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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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과 대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양안관계의 역사
1. 양안관계
2. 양안관계의 역사

Ⅱ. 대만의 통일정책과 독립정책
1. 장개석의 통일정책
2. 장경국의 통일정책
3. 이등휘의 독립정책
4. 천수이벤의 독립정책

Ⅲ. 중국의 통일정책
1. 마오쩌둥 시대의 통일정책
2. 등소평 시대의 통일정책
3. 장쩌민 시대의 통일정책
4. 후진타오 시대의 통일정책

Ⅳ. 중국과 대만의 상호의존

Ⅴ. 결론

본문내용

르러서는 대륙주민의 문병.문상을 위한 방문을 허용하였고, 이어 해외거주 학자, 해외유학생의 방문을 허용하였다. 또한 1990년 8월 이후에는 대만이 중국공산당원의 대만방문과 대만 공무원의 대륙친지방문을 허용하면서 인적교류가 급속히 발전되어왔다. 이에 중국도 3통4류의 통일전략에 따라 대륙친지방문객은 물론 공무원.기업인.일반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하였다.
<표1 : 양안간 인적교류 현황>
출처 : 입출국관리국, 해협교류기금회 여행복무처
<표2 : 양안간 우편왕래 현황>
출처 : 교통부우정총국, 대륙위원회 경제처
3. 경제 교류협력
중국과 대만은 비록 통일에 대한 기본인식에 따른 정치적 장애요인과 간접교류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안간의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1970년도 후반부터 경제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중국은 개혁개방정책 시행 이후 대만과의 상호신뢰 회복을 위한 3통4류 정책을 제안하는 등 대만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에 관한 정책들을 발표하였다. 1985년 5월 중국은 대만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 대만이 중국에 중저가 제품 및 일반기계 가공설비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품목을 대륙시장에서의 판로확보를 유인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대만은 중국교역 시각은 3불정책에 따라 극히 부정적이었다. 대만 행정원은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와 국내의 원자재 수요를 감안하여 1982년 처음으로 대륙으로부터 간접수입을 허용하였고, 1985년에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접교역3원칙 즉, 중국과의 직접교역 금지, 기업인의 중국기관 및 요원과의 접촉 금지, 간접교역에 대한 정부 불간섭 원칙을 발표하여 중국과의 간접무역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83년부터는 대만의 중국 통상정책이 점차 완화되면서 대만의 중국 수입규모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양안간 무역은 대만정부가 중국과의 직접무역을 금지함에 따라 제3국을 경유하는 간접무역형태로 행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홍콩의 중개무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홍콩이 대만과 행하는 수출액의 44%가 양안간의 중개무역이다. 1997년 양안간 무역총액은 198억 달러에 달하며, 대만이 130억 달러의 흑자를 보였다. 이러한 양안간 무역규모는 대만 총 무역액의 8.4%에 해당하는 것이며, 특히 중국 수출은 대만 총 수출의 13%에 달하는 것이다. 중국 대외경제무역협부는 1999년 5월2일 1999년 1/4분기 양안간 무역액이 46억 7,300만불 달해 1998년 동기간에 비해 7.2% 증가되었으며, 이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수출이 7억 9,100만 불로 3.55%가 감소한 반면 대만의 중국에 대한 수출은 38억 8,200만 불을 기록해 9.6%가 증가되었고, 또 같은 분기에 중국이 이용한 대만자금이 5억9,800만 불에 달해 전년도 동기간에 비해 28.25%가 증가되었다고 발표했다.
한편 양안간의 투자관계를 살펴보면, 대만정부가 1987년부터 외환통제를 크게 완화하여 기업과 개인에게 1년에 500만 달러까지의 외환반출을 허용한 것과 중국측이 1988년 7월 대만동포투자장려에 관한 규정을 발표한 것에 힘입어, 1988년부터 대만인의 중국투자는 본격화 되었다.
<그래프3 : 대만의 대중국 투자추이>
출처 : 대만행정원대륙위원회
<표3 : 양안간 무역현황>
출처 : 경제부 국제무역구, 경제부 투자심의회, 중국 대외무역부, 국가통계국
4. 사회.문화 교류
양안간의 사회.문화교류는 인적.경제교류에 비해 쌍방간의 정치적.이념적 제약과 뿌리깊은 상호 불신이 해소되지 않아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한 실정이다. 중국은 사회.문화교류에 따른 和平演變의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대만내 분리.독립분위기 억제를 기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대만은 중국의 통일전선 의도를 경계하면서도 대륙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의 우월성을 인식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최근 들어서 사회.문화교류는 과거에 비해 단계가 점차 향상되고 있으며, 또 교류의 범위와 내용.방식이 다양화해지고 있다. 1987년 11월 개방이후 1994년 말까지 사회.문화활동을 목적으로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은 총11,286명이며, 중국 방문을 신청한 대만인은 1992년에 3,432명, 1993년 1,966명이며 개방이후 1998년 말까지 총 인원은 6,788명에 불과하다.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보다 대륙을 방문한 대만인 수가 오히려 적은 것은 대만정부가 친척방문이외에 공식적인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대륙방문을 제한하는 것도 있지만 대만정부의 간섭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친척방문으로 하고 사실상 사회.문화 활동을 하는 인원은 훨씬 넘은 것으로 보인다.
<표4 : 양안간 문화교류 현황>
출처 : 해협교류기금회 문화복무처, 해협교류기금회 여행복무처
Ⅴ. 결론
50년 동안 계속되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양안관계는 여러 시기로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중국의 입장에서는 특히 등소평 시대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고싶다. 등소평 이전의 시기는 무력에 의한 대만통일이라는 목표를 걸고 정책을 추구했지만, 등소평 시대에서는 ‘일국양제론’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추구하여 아직까지도 대만정책에 있어서 핵심 이론이라고 보고 싶다. 반면 대만은 이등희 총통 시절때가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 보고싶다. 이등희 총통의 실용외교를 통해서 국제적으로 대만의 입장을 강화시켰으며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국제적인 변화에 맞추어서 양안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과 대만처럼 분단이 되었다. 남북한과 양안의 문제를 보면 비슷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들 국가가 분단이 되어 버린 원인은 서로 다른 이념의 대립으로 민족간의 전쟁으로 분단이 되어 50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다. 지금의 양안관계를 보면 과거의 비해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개방이 되었다. 반면 남북관계는 아직도 과거의 이념적인 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이제는 ‘Global’시대이다. 세계화로 가기 위해서는 평화와 협력 가장 큰 지렛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양안관계든지 남북관계든지 서로 평화와 협력을 통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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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23
  • 저작시기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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