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기의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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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근대사학의 태동

2. 역사편찬의 변천

3. 역사서술의 인식변화

본문내용

, 1908년 이후의 초등교과서뿐이었다. 그 외는 모두 신라말이나 고려말까지 서술한 것이다. 그런데 1895년과 1899년의 관찬사서는 편년체 사서이고 실학사서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한 것이다. 1906년의 『동국사략』은 일본의 하야시의 것을 역술한 것이다. 하야시의 것보다는 민족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민족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주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식민사학을 대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말 사서로서 근대적으로 서술된 최초의 통사는 황의돈의 『대동청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몰론 거기에도 조선후기까지 서술했다든지 서술내용에서 왕실 중심의 정치설화 방식이나 정통론의 잔영이 있는 등의 한계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있다고 해도 편년체 서술에서 벗어났으며 정통론도 크게 극복하고 있다. 대외관계를 표준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역사발전을 기준으로 한 시대구분을 시도한 점이나 그에 따른 내용 서술에 노력한 점 등 근대사학에 가까운 통사로 볼 수 있다. 『대통청사』는 신채호의 「독사신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우리 민족에 대해 부여족의 관점을 지닌 것이나 대외관계에 역점을 둔 것은 「독사신론」이 뜻하는 바와 같다. 한편 정치나 문화현상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히 논한 점으로 봐서 문화사학의 관점에 접근하고 있는 특징도 엿보인다.
그렇게 보면 근대사학은 신채호의 「독사신론」과 황의돈의 『대동청사』에 의해서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의 사론을 통해서, 황의돈은 통사 서술을 통해서 근대사학을 수립해갔다. 그리하여 1910년대 이후 민족사학의 기초가 되었다고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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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21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7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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