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자료 1. "일정부군위안부보상해야"ILO별도대책마련촉구(01.3.9/동아일보)
자료 2. 한일합방국제법상재검토워크숍25일개최(01.1.19/세계일보)
자료 3. 유엔인권위교과서교육과정검토개정촉구(02.4.26/한겨레)
자료 4. 즉결처분대신정의원칙고수…2차대전전범처벌(01.03.20/동아일보)
자료 5. '인류의적'응징국경시효없다-국제전범재판소
자료 6. 국제군사법정(뉘른베르크재판)헌장-1945년8월
자료 7. 뉘른베르크재판판결문(1946.9.30~10.1)
자료 2. 한일합방국제법상재검토워크숍25일개최(01.1.19/세계일보)
자료 3. 유엔인권위교과서교육과정검토개정촉구(02.4.26/한겨레)
자료 4. 즉결처분대신정의원칙고수…2차대전전범처벌(01.03.20/동아일보)
자료 5. '인류의적'응징국경시효없다-국제전범재판소
자료 6. 국제군사법정(뉘른베르크재판)헌장-1945년8월
자료 7. 뉘른베르크재판판결문(1946.9.30~10.1)
본문내용
혀두고자 합니다. (…)
전쟁 이전에도 나치는 유대인을 가혹하고 심하게 박해한 사실이 있지만, 이는 전쟁 중에 독일점령지에서 시행된 정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원래 이것은 이전 독일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과 유사했습니다. 곧 유대인들은 따로 등록해야 했으며, 게토에 살도록 강요당했고, 노란색의 별 표식을 달아야만 했고, 노예노동에 혹사당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여름 유럽의 유대인 문제를 풀어줄 정책으로 마련된 소위 '최종해결'은 달랐습니다. 곧 '최종해결'이란 1939년 히틀러가 이미 위협한 바 있던 유대인의 멸종을 의미한 것이었으며, 전쟁발발의 결과 이 정책은 게슈타포 특수부대가 제B4국의 책임자인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중심으로 수행했습니다.
유대인을 멸종시키려는 이 계획은 소련을 침공한 후 곧바로 가시화되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자신들 후미에 있던 지역에 치안경찰 및 안전부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여 그곳 주민들이 독일군에 저항하는 것을 진압하고자 했습니다. 이 부대는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멸종시키는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
유대인 수감자들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는 명확한 증거로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여성 희생자들은 죽음을 당하기 전에 머리카락이 모두 잘려졌으며, 그 잘려진 머리카락은 독일에 보내져 매트리스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수감자들의 의복이나 금전, 그리고 귀중품은 따로 수거되어 적당한 중계업자에 보내져 처분되었습니다. 이들이 살해되고 난 후, 금으로 된 치아 등 그들 시신에 있던 금붙이는 제국은행에 보내졌습니다.
화장되어 재로 된 시신은 거름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희생자의 시체에서 기름을 빼내 판매용 비누를 만드는 데 이용하였습니다. 어느 집단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대인을 찾아내어 '최종해결'을 하고자 했습니다. 독일인들은 헝가리와 불가리아 등과 같은 위성 국가에게까지 손을 뻗쳐 유대인을 말살하는 수용소를 건립했으며, 1944년 말까지 헝가리로부터 유배된 40만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증거에 의하면, 루마니아에서는 유대인 '청소'를 위해 약 11만 명이 추방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이 계획을 시행하고 감독한 아이히만은, 이 정책으로 약 6백만 명이 살해되었고, 그 중 4백만 명이 바로 이 말살정책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전쟁 이전에도 나치는 유대인을 가혹하고 심하게 박해한 사실이 있지만, 이는 전쟁 중에 독일점령지에서 시행된 정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원래 이것은 이전 독일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과 유사했습니다. 곧 유대인들은 따로 등록해야 했으며, 게토에 살도록 강요당했고, 노란색의 별 표식을 달아야만 했고, 노예노동에 혹사당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여름 유럽의 유대인 문제를 풀어줄 정책으로 마련된 소위 '최종해결'은 달랐습니다. 곧 '최종해결'이란 1939년 히틀러가 이미 위협한 바 있던 유대인의 멸종을 의미한 것이었으며, 전쟁발발의 결과 이 정책은 게슈타포 특수부대가 제B4국의 책임자인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중심으로 수행했습니다.
유대인을 멸종시키려는 이 계획은 소련을 침공한 후 곧바로 가시화되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자신들 후미에 있던 지역에 치안경찰 및 안전부의 특수부대를 조직하여 그곳 주민들이 독일군에 저항하는 것을 진압하고자 했습니다. 이 부대는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멸종시키는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
유대인 수감자들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는 명확한 증거로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여성 희생자들은 죽음을 당하기 전에 머리카락이 모두 잘려졌으며, 그 잘려진 머리카락은 독일에 보내져 매트리스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수감자들의 의복이나 금전, 그리고 귀중품은 따로 수거되어 적당한 중계업자에 보내져 처분되었습니다. 이들이 살해되고 난 후, 금으로 된 치아 등 그들 시신에 있던 금붙이는 제국은행에 보내졌습니다.
화장되어 재로 된 시신은 거름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희생자의 시체에서 기름을 빼내 판매용 비누를 만드는 데 이용하였습니다. 어느 집단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대인을 찾아내어 '최종해결'을 하고자 했습니다. 독일인들은 헝가리와 불가리아 등과 같은 위성 국가에게까지 손을 뻗쳐 유대인을 말살하는 수용소를 건립했으며, 1944년 말까지 헝가리로부터 유배된 40만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증거에 의하면, 루마니아에서는 유대인 '청소'를 위해 약 11만 명이 추방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이 계획을 시행하고 감독한 아이히만은, 이 정책으로 약 6백만 명이 살해되었고, 그 중 4백만 명이 바로 이 말살정책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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