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본 문학을 이해하는 열쇠 『고사기』와 『만엽집』
2. 사랑과 정치 권력의 대서사시 『겐지모노가타리』
3. 중세문학의 쌍두마차 세이쇼나곤과 무라사키 시키부
4. 문화 주체를 서민으로 확대한 가부키와 조루리
2. 사랑과 정치 권력의 대서사시 『겐지모노가타리』
3. 중세문학의 쌍두마차 세이쇼나곤과 무라사키 시키부
4. 문화 주체를 서민으로 확대한 가부키와 조루리
본문내용
을 담당했다.
조루리는 인형을 중심으로 하는 극형태로 인형 조정자와 다유(太夫)라 불리는 가타리테에 의해서 공연되며, 샤미센과 꼭두각시 인형의 도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연극과 거의 유사한 가부키는 처음의 가부키오도리(歌舞伎踊り)에서 온나가부키(女歌舞伎)로 발전하였으나, 여자들의 매춘 문제로 인해 막부가 금지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젊은 남자들에 의한 가부키가 유행하지만, 이 또한 남색으로 막부의 탄압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현재와 같은 성인 남자들에 의한 가부키의 형태가 정착·발전되었다.
조루리나 가부키는 공연 형식은 전혀 다르지만, 대본을 쓰는 작자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무사 출신이면서도 대본 작자로 이름을 날렸던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도 조루리와 가부키를 왕래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지배계급인 무사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면서도 직접적인 후원자인 서민들의 욕구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이 두 예능의 생명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가부키와 조루리가 새로운 계급인 조우닌의 생활과 의식을 엮어내면서 무대예술로서 인기를 끌었다면, 근세 소설의 활황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근세 소설의 특징은 우선 그때까지 필사로 유통되던 모노가타리와는 달리 인쇄·출판되었다는 데서도 찾아진다. 이로써 이전에 문학의 독자가 일부 지배계급 내지 식자층에 한정되던 것이, 근세에 이르러서는 대량 인쇄에 의해 한꺼번에 광범위하게 유통됨으로써 서민층으로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서 중세에 들어와 서민층으로 문화가 확대되어 갔다고 하면, 그 서민의 전담 문화가 생겨난 것은 근세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히라 사이카쿠는 『好色一代男』에서 종래의 계몽적이고 교화적인 전통소설과는 달리, 당시의 풍속과 인정을 묘사하여, 조우닌의 현실주의적인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종전의 모노가타리 소설과 사이카쿠의 소설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다 같이 남녀의 연애를 테마로 하더라도 다른 시대가 아닌 그 당시 에도시대를 무대로 했다는 동시대성에 있다. 요즈음으로 치자면 인기 절정의 연속극이라고나 할까?
근세의 독서 욕구가 어떠했는지는 그 시대의 책 대여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높아지는 독서열을 필사 혹은 한정된 인쇄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어 드디어 책 대여점이 생겨난 것이다. 책을 보자기에 싸서 단골집을 돌아다니며 정가의 6분의 1 가격으로 5∼7일 동안 대여하는 식이었다. 에도(현재의 도쿄)의 대여점 이용객만도 1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 시세로 약 5만원에 해당하는 비싼 대여료였지만, "『好色一代南』 언제 들어와요?" 하는 주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책 대여점 성행의 배경으로는 그 당시 도시와 농촌 지역에 데라코야(寺子屋, 서당)가 설립되어 문자 해독 인구가 급증하고 있던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 주체로서의 서민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근세에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당시 세태를 반영하는 여러 형태의 문학을 통털어 게사쿠(戱作) 문학이라고 부른다. 풍속을 어지럽히고 공안을 해친다는 이유로 막부는 걸핏하면 탄압을 가했고 이로 인한 생존전략상 권선징악 위주로 테마가 변질되기도 했지만, 독자층이 현저히 확대된 서민 중심 문학의 출현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이제까지 일본의 전근대 문학과 예능의 흐름을 지극히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지배계급의 전유물로서의 문화가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형식과 향유자를 찾아나가는 여정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근세 서민문학의 탄탄한 저변 위에 일본의 문학은 메이지유신과 근대화에 발맞추어 근대 소설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조루리는 인형을 중심으로 하는 극형태로 인형 조정자와 다유(太夫)라 불리는 가타리테에 의해서 공연되며, 샤미센과 꼭두각시 인형의 도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연극과 거의 유사한 가부키는 처음의 가부키오도리(歌舞伎踊り)에서 온나가부키(女歌舞伎)로 발전하였으나, 여자들의 매춘 문제로 인해 막부가 금지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젊은 남자들에 의한 가부키가 유행하지만, 이 또한 남색으로 막부의 탄압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현재와 같은 성인 남자들에 의한 가부키의 형태가 정착·발전되었다.
조루리나 가부키는 공연 형식은 전혀 다르지만, 대본을 쓰는 작자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무사 출신이면서도 대본 작자로 이름을 날렸던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도 조루리와 가부키를 왕래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지배계급인 무사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면서도 직접적인 후원자인 서민들의 욕구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이 두 예능의 생명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가부키와 조루리가 새로운 계급인 조우닌의 생활과 의식을 엮어내면서 무대예술로서 인기를 끌었다면, 근세 소설의 활황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근세 소설의 특징은 우선 그때까지 필사로 유통되던 모노가타리와는 달리 인쇄·출판되었다는 데서도 찾아진다. 이로써 이전에 문학의 독자가 일부 지배계급 내지 식자층에 한정되던 것이, 근세에 이르러서는 대량 인쇄에 의해 한꺼번에 광범위하게 유통됨으로써 서민층으로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서 중세에 들어와 서민층으로 문화가 확대되어 갔다고 하면, 그 서민의 전담 문화가 생겨난 것은 근세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히라 사이카쿠는 『好色一代男』에서 종래의 계몽적이고 교화적인 전통소설과는 달리, 당시의 풍속과 인정을 묘사하여, 조우닌의 현실주의적인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종전의 모노가타리 소설과 사이카쿠의 소설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다 같이 남녀의 연애를 테마로 하더라도 다른 시대가 아닌 그 당시 에도시대를 무대로 했다는 동시대성에 있다. 요즈음으로 치자면 인기 절정의 연속극이라고나 할까?
근세의 독서 욕구가 어떠했는지는 그 시대의 책 대여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높아지는 독서열을 필사 혹은 한정된 인쇄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어 드디어 책 대여점이 생겨난 것이다. 책을 보자기에 싸서 단골집을 돌아다니며 정가의 6분의 1 가격으로 5∼7일 동안 대여하는 식이었다. 에도(현재의 도쿄)의 대여점 이용객만도 1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 시세로 약 5만원에 해당하는 비싼 대여료였지만, "『好色一代南』 언제 들어와요?" 하는 주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책 대여점 성행의 배경으로는 그 당시 도시와 농촌 지역에 데라코야(寺子屋, 서당)가 설립되어 문자 해독 인구가 급증하고 있던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 주체로서의 서민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근세에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당시 세태를 반영하는 여러 형태의 문학을 통털어 게사쿠(戱作) 문학이라고 부른다. 풍속을 어지럽히고 공안을 해친다는 이유로 막부는 걸핏하면 탄압을 가했고 이로 인한 생존전략상 권선징악 위주로 테마가 변질되기도 했지만, 독자층이 현저히 확대된 서민 중심 문학의 출현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이제까지 일본의 전근대 문학과 예능의 흐름을 지극히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지배계급의 전유물로서의 문화가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형식과 향유자를 찾아나가는 여정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근세 서민문학의 탄탄한 저변 위에 일본의 문학은 메이지유신과 근대화에 발맞추어 근대 소설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