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1945년 한국에서의 방송, 문화적 주도권과 식민지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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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4~1945년 한국에서의 방송, 문화적 주도권과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1924~1927년, 한국에 방송이 도입되다.

3. 1927~1933년, 초기의 방송과 문제점

4. 라디오의 재정문제와 청중 만들기

5. 감시와 동화 도구로서의 라디오

6. 한국 라디오와 문화적 건설

7. 결 론 : 일본의 동화와 한국의 대응에 대한 재고

본문내용

마비시키는 조선총독부의 뉴스와 정책보고서들이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가치를 주입시키는데 있어서 정말로 효과적이었는가? 1937년 이후 그런 프로그램을 주제로 다룬 시간의 양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층에서 “근대의 언어”로서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한 노력은 성공적이었는가? 그것을 라디오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인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신문으로부터 강연의 평론이나 간접적인 논평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편향된 근거이다.
어떤 면에서 소수의 한국 지식인들은 한국에서의 라디오를 문화적 유지와 시성(諡聖)의 과제로 보았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라디오를 대중화된 “저속한” 음악 장르에 의해서 문화적 가치가 서서히 손상된다며 비난하였다. 그것은 두 가지의 해석을 인정하는 면에서 중요하다. 한국 라디오는 문화적 유지의 역할을 하였고, 또한 그것은 이론적인 민족주의가도 조선총독부의 관리도 통제할 수 없는 문화적 건설의 장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한국 라디오 이야기는 일본의 동화정책에 대해 한국 문화가 저항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침내 식민지 기간동안의 한국 라디오 이야기는 문화적 건설에 있어서 더욱더 복잡한 구조의 부분으로 보아야한다. 식민지의 라디오는 진공의 상태가 아니었다. 비록 그것이 식민지의 지배자에 의해 한국으로 옮겨진 또 다른 근대의 과학기술이라고 할지라도, 이 새로운 매체는 이미 발달된 근대, 대중문화를 전개해 나갔다. 라디오는 문화의 활동무대에서 여가의 소비를 강화하였다. 특히, 새로운 음악 장르의 발달과 빠르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927년 이후부터 음반 소비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일본 라디오는 일본인들이 한국에 근대 과학기술을 수입하여 정치적으로 더욱 더 통제하고, 최후에는 동화하기 위한 강제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10~1945년 사이에 한국의 변형된 문화생활에 있어서 새로이 생동적인 체계의 부분이 되었다. 이것은 무서운 힘을 가졌고, 그러는 동안 떠오르는 한국 근대의 구조는 일본화 되어갔다. 그러나 자주성 발달의 선택된 공간에서 한국인들은 그들 자신의 근대성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였다. 이 주제에 대해 더욱더 접근해보면, 식민지에서의 문화적 건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한국의 식민지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논쟁 사이의 중요한 연속성을 조명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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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01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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