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균형과 1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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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동맹이란?
‘국가가 각자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맺는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협정’
※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의 특징 : 유연성과 복잡함
□ 제1차세계대전(First World War)의 기원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하여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 삼국협전(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양극 중심의 싸운 전쟁’
○ 전쟁발발 원인
간결성의 원칙은 우리가 가장 간단한 원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원인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지 살펴본 다음, 필요에 따라 더 복잡한 것을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구조와 과정 모두를 포함한 체제적 설명에 의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고나서는 국내 사회의 차원으로,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차원으로 눈을 돌린다. 그다음에는 제1차세계대전을 설명하는 데 모든 원인들이 맞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가상사실적 실험을 사용한다.
구조적 차원에서는 두 개의 결정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독일 권력 증가와 동맹체제의 경직성 강화이다. 독일은 1890년 중공업이 영국을 제쳤고 20세기 초 독일의 GNP는 영국의 2배에 달했다.
국내 사회의 차원
- 레닌의 잘못된 주장(전쟁이 자본가에 의해 일어난다)
- 쇠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국내위기(민족주의)
- 국내위기(독일의 세계패권을 향한 노력은 독일 엘리트들이 국내의 관심을 독일 사회의 분열이 아닌 외부의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개인의 역할 문제 차원
-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조세프는 지치고 늙었으며 콘라드 장군과 교활한 외무상인 버크톨드 백작(Count Berchtold)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페르디난드 황태자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었다면 전쟁을 반대한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국내의 변화를 저지하는데 소모한 외로운 독재자였다. 무능력한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을 그느리고 있었고 병든 신경과민의 아내의 영향
- 카이저는 심한 열등감, 매우 감정적인 성격으로 일관성 없는 위험한 정책 실행
○ 과 정
○ 결 과
수많은 인명피해(약 1,500만 사망)
3개의 유럽제국 소멸(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 미국과 일본이 주요한 행위자로 등장
러시아 혁명의 발발
이데올로기적 대결이 시작
□ 전쟁은 불가피 했는가?
○ 제1차세계대전의 근원적 원인 : 세력균형의 구조와 국내 정치체제의 변화
⇒ 독일의 국력 증가, 양극 동맹체제의 발전, 민족주의 출현과 그에 의해 쇠락한 두제국의 멸망, 독일정치
○ 중간원인 : 독일의 정책, 평화에 대한 자만의 증가, 지도자의 개인적 특성
○ 촉진원인 : 세르비아의 테러리스트가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를 암살한 사건
○ 가 정
1) 만약 사라예보 사건이 없었다면?
근원적/ 중간원인이 주어진 상황이라 해도 반드시 전쟁이 필연적이지는 않다.
2)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이 없었고 1916년까지 위기도 없었다면?
러시아 힘의 증가로 독일의 슐리펜 작전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어떤 종류의 전쟁이었을까?
1) 단순한 국지전(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또는 단일전선의 전쟁(독일과 러시아)
2) 영국이 없는 양면전쟁 (독일과 오스트리아 vs 프랑스와 러시아)
3)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전쟁
○ 결 론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으며,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세계 세력균형의 심장부인 유럽을 파괴시킨 4년간의 대 살육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결국 제1차세계대전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필연적이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이었다.
□ 역사교훈의 재현(Lessons of History Again)
○ 구조나 힘의 분포뿐만 아니라 세력균형체제의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평화에 대한 자만이나 다음 위기가 지난번의 위기와 동일한 패턴이 될 거라고 믿는 안일함 경계(1914년의 상황은 1908년 보스니아 위기와는 달랐다.)
○ 위기에 안정적일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
□ 21c와 1914년의 차이점
○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예방전쟁은 재앙이 되었다.
○ 전쟁의 이데올로기와 전쟁을 용인하는 태도가 훨씬 약해졌다.
(1914년에는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이 적용되어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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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27
  • 저작시기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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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98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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