타리를 만들어 방영한 데 이어서, 이번에는 대하 드라마를 통해서 다시 ‘원균 명장론’의 확산에 나선 것이다.
소설과 달리 공영방송에서 방영되는 대하 역사 드라마는 매우 직접적으로 국민의 역사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이나 악의적인 역사 왜곡을 동원한 이순신 폄훼 작업을 감행해서는 안된다. 현재 일본이 자행하는 여러 분야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우려와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판에,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마구 왜곡하고 훼손하면서 민족의 진정한 영웅을 추하게 일그러뜨리고 욕보여서야 되는가. 이제 원작인 두 소설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여 검증해 보면서, ‘이순신’의 참모습과 당시 역사의 실체를 냉철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칼의 노래?를 먼저 살펴본 다음에 ?불멸?을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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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4.12.02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6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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