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속의 부르주아 -계급과 구별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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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절대왕정속의 부르주아 -계급과 구별짓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Ⅰ. 예절로서의 타자 화.
ⅰ.예절서
ⅱ. 보여주기 위한 예절
ⅲ. 절대왕정과 궁중 매너
ⅳ. 차별 또 한번의 차별Ⅱ. 맛에 의한 구별 짓기
ⅰ. 미각으로서 구별 짓기
ⅱ. 미각이 아닌 구별짓기-시각,색,식기류등..-
ⅲ. 미식가
Ⅲ. 가정과 명예
ⅰ. 하층민의 구분 짓기
ⅱ. 명예를 만회하기

-결론-

본문내용

를 각별히 치욕스럽게 여겼다. 그런 경우 명예가 두 번, 다시 말해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과 그것을 공적으로 처벌하는 순간에 걸쳐 두 차례나 실추되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엽 국왕권의 독단적인 형태였던 봉인장 제도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명예를 손상시켰지만 정규 재판소에서의 수치스러운 재판 절차만은 피하고 싶어 하던 일부 가족들에게 요행을 안겨주었다. 봉인장을 통한 가족의 구금 요청은 명예 회복과 가정의 비밀을 조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파리에서 치안총감은 국왕의 명령을 집행하고, 도시의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 치안 그리고 특정 범죄자를 처분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했다. 결국 봉인장은 일종의 도시 정화 수단이 되었다. 이런 방식에 대한 동의와 개인적인 주도권 행사라는 이중 절차를 통해 가정은 이 신속하고 예외적인 수단을 이용하려고 했다. 이는 치안 유지 논리에 의해 국왕권의 확대를 노리는 수단이였다.
치안 총감은 이러한 인격적 형태의 권력을 행사하고 민중의 눈에 국왕의 존재를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였다. 왕은 치안 총감의 중개 역할을 통해 감금 행위를 실제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체험케 함으로써 가정의 비극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소환하고 치유해주었다. 이는 가정이 가장 비밀스러운 내면세계에 대한 치안총감의 감시를 감수하며 왕에게 사적 영역을 바치는 대가로 왕이 잘못을 영원히 함구해 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족의 감금 요구는 사적인 억압을 위한 사적인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치안 총감의 중개 역할을 통해 국가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이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모든 행위는 공적인 것이 되었다. 감금이라는 국왕의 선물은 하나의 혜택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처벌이 되었고 봉인장과 체포 명령은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자 1760년대 이후 가정 분쟁에 대한 재판권은 점점 더 부담스럽게 그리고 점점 덜 심각한 것이 되었다. 사적 영역을 경찰권의 최우선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유주의의 물결이 국왕의 명령권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왕을 가부장적인 독재의 공범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법의 필요성과 자유의 침해 문제가 논의되었고, 전제적인 권력 형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재판관들에게 다시 권한을 양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파리 고등법원은 국왕의 입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소견서인 간주서를 무기로 봉인장의 시정을 요구했고, 이와 같은 공격에 루이 16세는 가정의 질서와 공공 질서 사이의 완벽한 합일을 주장했다. 그러나 1790년 3월에 봉인장은 폐쇄되었다. 이로써 자의적인 왕권중심이 아닌 철저하게 법에 의해 움직여지는 헌법제도가 마련이 되었다. 이후 가정의 불행을 야기 시킨 자들을 벌할 수 있는 권리를 남자에게 부여했고 남편의 권위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적 권리가 되었다.
-결론-
프랑스 혁명이후 "Les Mortels sont egaux."-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이념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전까지 문제시 되지 않던 남녀의 차별이, 즉 계급 차별에서 성차별이 등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종, 소수민족, 동성애자가 사회적 약자로 등장하며 혁명을 성공으로 이루어낸 부르주아 층들은 이들과 차별을 두기시작하고 또 다른 갈등은 계속 해서 전개된다. 이렇듯 역사는 하나의 갈등을 해결되면 그 해결점이 다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이러한 갈등과 해결의 흐름의 반복이 지금의 역사를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 참 고 문 헌
테오도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김태우 역, 강, 1999
로제 샤르띠에, 『사생활의 역사3』, 이영림 역, 새물결, 2002

키워드

부르주아,   절대왕정,   음식,   매너,   ,   타자화,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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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0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9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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