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세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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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문의 세속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학문의 세속화
2. 신적 계시의 중심동인
3. 이원론적 적응동인
4. 희랍적 형상 및 질료 동인
5. 중세적 종합의 분열
6. 종교개혁의 실패
7. 인본주의의 영향

결론

본문내용

폴레옹과 같은 위인을 보통 사람과 같은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인간 사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과학의 수학적 그리고 기계론적 이상의 영향으로 사회는 개성을 상실한 원자와 같은 개인들의 집합으로 분해되었다. 이 사회에는 개별적 총체로서의 공동체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일반 법칙에서 자유로운 개인을 위한 공간만 있는 이 새롭고 자유로운 인격 이상 개념은 그 반대의 극단으로 흐르고 말았다. 그것은 개개인을 완전히 포함하고 그 법칙들 및 사회 질서를 자율적인 개별 정신으로 산출해낸 전체주의적 사회, 즉 개개인은 지상의 개별적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만 간주하는 보편적 사회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러한 비합리적 관점에 따르면, 그 국민들의 개성을 결정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국가들이다. 여기에는 인권 그 자체는 발붙일 곳이 없다. 이제는 더이상 보편적인 인간이 아닌 독일, 영국, 불란서, 등과 같은 자기 나라의 한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을 간주할 뿐이다. 이러한 새로운 자유 개념에 따라 칸트가 합리적이고 기계론적 과학 이상의 영역으로 본 자연 개념도 바뀌어야 했다.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 변증법적 사고방식에 의해 인본주의적인 종교적 출발점에 그 기원을 둔 두 대립적인 동인들을 종합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즉 자연안에서 자유를, 그리고 자유안에서 자연적 필연성을 발견하려 했다. 19세기 전반기에 왕정복고의 보수적인 정신이 영적인 분위기를 지배할 때 옛 과학 이상이 정밀한 학문적 분석 방법에 의해 그 매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과학 이상은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었다. 수학적이고 기계적인 사고 방식이 합리주의 철학을 지배했듯이 이 새로운 역사주의적 학문 이상도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인본주의적인 종교적 동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사주의적 사고 방식은 실재를 보편적 법칙들의 일반적 형성으로 환원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러한 합리주의적 사고를 창조적 개체의 중심에 침투할 수 없는 것으로 무시했다. 역사주의적 사고는 반복할 수 없는 개별적 사실들에서 그 재료를 찾았다. 그것은 개별적 사실들을 그 개별성에 따라 르네상스, 계몽주의, 왕정복고 등과 같은 특정한 발전기간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를 원했다. 또한 기계론적이고 수학적인 과학 이상이 기계론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실재관을 창조했듯이 새로운 역사적 학문 이상도 그 나름의 형상을 따라 세계를 창조했다. 모든 실재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으며 이 관점은 절대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역사적 사고는 역사적 세계를 만들어 그 중심에 삶의 다른 비 환치적 양상들을 위한 공간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자연 자체도 연속적인 창조적 진화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자연으로 변형되었다. 그런 체제에서 인류의 문화사는 자연사보다 진보된 상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기계론적 과학 이상이 인본주의적 자유 동인에 적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듯이 새로운 역사적 학문 이상도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격이라는 인본주의적 이상에 더 위험한 대적으로 나타났다. 이 새로운 역사주의가 역사적 과정을 단지 자율적인 인간의 영원한 이상의 역사적 개현으로 생각한 관념론에 의해 제동이 걸린 한, 역사주의는 더 이상 그 극단적인 함의들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역사주의적 사고가 싹튼 후칸트주의적 관념론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역사주의는 인본주의의 영원한 이상들도 역사적 양상에 국한시켜 단지 역사적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산물로 환원시켜 버렸던 것이다. 관념론에서 해방되기 위해 역사주의는 실증적이 되었다. 다윈과 마르크스주의의 생물학적인 진화론은 역사적 사고를 자연주의적 방향으로 변형시켰다. 양자 모두 학문의 해방적 능력을 철저히 신뢰했던 것이다! 이러한 세속화된 학문의 종교적 이상은 결국 극단적인 역사주의의 허무주의적 함의들을 표출하게 되었다. 구시대적인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과학 이상의 기초는 20세기 초반에 에너지의 양자 이론이 발견되면서 붕괴되었다. 다윈적 진화론의 최면은 비판적인 역사적 연구가 문화 및 사회 생활의 진화를 선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잘 증명된 사실들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또한 양차 세계 대전은 과학 및 자율적 이성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제거해 버렸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에 직면하여 실증주의적 역사주의는 가장 일관성있고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 과학적 진리의 기초를 파괴해 버렸다. 그것은 역사가 퇴보한다는 느낌을 갖게 했으며 이것은 인본주의적 실존주의와 스펭글러의 유명한 책 [서구의 몰락]에서 그 철학적 표현이 나타난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학문이 세속화되는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끝까지 추적해 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파멸적 과정이 반성경적인 종교적 동인들에 의해 인도되었으며 로마 카톨릭주의나 개신교 모두가 세속화된 학문 정신의 발전에 그 책임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들 양자 모두가 성경적 동인의 통합적이고 근본적인 성질을 망각하고 자연과 은혜라는 스콜라적 동인을 따랐기 때문에 이 세속화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구 문명이 영적으로 뿌리가 뽑혀 버렸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으며, 이것은 학문의 세속화 과정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칼빈적인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학문 및 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포함되느냐 아니면 자연 이성의 영역에 속하느냐라고 하는 스콜라적인 토론에 더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토론은 인간 존재의 마음을 지배하는 종교적 추진력과 독립된 자연 이성을 없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더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단 두가지, 즉 그 변증법적 개현으로 인해 세속화를 낳게 되는 스콜라적 적응의 길과 성경적 동인의 추진력에 의한 학문적 사고의 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종교개혁적 정신의 길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 추수밭, 즉 학문적 지식의 영역을 포함한 전 지구에 신실한 일꾼들을 보내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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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6.08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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