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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렇게 "사빠띠스따들은 민족을 역사적 투쟁의 공동체로 정의함으로써 민족에 대한 국가주의적 정의를 넘어 선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족의 파괴를 삶의 파괴로 여기고, 지구제국의 공세 앞에서 민족국가를 옹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국경 없는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사빠띠스따들에게서 민족 자율의 옹호는 삶의 자율과 자기가치화 운동의 일부로서 총체적인 자율주의 전략 속에 배치된다. 또한 민족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그것을 넘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면서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려는 전 세계의 다양한 투쟁들을 대륙간 규모로 연결하려는 사빠띠스따들의 국제주의적 간대륙주의 시도는 세계의 다양한 저항 세력들 사이에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으며 "정보의 교류, 사상 이론의 발전, 투쟁의 활성화, 존엄성과 희망의 제고 등의 여러 차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낳고 있다. 국가 권력 장악을 거부하고 국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난 '국적 없는 민족'에서 자신들의 대안을 찾는 사빠띠스타의 민족 해방 및 민족 자율의 전략은, 국가의 울타리에 한계 지어지는 민족주의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내재적 코뮤니즘의 일부이자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단결의 전제로 파악해야 한다.
6.
BC 71년 자유를 찾고자 했던 로마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대(大) 노예주 크랏수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크랏수스는, 노예 반란군이 배를 빌려 시칠리아로 탈주하려는 계획을 입수한 후, 선주를 매수하여 반란군의 탈주로를 막고 중앙 수도 로마로 반란군을 유인한다. 스파르타쿠스는 이 강요된 접전이 패배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투항보다는 전투를 선택하는 비극―비극이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삶을 부르는 이름이다―적 선택을 한다.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반란군이 로마시로 진격했다가 궤멸되고, 6천 명의 반란 노예들이 카퓨아로부터 로마시까지 이어진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군은 패배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쿠스를 찾는 물음에 반란군에 가담했던 노예들 모두가 "내가 스파르타쿠스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벽두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일단의 혁명가들은 자신들을 스파르타쿠스단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세계 각지에서 여러 시기에 부활했던 스파르타쿠스들의 한 사례일 뿐이다. 21세기 벽두인 지난 해 3월, 멕시코 원주민들은 어떤 무기도 없이 스키 마스크만을 쓰고 수도 멕시코 시티로 3천km에 달하는 대장정을 완수했는데, 이것은 20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인류의 존엄을 향한 행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와는 다른 조건들에서, 다른 모습으로 제기되는 삶의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이 땅의 소수자들의 투쟁들도 아래로부터의 역지구화 운동인 21세기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는 천국을 습격한다."는 네그리의 말처럼, 그리하여 스파르타쿠스는 지구제국을 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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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1년 자유를 찾고자 했던 로마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대(大) 노예주 크랏수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크랏수스는, 노예 반란군이 배를 빌려 시칠리아로 탈주하려는 계획을 입수한 후, 선주를 매수하여 반란군의 탈주로를 막고 중앙 수도 로마로 반란군을 유인한다. 스파르타쿠스는 이 강요된 접전이 패배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투항보다는 전투를 선택하는 비극―비극이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삶을 부르는 이름이다―적 선택을 한다.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반란군이 로마시로 진격했다가 궤멸되고, 6천 명의 반란 노예들이 카퓨아로부터 로마시까지 이어진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군은 패배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쿠스를 찾는 물음에 반란군에 가담했던 노예들 모두가 "내가 스파르타쿠스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벽두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일단의 혁명가들은 자신들을 스파르타쿠스단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세계 각지에서 여러 시기에 부활했던 스파르타쿠스들의 한 사례일 뿐이다. 21세기 벽두인 지난 해 3월, 멕시코 원주민들은 어떤 무기도 없이 스키 마스크만을 쓰고 수도 멕시코 시티로 3천km에 달하는 대장정을 완수했는데, 이것은 20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인류의 존엄을 향한 행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와는 다른 조건들에서, 다른 모습으로 제기되는 삶의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이 땅의 소수자들의 투쟁들도 아래로부터의 역지구화 운동인 21세기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는 천국을 습격한다."는 네그리의 말처럼, 그리하여 스파르타쿠스는 지구제국을 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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