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에스겔의 소명기사 : 겔 1장
TEXT : W.Zimmerli. Ezechiel 1-24
The original text of 1:1-28
Form(양식)
1:4-28 야웨의 영광의 현현
1) 4절 - 12절
15-21절
배경
해석
연대
장소에 대한 언급
TEXT : W.Zimmerli. Ezechiel 1-24
The original text of 1:1-28
Form(양식)
1:4-28 야웨의 영광의 현현
1) 4절 - 12절
15-21절
배경
해석
연대
장소에 대한 언급
본문내용
겔10장에서 ‘그룹’의 기록은 이러한 전통을 나타내고 10장20절에서는 그룹과 네 생물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에스겔 1장은 보좌를 호위하는 생물의 정의를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더욱이 후기 유대문학에서 두드러진 그러한 생물에 대한 생각을 에스겔1장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물의 표현에 있어서 양식에 일치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사야6장에서는 인간모양의 각각6날개를 가진 천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에스겔에서 4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알수 있다 이숫자는 에스겔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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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러한 방법으로 에스겔은 4라는 숫자를 통해 완전한 균형으로 종교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 생물들은 네 날개를 가지고 있고 이사야6장의 천사의 모습과는 다르다.
네 날개를 가진 네 생물에 대한 시각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예술에서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서 법궤를 보호하는 천사는 단지 두날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두상의 날개에 대해 이사야6장과 연결해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두 천사가 ‘그의발’을 가리웠다는 이사야6장의 기록은 거룩하신 분을 위해 개별적인 것을 감추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출28:42의 예에서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 1:11은 전능하신 분앞에서 자신들의 몸전체를 가렸다고 기록했다.
이것이 이사야6장의 얼굴을 가리웠다는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사야 6장의 설명은 거룩과 부정함 사이의 긴장감에 있다. 에스겔 1:28과 2:1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보여준다. 사6:2 에는 한쌍의 날개를 바깥으로 뻗고 있다 에스겔 1장에서 네 생물의 날개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비록 1:24과 3:13이 날개를 연하고있다고 기록하고있고 1:24b(25b)에서도 날개를 연하고 있다고 언급하고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것은 아니다. 날개의 움직임은 원문에서조차 특수한 구속에서 굳어진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천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열왕기상6:27의 솔로몬성전의 법궤위에 있는 두 날개를 가지 그룹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에스겔의 여호와의 보좌에 대한 설명에서 성전에서 보여지는 천사들의 모양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날개를 가진 네 생물의 모양은 그에게 특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구름속에서 임재한 신의 형상에 대한 설명은 이사야6장의 생동적인것과 구별되는 위엄스럽고 장식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사야6장에서처럼 천사들의 하나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에스겔서에서는 생각할수 없다.
1:12 네 생물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에서 의아스럽게도 솔로몬 성전의 천사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각 천사들은 앞을 향해 있다. 그들은 뒤돌아서지 못한다.
이 기록이 원문에 포함돼있다면 앞을 향한 생물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으로 이해하지 말고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기록과 관계있는 것은 일시적인 사건이고 예언자를 향해 나타난 임재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네 생물들은 각각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각각은 곧장 앞으로 나아갈수 있었다. 예언자를 향해 곧장 다가서는 길로 돌아서는 천사는 없었다. 저항할수 없게 그들은 그를 향해 나아오는 듯했으나 전체움직임에서 그들은 에스겔을 향해 움직이지는 않았다.
1:13 정확히 덧붙여서 4절의 설명으로 네 생물의 형체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설명은 이미 출19장에 나타난다. 불(출19:18), 빛(출19:16), 시편18:9(삼상22:9)에서 나타난 숯불,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려는 2차적인 불의 모양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13절을 논박한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할수 없다. 불의 정확한 위치는 4절에 다소 학문적으로 표현한 네 생물의 한 가운데였다. 게다가 천사들 사이에서 타는 숯불이 흩어진 것을 언급하는 10:2과 분리할수 없는 1:13이 있다. 10:2을 분석해 보면 1장에 의해 의도된 요소에의해 더 확대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10장과 1장의 연관성은 1:13과 10:2에서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관을 통해 10장의 의문들은 연결되어 언급된 1:13이 10장이 형성되기 전에 존재했었는지 또는 그것이 1장에서 10장2절까지 연결할 목적으로 소개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따라서 10장의 연구에서 우리는 신의 임재에 대한 독특한 설명이 전혀 없는것과 신의 임재를 확실하게 표현한 1:4절의 진술을 살펴보아야 한다.
1:26 이 구절에서 보좌의 실제적 묘사가 나타난다. 그 머리위에 사파이어 정확히 남보석으로 설명한 형상에서 사파이어는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가치있게 여겼던 것이고 사파이어는 로마사람들이 가치있게 여겼던 것으로 여호와의 발아래 놓인것이란 진술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에스겔1:26은 보좌 자체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보좌의 투명한 수정은 신의 보좌에 대한 밝은 푸른색이 었다. 보좌에서 인간의 형상을 볼수 있다. 설명에 대한 절제는 대강 비슷한 표시의 연속에서 볼 수 있다.
1:27 색에대한 인상과 외형을 보여주는 이 구절은 우리들이 Asshur이 그려진 질그릇에 감명을 받는것과 같은 고대 동양의 비유적 표현에 근거를 둔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신의 형상은 태양의 불꽃원으로부터 나타나보여 지고 상체의 모양을 잘 나타낸다. 태양의 광선과 불꽃은 노량과 갈색체의 혼함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전체는 태양주변의 가장 자리에 의해 불타고 있다. 상체이상의 형체에 대한 에스겔 1장의 표현에서의 비슷한 점은 하체와는 다르다. 상체만을 명확히 이해할수 있던지 그렇지 못하던지 에스겔 1장의 원문은 완전히 명확하지는 못하다
1:28 Asshur의 모양같이 명확한 묘사없이 하반신을 포함한 전체의 모양은 무지개 색 원에 의해 둘어싸여 있다. 이것은 창9:12-17에서 보여지는 무지개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다. 결론의 구절로써 교훈적 목소리와 합법적인 형식의 끝마침을 상기시키고 있다.
제사장으로써 예언자가 언급한 신의 임재에 대한 설명 즉“이것은 여호아의 영광의 형상의 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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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러한 방법으로 에스겔은 4라는 숫자를 통해 완전한 균형으로 종교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 생물들은 네 날개를 가지고 있고 이사야6장의 천사의 모습과는 다르다.
네 날개를 가진 네 생물에 대한 시각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예술에서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서 법궤를 보호하는 천사는 단지 두날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두상의 날개에 대해 이사야6장과 연결해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두 천사가 ‘그의발’을 가리웠다는 이사야6장의 기록은 거룩하신 분을 위해 개별적인 것을 감추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출28:42의 예에서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 1:11은 전능하신 분앞에서 자신들의 몸전체를 가렸다고 기록했다.
이것이 이사야6장의 얼굴을 가리웠다는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사야 6장의 설명은 거룩과 부정함 사이의 긴장감에 있다. 에스겔 1:28과 2:1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보여준다. 사6:2 에는 한쌍의 날개를 바깥으로 뻗고 있다 에스겔 1장에서 네 생물의 날개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비록 1:24과 3:13이 날개를 연하고있다고 기록하고있고 1:24b(25b)에서도 날개를 연하고 있다고 언급하고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것은 아니다. 날개의 움직임은 원문에서조차 특수한 구속에서 굳어진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천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열왕기상6:27의 솔로몬성전의 법궤위에 있는 두 날개를 가지 그룹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에스겔의 여호와의 보좌에 대한 설명에서 성전에서 보여지는 천사들의 모양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날개를 가진 네 생물의 모양은 그에게 특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구름속에서 임재한 신의 형상에 대한 설명은 이사야6장의 생동적인것과 구별되는 위엄스럽고 장식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사야6장에서처럼 천사들의 하나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에스겔서에서는 생각할수 없다.
1:12 네 생물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에서 의아스럽게도 솔로몬 성전의 천사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각 천사들은 앞을 향해 있다. 그들은 뒤돌아서지 못한다.
이 기록이 원문에 포함돼있다면 앞을 향한 생물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으로 이해하지 말고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기록과 관계있는 것은 일시적인 사건이고 예언자를 향해 나타난 임재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네 생물들은 각각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각각은 곧장 앞으로 나아갈수 있었다. 예언자를 향해 곧장 다가서는 길로 돌아서는 천사는 없었다. 저항할수 없게 그들은 그를 향해 나아오는 듯했으나 전체움직임에서 그들은 에스겔을 향해 움직이지는 않았다.
1:13 정확히 덧붙여서 4절의 설명으로 네 생물의 형체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설명은 이미 출19장에 나타난다. 불(출19:18), 빛(출19:16), 시편18:9(삼상22:9)에서 나타난 숯불,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려는 2차적인 불의 모양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13절을 논박한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할수 없다. 불의 정확한 위치는 4절에 다소 학문적으로 표현한 네 생물의 한 가운데였다. 게다가 천사들 사이에서 타는 숯불이 흩어진 것을 언급하는 10:2과 분리할수 없는 1:13이 있다. 10:2을 분석해 보면 1장에 의해 의도된 요소에의해 더 확대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10장과 1장의 연관성은 1:13과 10:2에서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관을 통해 10장의 의문들은 연결되어 언급된 1:13이 10장이 형성되기 전에 존재했었는지 또는 그것이 1장에서 10장2절까지 연결할 목적으로 소개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따라서 10장의 연구에서 우리는 신의 임재에 대한 독특한 설명이 전혀 없는것과 신의 임재를 확실하게 표현한 1:4절의 진술을 살펴보아야 한다.
1:26 이 구절에서 보좌의 실제적 묘사가 나타난다. 그 머리위에 사파이어 정확히 남보석으로 설명한 형상에서 사파이어는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가치있게 여겼던 것이고 사파이어는 로마사람들이 가치있게 여겼던 것으로 여호와의 발아래 놓인것이란 진술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에스겔1:26은 보좌 자체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보좌의 투명한 수정은 신의 보좌에 대한 밝은 푸른색이 었다. 보좌에서 인간의 형상을 볼수 있다. 설명에 대한 절제는 대강 비슷한 표시의 연속에서 볼 수 있다.
1:27 색에대한 인상과 외형을 보여주는 이 구절은 우리들이 Asshur이 그려진 질그릇에 감명을 받는것과 같은 고대 동양의 비유적 표현에 근거를 둔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신의 형상은 태양의 불꽃원으로부터 나타나보여 지고 상체의 모양을 잘 나타낸다. 태양의 광선과 불꽃은 노량과 갈색체의 혼함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전체는 태양주변의 가장 자리에 의해 불타고 있다. 상체이상의 형체에 대한 에스겔 1장의 표현에서의 비슷한 점은 하체와는 다르다. 상체만을 명확히 이해할수 있던지 그렇지 못하던지 에스겔 1장의 원문은 완전히 명확하지는 못하다
1:28 Asshur의 모양같이 명확한 묘사없이 하반신을 포함한 전체의 모양은 무지개 색 원에 의해 둘어싸여 있다. 이것은 창9:12-17에서 보여지는 무지개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다. 결론의 구절로써 교훈적 목소리와 합법적인 형식의 끝마침을 상기시키고 있다.
제사장으로써 예언자가 언급한 신의 임재에 대한 설명 즉“이것은 여호아의 영광의 형상의 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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