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대상이기 보다는 또 하나의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감독 자신에게는 일에 묶여 놀이방에 아이를 맡겨둔 채 하루를 지내고 돌아오면 못된 엄마라며 징징거리는 자신의 딸 하은이가 있다. 감독은 이러한 문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로 바빠 단 한 번도 사랑을 주지 못한 매몰찬 엄마로서 기억되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셋째 언니에 의해 다큐에서 소개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이 다큐의 제목임과 동시에 감독에게도 가장 크게 와 닿은 러시아의 한 속담이다. 자신에게 있어 불행이라 여길만한 가정의 문제들에 있어 ‘왜 나만 이런 가혹한 시련을 겪어내야만 하는가.’ 하며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곧 잘 주눅 들고 일을 그르치던 나에게 이러한 속담과 다큐에 담긴 하나의 가정사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각기 처한 문제는 다르지만 그러한 특수성에서 세상과의 교감으로 인한 일반성을 도모할 수 있던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아픔을 나누자는 이 다큐에서 내가 얻은 것은 학업이라는 무거운 짐을 얹고 있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살을 방패로 이것저것 즐기기에 여념이 없던 나의 생활에 뒤에서 오늘도 나를 깊이 염려하시는 나의 어머니를 가슴깊이 품게 되었다는 것과 여성의 결혼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어머니’라는 이름,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결한 종족으로 추앙받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시대의 모든 어머니와 함께했더라면 좋았을 다큐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언니에 의해 다큐에서 소개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이 다큐의 제목임과 동시에 감독에게도 가장 크게 와 닿은 러시아의 한 속담이다. 자신에게 있어 불행이라 여길만한 가정의 문제들에 있어 ‘왜 나만 이런 가혹한 시련을 겪어내야만 하는가.’ 하며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곧 잘 주눅 들고 일을 그르치던 나에게 이러한 속담과 다큐에 담긴 하나의 가정사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각기 처한 문제는 다르지만 그러한 특수성에서 세상과의 교감으로 인한 일반성을 도모할 수 있던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아픔을 나누자는 이 다큐에서 내가 얻은 것은 학업이라는 무거운 짐을 얹고 있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살을 방패로 이것저것 즐기기에 여념이 없던 나의 생활에 뒤에서 오늘도 나를 깊이 염려하시는 나의 어머니를 가슴깊이 품게 되었다는 것과 여성의 결혼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어머니’라는 이름,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결한 종족으로 추앙받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시대의 모든 어머니와 함께했더라면 좋았을 다큐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