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즉 향가는 악기의 연주가 수반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향가를 부르는 상황이 비록 재단을 갖춘 제의적 시공간이라 하여도 악기의 연주는 수반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향가의 경우 그 연행에 대한 용어를 "唱"이라 한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다시 말하여 노랫말만으로 이루어진 양식은 '歌'의 경우 그 연행방법으로 "唱"이라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奏"의 경우는 악기의 연주를 의미한다. 향가에 "奏"나 "獻"을 사용하지 않은 일연의 음악의식은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일연의 음악관에 비추어보면 김부식이 신라음악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는 자명해진다. 신라음악을 정리하면서 김부식은 일인이 그렇게도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향가에 대하여 일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樂'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궁중에서 연행되는 음악이 아니었고, 따라서 김부식의 樂이념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부식은 신라 궁중에서 "歌樂舞"가 종합적으로 연행된 '樂'으로서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한 '樂'이야말로 그들의 예학사상에 근거한 '樂'이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고문헌>
『新羅 音樂相과 詞腦歌』1999, 呂基鉉
이러한 사정은 향가의 경우 그 연행에 대한 용어를 "唱"이라 한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다시 말하여 노랫말만으로 이루어진 양식은 '歌'의 경우 그 연행방법으로 "唱"이라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奏"의 경우는 악기의 연주를 의미한다. 향가에 "奏"나 "獻"을 사용하지 않은 일연의 음악의식은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일연의 음악관에 비추어보면 김부식이 신라음악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는 자명해진다. 신라음악을 정리하면서 김부식은 일인이 그렇게도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향가에 대하여 일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樂'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궁중에서 연행되는 음악이 아니었고, 따라서 김부식의 樂이념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부식은 신라 궁중에서 "歌樂舞"가 종합적으로 연행된 '樂'으로서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한 '樂'이야말로 그들의 예학사상에 근거한 '樂'이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고문헌>
『新羅 音樂相과 詞腦歌』1999, 呂基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