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와 민중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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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대와 민중의 생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 일제 시대 개관
- 일제 시대 민중의 삶
- 부호 층의 생활
- 농민 계급의 생활
- 지식인의 생활
- 노동자의 생활
- 일제 시대 징용과 정신대 문제

결론

본문내용

러한 그의 성격은 출신과 성장 배경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겠다.
③ 관료의 대표주자 박중양
- 일제가 조선 식민통치 25주년을 기념하여 편찬한 {조선공훈자명감}(朝鮮功勳者名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이토 이하 총독부의 대관으로부터 역량수완이 탁월하다고 인식되고 비상한 때에 진실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지사(知事)급에서는 박중양이다.\" 이렇듯 박중양은 일본인에 의해 능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뢰도 받았던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 대구군수로서의 박중양은 역시 대구에 있던 일본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시 일본인들이 가장 원하고 있었던 것은 대구성벽을 없애는 문제였다. 훗날 일본인의 회고에서도 이 문제를 \"대구 분요(紛擾:분란)의 병원(病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당시의 대구는 성을 경계로 하여 상권(商圈)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성내의 상권은 조선인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상권을 장악하려고 노심초사하던 일본인 상인들은 당연히 성벽을 허물어 상권의 구역을 없애려고 하였던 것이다. 박중양은 일본인의 요구를 충실히 좇아 일진회 회원을 동원하여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는 도로로 만들었다. 오늘날 대구의 동성로, 남성로, 북성로, 서성로가 바로 그 길이다. 일본인 상인이 상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④ 직업적 친일분자
- 민원식 : 참정권 청원운동의 주동자
- 배정자 : 정계의 요화(妖花)로 불렸던 고급 밀정
- 선우순 : 내선일체론의 나팔수
- 이각종 : 황국신민화운동의 기수
- 박석윤 : 항일무장투쟁 파괴|분열의 선봉장
- 박춘금 : 깡패에서 일본 국회의원까지 된 극렬 친일파
- 현영섭 :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 꿈꾼 몽상가
- 이영근 : 황국신민화를 온몸으로 실천한 일본주의자
- 이종형 : 독립운동가 체포로 악명 높았던 밀정
⑤ 경제인
- 김갑순 : 김갑순은 한말|일제초기 관료 출신으로서 관권을 이용하여 수탈적으로 치부하기 시작하여, 일제 하에서는 철저하게 부일 배 노릇을 하면서 @거부#가된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이다#라는 속담처럼 돈만 있으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한 것이었다.
- 박영철 : 일제에 헌신적인 충성을 하여 큰 부를 축적한 인물, 독립만세는 무용(無用)하고 무모하다면서 이를 탓하고, 더 나아가서는 독립은 구한국의 악정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 글의 필자는 당시 함경북도 참여관으로 있던 박영철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만약 신정(新政)에 불평이 있다 하면 지방청이든지 도|부|군 참사든지 중추원이든지 상당한 기관이 있으므로 순서를 거쳐서 진정할 것이요, 반항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면 법률이 허(許)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인민의 위협이라고 굽히고 굴복하여 그 희망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고 하여, 불평이 있으면 진정의 방법을 택할 일이지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꾸짖고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금후에 만약 소요를 다시 일으켜서 양민을 협박하거나 영업을 방해하거나 관헌을 습격하는 자에게는 용서 없이 병력을 쓰기로 병 대(兵隊)가 각처에 수비하여 있은 즉, 생명이 위기일발의 사이에 있음을 각오하여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될지라&라고 하여, 같은 민족에게 협박을 가하고 있었다.
⑥ 예술인
문학
- 이인직 : 친일문학의 선구자
- 이광수 : 민족개조 부르짖은 변절 지식인의 대명사
- 김동인 : 예술지상주의의 파탄과 친일문학가로의 전락
- 주요한 : 대동아공영의 꿈 읊조린 어릿광대
- 김동환 : 각종 친일단체의 핵심으로 맹활약한 친일시인
- 모윤숙 : 여성 교화사업의 첨병
- 유치진 : 친일 \'국민연극\' 주도한 근대연극사의 거두
- 최재서 : 서구적 지성론자에서 천황숭배론자로
- 백 철 : 인간탐구론 자에서 국민문학론자로
- 김기진 : 황국문학의 품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 박영희 : 카프문학의 맹장에서 친일문학의 선봉으로
음악
- 홍난파 : 민족음악개량운동에서 친일음악운동으로
- 현제명 : 일제말 친일음악계의 대부
4. 노동자들의 생활
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김첨지
- 오랜만의 좋은 운수를 경험한 김첨제에게 다가온 불행에 관한 이야기다. 도시의 가난한 인력거꾼으로 등장하는 김첨지는 아픈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주지 못하고 아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도시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을 대변해 주는 작품이다.
나)노동자들의 삶
-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으로 인해 토지를 잃은 농민층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농업을 통해서만은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이들은 농사하는 틈틈이 노동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농사 전반이 어려워지자 노동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도 발생했다,.
농민들은 생활의 궁핍의 극도에 달하였으므로 부득이 늙은 부모와 어린 처자를 데리고 자기 향토를 떠나 노동의 길을 찾아 무산군 철도공사와 도로공사지로 매일 수백 명씩 각 처에서 모여드는데 매일 공사장에서 일을 하여 50-60전을 받아서 가족들과 노숙생활을 하는 참경....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신문기사의 내용인데, 농민의 노동자로 되는 경로를 잘 전하고 있다.
-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이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 중에는 소규모 농장이나 공장에 취업하는 사림이 있는가 하면 인력거꾼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해 나갔다.
- 노동자들의 주거
- 대표적 거주지 함바 : 토건노동자의 주거형태로 대표적인 것으로 공사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대개 일자형 장옥이었고 폭과 높이는 동일하면서 수용하는 노동자의 수에 따라 깊이만 차이가 있는 형태였다. 바닥은 보통 흙바닥이며 그 위에 거적 같은 것을 깔고, 지붕은 생철이나 함석으로 만들었으며 빙 돌아 거적때기로 둘러막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사실 토막집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함바는 숙소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식당의 역할도 하였는데 노동자를 관리하는 반장두와 식당이 이 함바에 모두 위치하고 있었다. 함바는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극히 비위생적이었으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노동자들은 거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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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6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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