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전기_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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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으 다롱디리'는 구전되는 동안 탈락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자의 처리는 자동적으로 가사본문인 '져재' 앞에 놓여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악학궤범>의 내용은 12율의 결정과 여러 제향에 쓰이는 악조에서부터 악기의 진설, 정재춤의 진퇴, 악기, 의물, 관복에 이르기까지, 제향. 조회. 연향의 음악 연주에 필요한 사항들을 빠짐없이 망라하여 <악학궤범> 서문의 無不備載란 말을 수긍케 한다. 악학궤범은 성종 때 당시의 아악. 당악. 향악 등 음악 전반을 포함하였다.
<악학궤범>은 음악 역사에서 보는 것 같은 서술법을 요하지 않고, 음악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기술법을 그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악기의 재료와 치수를 정확하게 적고 여기에다 그림까지 넣어서 그림을 보고 악기의 형태를 알 수 잇게 기술하고, 악기의 산형을 그려 관악기의 안지법과 현악기의 조현법을 기술하고, 정재춤 진회의 절차를 자세히 기술하고, 동동과 정읍의 가사도 불리는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
이처럼 <악학궤범>은 제향 조회 연향 때의 주악에 필요한 악리에서부터 관복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담았고, 그 내용이 치림하고 정확하게 기술되어, 음악의 유실을 방지하려는 그 찬정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 정거로 악학궤범의 수차에 걸친 복각의 사실을 든다. 즉 임진란으로 그 전 악기와 악제가 불에 타서 남은 것이 없었는데 다행히 악학궤범이 불탄 자리에서 건져져, 그로 인하여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무와 묘악이 복구되었고, 광해군 2년에 이 귀중한 악서가 복각되었다. 그 다음 인조 때 음악이 쇠퇴하자, 그 후 효종6년에 다시 <악학궤범>이 간행되어 반포되었다. 그 후에도 아악기를 중수할 목적으로 영조 19년에 또 <악학궤범>이 복각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종 당시의 음악 전반을 자세히 기술한 <악학궤범>이 폐절된 음악을 복구하는 실용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면에서도 중요시 하게 되었다. 악학궤범은 성종 당시의 음악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음악을 비교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며, 또 동동과 정읍의 가사는 국어 국문학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악과 문학 양방면에 걸쳐 중요한 <악학궤범>은 20세기 초에 모두 7.8 부 밖에 남지 않았고, 또 그것을 이용하기조차 어려웠었는데, 1933년에 영인본으로 복각된 이후 학계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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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03.28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9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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