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유대인의 분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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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성서에서 유대인의 분류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구약성서란 무엇인가?
2. 구약성서개관
3. 구약성서의 기록목적
4. 유대인의 분류법
5. 구약성서의 각 장의 중심내용

본문내용

23,24단락의 일부이고, 출 40:18-레 3:2를 포함하고 있다. 높이 46cm, 전장 25m, 1란(一欄)40행(40-61행이 定), 일행 30자(一字는 5mm角), 양피지(48X42cm 양 한 마리分)를 60매 합쳐 철(綴)해 있다.
5서를 54단락으로 구분짓는 습관은 바벨론 기원인데, 팔레스티나의 유대인 사이에는, 이것과별개의 단락 [(sedarim), lesser section]이 154 또는 155마련되어, 5서를 3년 1주(一周)의 공독(公讀)에 할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도 없고, 어떤 학자는 167단락 이었다고 한다. '마카비' 시대이후 예언서도 이 5서의 단락과 같은수의 단락이 발췌적으로 만들어지고, 이것을 [하프타-라-흐 (haphtarah)]라 불렀다.
이것은 5서의 단락과 병행하여 안식일마다 회당에서공독했다. 예컨대 창 1:1-6:8의 단락(parashah)에는 사 42:5-43:10의 단락(parashah), 창 18:1-22:24의 단락에는 왕하 4:1-37의 단락이라는 식으로 병행해 있었다.
사도시에, 율법과 선지서(예언서)의둘이 안식일마다 공독되고 있었던 것은 눅 4:16,행 13:15,15:21에서 알수가 있다. 히브리어인쇄 성서에는 안식일과정(安息日課程)이 시작되는 단락은 PPP 또는 sss라 하고, 그것에 단락의 숫자를붙여 인쇄하고 있다.현행(現行)의 히브히성서의 [장](章 chapter)은 유대인의 발안(發安)이 아니라, 인용을 효율적으로이용하는 편의를 위해 그리스도교에서 차용한 것이다.
[장]은 수개국어성서(數個國語聖書 Complutens-ian Polyglot 1514-1517)에 도입된 것이고, 조기의 [랍비성서](Rabbinic Bible)의 난외에 넣어졌다. 긴스부르크(Ginsburg, Christian David 1831-1914. 폴란드 출생의 유대인 히브리어 문법학자)는 1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히브리어 성서 사본의 난외(欄外)에 이것이 보여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16세기 중엽부터, 이것은 모든 인쇄 히브리어 성서에 사용되게 되었다.
5. 구약성서의 각 장의 중심내용
『신약성서』와 함께 기독교의 정전임과 동시에 유대교에서는 탈무드와 함께 히브리어(일부 아랍어)의 정전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과 생활규범을 이루고 있는데 예수관, 정전사적 경위에 의해 정전으로 공인된 텍스트로의 범위와 배열에 다소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성서학적으로 성립연대가 추정되는 가장 오랜 단편은 「사사기」(士師記) 5장의 데보라 전승가(B.C.12세기)가 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부족연합에 야훼 신앙이 수용되는 시기 혹은 그 이전부터의 전승을 필두로 헬레니즘 시대에 성립한 문서에 이르기까지 천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 축적된 이스라엘인의 종교체험을 나타내는 모든 문학류의 자료를 편집ㆍ수정한 것이다.
그 기본적 틀은 신의 계시에 의한 계약과 구제사(救濟史)라는 기본적 틀로 이뤄졌다. 최초에 히브라이어 원전의 오서(五書 ; 「창세기」 「출애굽기(出埃及記, 탈출기, 出記)」 「민수기」 「레위기」 「신명기」), 즉 『율법』이 바빌로니아 포수(B.C. 6세기 초)시에 파괴된 예루살렘의 성벽과 신전 재건이 시작된 네헤미아, 에즈라시대(B.C. 5~4세기 초)에 정전화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정치적ㆍ종교적으로 중심을 상실한 백성에게 생활규범 재건이 꾀해졌고 포로(捕虜) 상태에 놓인 제사(祭司)의 신학을 재구성한 것이 현재 형태의 법률편집의 지도원리가 되었다.
그후 『예언』, 『제서』(諸書)가 정전에 첨가되었지만 중세의 미소레 본문에 이른 텍스트의 범위가 확정된 것은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공략(A.D. 70) 후인 90년 야마니 종교회의에서이다. 초기에 유대인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하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예수의 출현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이해했다. 『신약』의 구약 인용이 나타내 주는 것처럼 당시 교회는 기원전 3~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그리스어 70인 역만을 사용했다.
여기에는 유대교 측이 야마니 종교회의에서 배제한 외위전(外僞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기독교의 표준성서 월거타에 남아 있다. 프로테스탄트는 히브리어 원전에 의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 『신약』의 성립 후 예수의 사실에서 출발, 재림과 함께 끝나는 종말론적 시각에 두고 있다는 이해로부터 기독교 측은 『신약』의 복음서ㆍ서간ㆍ묵시(예언)의 배열에 맞추어 『구약』도 율법ㆍ저서ㆍ예언 순으로 배열 수정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6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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