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과거의 양안관계
(1) 대민해방 시도 시기(1949년~1978년)
(2) 평화통일 시도 시기(1979년~1999년)
2. 중국과 대만의 양안정책
(1) 일국양제
(2) 일국양구
(3) 일국양제와 일국양구
3. 대만의 대 중국외교
(1) 장개석(蔣介石) 정권의 대(對) 중국 정책(1949∼1978)
(2) 장경국(蔣經國) 정권의 대(對) 중국 정책(1979∼1988)
(3) 리덩후이(李登輝) 정권의 대(對)중국 정책(1988∼1999)
(4)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의 대(對)중국 정책(2000~2008)
4. 양안관계의 새로운 전망
(1) 마잉지우(马英九) 총통의 신정부 출범
(2) 최고위급 만남으로 양안 간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다.
(3) 경제대국 재건의 꿈
Ⅲ. 결론
Ⅳ. 참고자료
Ⅱ. 본론
1. 과거의 양안관계
(1) 대민해방 시도 시기(1949년~1978년)
(2) 평화통일 시도 시기(1979년~1999년)
2. 중국과 대만의 양안정책
(1) 일국양제
(2) 일국양구
(3) 일국양제와 일국양구
3. 대만의 대 중국외교
(1) 장개석(蔣介石) 정권의 대(對) 중국 정책(1949∼1978)
(2) 장경국(蔣經國) 정권의 대(對) 중국 정책(1979∼1988)
(3) 리덩후이(李登輝) 정권의 대(對)중국 정책(1988∼1999)
(4)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의 대(對)중국 정책(2000~2008)
4. 양안관계의 새로운 전망
(1) 마잉지우(马英九) 총통의 신정부 출범
(2) 최고위급 만남으로 양안 간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다.
(3) 경제대국 재건의 꿈
Ⅲ. 결론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융 등 합작문제에서도 많은 인식을 함께 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왕이(王毅) 주임은 “양회() 제도화 협상은 이미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며 “양안관계 발전은 양안의 복리와 평화, 공동희망,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전대미문의 밝은 전망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3) 경제대국 재건의 꿈
그동안 대만 집권 민진당의 '독립' 선언으로 얼어붙어 있던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침체 일로를 걷던 대만 경제가 되살아나고, 한국을 비롯한 대만의 경쟁국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중국정부와의 정치, 경제적 교류에는 국민당이 훨씬 적극적이고 유연하다. 중국 정부가 싫어하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도 않는다. 독립을 할 경우 본토를 되찾겠다는 꿈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국민당의 집권은 지난 2000년 이래 대만을 통치해 온 민진당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불만을 대변해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대만은 민진당 집권 이후 경제적 침체기를 맞이했고, 대만의 기업들은 자국에 투자하기 보다는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바로 민진당과 중국 정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다. '세계의 공장이자 아시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의 견제 속에서 작은 섬나라인 대만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는 어려웠다. 국민당 정권의 출범은 대만이 그동안의 핸디캡에서 벗어나 중국을 등에 업고 다시금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Ⅲ. 결론
양안관계는 한 단어로 회고할 수도 또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단언하여 전망할 수도 없는 복잡한 문제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남북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2000년 민진당 집권당시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세월이 흘러 8년만의 새로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천수이볜 총통은 2006년 독립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2008년 5월 새 헌법을 실시하는 대만독립시간표를 제시하는 등 여러모로 중국을 자극해왔다. 그간 이렇게 양안 관계의 악화를 심화시켰던 민진당과는 달리, 새로이 대권을 잡은 마잉지우 총통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듯 양안 관계에 훈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간의 대만은 경기침체, 실업률 상승, 중국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한 여러 가지 경제문제에 부딪쳐야했다. 마잉지우 총통의 이러한 온건 정책은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시켜 대만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순풍에 돛 단 듯, 양안 간의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중국과 대만은 각기 다른 통일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만보다 주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중국이 대만의 도발을 좌시하며 대만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미국의 군사적 간섭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만문제에서‘하나의 중국’입장을 지지하는 미국은 뒤로는 대만에 무기판매 등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이중적 외교전술을 취하고 있다. 대만은 이러한 미국을 양안문제에 깊이 끼어들게 하여 독립을 선언할 경우 최소 방패막이 역할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양안 관계는 결코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만도 없는 실정이다.
같은 민족이 정치 때문에, 이념 때문에 분단되어 살아야 하는 아픔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것이 언제, 어떻게, 누구의 주도 하에 실현될 것인가, 중국과 대만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 관건은 이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물음이며, 또한 종결의 기약이 없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다.
Ⅳ. 참고자료
- 김소중,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진로”,『동서연구』,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제9권 제1호, 1997年.
- 문흥호 지음, 《13억인의 미래》(서울: 도서출판 당대, 1996)
- 박정동 편저, 《21세기 중국》(서울:한국경제신문사,1996)
- 최정석(남경대 정치학 박사과정), “대만과 중국의 양안문제에 대한 이해”, 시대정신
- “중국·대만, 하늘·바다·편지길 활짝”, [세계일보], 2008년 11월 04일(화)
- “더욱 가까워진 양안…'천-장 회담' 합의 풍성”, [연합뉴스], 2008년 11월 04일(화)
- 자오차이나 (http://www.zaochina.com/plaza/dataroom/nonmun)
- 중국학 연구실 (http://home.megapass.net/~chengchi/cslla6.html)
(3) 경제대국 재건의 꿈
그동안 대만 집권 민진당의 '독립' 선언으로 얼어붙어 있던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침체 일로를 걷던 대만 경제가 되살아나고, 한국을 비롯한 대만의 경쟁국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중국정부와의 정치, 경제적 교류에는 국민당이 훨씬 적극적이고 유연하다. 중국 정부가 싫어하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도 않는다. 독립을 할 경우 본토를 되찾겠다는 꿈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국민당의 집권은 지난 2000년 이래 대만을 통치해 온 민진당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불만을 대변해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대만은 민진당 집권 이후 경제적 침체기를 맞이했고, 대만의 기업들은 자국에 투자하기 보다는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바로 민진당과 중국 정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다. '세계의 공장이자 아시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의 견제 속에서 작은 섬나라인 대만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는 어려웠다. 국민당 정권의 출범은 대만이 그동안의 핸디캡에서 벗어나 중국을 등에 업고 다시금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Ⅲ. 결론
양안관계는 한 단어로 회고할 수도 또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단언하여 전망할 수도 없는 복잡한 문제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남북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2000년 민진당 집권당시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세월이 흘러 8년만의 새로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천수이볜 총통은 2006년 독립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2008년 5월 새 헌법을 실시하는 대만독립시간표를 제시하는 등 여러모로 중국을 자극해왔다. 그간 이렇게 양안 관계의 악화를 심화시켰던 민진당과는 달리, 새로이 대권을 잡은 마잉지우 총통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듯 양안 관계에 훈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간의 대만은 경기침체, 실업률 상승, 중국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한 여러 가지 경제문제에 부딪쳐야했다. 마잉지우 총통의 이러한 온건 정책은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시켜 대만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순풍에 돛 단 듯, 양안 간의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중국과 대만은 각기 다른 통일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만보다 주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중국이 대만의 도발을 좌시하며 대만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미국의 군사적 간섭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만문제에서‘하나의 중국’입장을 지지하는 미국은 뒤로는 대만에 무기판매 등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이중적 외교전술을 취하고 있다. 대만은 이러한 미국을 양안문제에 깊이 끼어들게 하여 독립을 선언할 경우 최소 방패막이 역할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양안 관계는 결코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만도 없는 실정이다.
같은 민족이 정치 때문에, 이념 때문에 분단되어 살아야 하는 아픔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것이 언제, 어떻게, 누구의 주도 하에 실현될 것인가, 중국과 대만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 관건은 이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물음이며, 또한 종결의 기약이 없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다.
Ⅳ. 참고자료
- 김소중,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진로”,『동서연구』,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제9권 제1호, 1997年.
- 문흥호 지음, 《13억인의 미래》(서울: 도서출판 당대, 1996)
- 박정동 편저, 《21세기 중국》(서울:한국경제신문사,1996)
- 최정석(남경대 정치학 박사과정), “대만과 중국의 양안문제에 대한 이해”, 시대정신
- “중국·대만, 하늘·바다·편지길 활짝”, [세계일보], 2008년 11월 04일(화)
- “더욱 가까워진 양안…'천-장 회담' 합의 풍성”, [연합뉴스], 2008년 11월 04일(화)
- 자오차이나 (http://www.zaochina.com/plaza/dataroom/nonmun)
- 중국학 연구실 (http://home.megapass.net/~chengchi/cslla6.html)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