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패러다임으로서의 녹색주의
- 병든 지구
- 인간중심주의적 형이상학적 허상
- 녹색윤리의 실천적 규범
- 병든 지구
- 인간중심주의적 형이상학적 허상
- 녹색윤리의 실천적 규범
본문내용
의 주체자와의 특수한 관계나 그 밖의 이유로 다같이 가족이면서도, 동포이면서,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부모가 형제보다, 동포가 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배려를 받아 마땅하듯이 인간이 어떠한 동물보다 우선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하며, 동물 중에서도 인간과 친근한 가축들이 그밖의 것들에 비해 더 큰 배려를 받아야 한다. <논어>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는 인의 본질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면서 <낚시질을 하되 그물질을 해서는 안되면 활을 쏘되 잠든 새는 잡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교는 그 어느 철학적 체계보다도 인간중심적이고 따라서 녹색주의적 윤리와 거리가 먼 사상이지만 유교가 인이라는 덕목의 가르침이요 그러한 인의 본질이 위와 같은 공자의 대답으로 대표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유교의 정신은 내가 여기서 주장하는 녹색윤리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 준다. 인간이 짐승을 양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것을 살해해야 할 경우일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그러한 짐승의 생명 그 자체의 존엄성을 무시해서는 안되면 그러한 짐승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공자의 생각이야 말고 녹색윤리의 구체적 현실성을 가장 선명히 밝혀준다.
불행히도 녹색윤리는 그러한 배려를 언제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 척도/규범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한 결정은 어떤 하나의 획일적 척도에 의해서 결정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만 녹색윤리는 첫째 인식론적으로는 모든 사물을 총체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둘째 우리의 세계관 일반 특히 윤리적 사고에 큰 혁신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혁신은 인간중심주의의 탈피에 있으며, 그리고 넷째 가장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자연에 대해 보다 겸허하고 우리 자신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이제부터라도 획기적으로 검박한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녹색윤리는 어떤 형태의 금욕주의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맑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는 재산 소유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본주의와 대립되지만 자연의 개발을 통한 무한한 물질적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물질적 만족은 아무래도 사회주의적 체제에서보다는 자본주의적 체제에서 더욱 극렬하게 추구된다. 이런 경제체제에서 모든 가치는 상품적 가치고 환원되고 사회는 상품주의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따라서 금욕주의가 중요시되기는 커녕 오히려 무제한한 소비와 향략주의가 격려된다. 불행히도 바로 이러한 사실은 사회주의가 세계적으로 붕괴한 오늘날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지구는 더욱 <개발되고> 그만큼 자연은 더 병들고 지구의 생태계는 더욱 위협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녹색윤리는 지구를 살리고 인간의 존속을 위해서 우리들의 세계관만이 아니라 현 상태대로의 자본주의의 경제적 체제에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은 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소비주의가 근본적으로 비판되고 일종의 금욕주의로 대치되어야 하며 나날이 팽창하는 물질주의가 일종의 정신주의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녹색윤리는 주장한다.
불행히도 녹색윤리는 그러한 배려를 언제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 척도/규범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한 결정은 어떤 하나의 획일적 척도에 의해서 결정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만 녹색윤리는 첫째 인식론적으로는 모든 사물을 총체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둘째 우리의 세계관 일반 특히 윤리적 사고에 큰 혁신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혁신은 인간중심주의의 탈피에 있으며, 그리고 넷째 가장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자연에 대해 보다 겸허하고 우리 자신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이제부터라도 획기적으로 검박한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녹색윤리는 어떤 형태의 금욕주의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맑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는 재산 소유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본주의와 대립되지만 자연의 개발을 통한 무한한 물질적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물질적 만족은 아무래도 사회주의적 체제에서보다는 자본주의적 체제에서 더욱 극렬하게 추구된다. 이런 경제체제에서 모든 가치는 상품적 가치고 환원되고 사회는 상품주의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따라서 금욕주의가 중요시되기는 커녕 오히려 무제한한 소비와 향략주의가 격려된다. 불행히도 바로 이러한 사실은 사회주의가 세계적으로 붕괴한 오늘날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지구는 더욱 <개발되고> 그만큼 자연은 더 병들고 지구의 생태계는 더욱 위협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녹색윤리는 지구를 살리고 인간의 존속을 위해서 우리들의 세계관만이 아니라 현 상태대로의 자본주의의 경제적 체제에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은 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소비주의가 근본적으로 비판되고 일종의 금욕주의로 대치되어야 하며 나날이 팽창하는 물질주의가 일종의 정신주의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녹색윤리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