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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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시 삼신은 우리가정 안방에 삼신을 모셨으나 하회 주민들은 이 느티나무에 삼신을 모셨다 한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출가해서 그 집의 대(代)를 이을 자녀를 갖지 못하면 칠거지악에 해당되어 소박 당했다 전해지고 있다.
<부용대(芙蓉臺)>
절벽 경관이 바로 부용대이다. 저 부용대 절경은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이며, 해발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의 내력은 중국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며 부용의 뜻은 연꽃을 뜻하며 맨 처음 북애(北厓)로 호칭되었다. 북애란 하회의 북쪽에 위치한 언덕이란 뜻이다.
여기서 강을 보면 물이 돌아 흐르는 과정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동남쪽에 위치한 병산 앞에서부터 남쪽 산 밑을 통과 서쪽으로 흘러온 물굽이가 부용대 앞을 지나 동쪽 면에 부딪혀 저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물이 흐르는 과정이 태극형 또는 S자 거꾸로 놓은 듯이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송정(萬松亭)>
만송정이란 소나무가 만(萬)그루 서 있는 곳이라 하여 일만(萬)자, 솔송(松)자 '만송정' 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그 유례는 겸암선생이 풍치림 조성을 위하여 심으셨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하회마을의 유일한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솔밭의 나무는 자연 도태되고 백여 그루 남아 있는 형편이다. 우리 모두 잘 가꾸어서 길이길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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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8호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20 이 건물은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 기슭에 있는 것으로 서애 류성룡이 노후에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스님들이 자청하여 10년 동안 시주를 거두어 선조19년(1586)에 완성하였다. 서애 류성룡이 노후에 이곳에서 징비록을 썼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고, 정면 4칸, 중앙 4칸은 마루이고 양쪽 협 칸은 온돌방인 것이 특징이다.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9호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37 이 겸암정사는 하회 마을 건너편의 암벽인 부용대 기슭에 위치한 류운룡의 정자로서 명종 22년(1567)에 지었다. 집의 구조는 2층 누각식의 목조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이 집은 겸암 류운룡이 제자 양성을 위해 힘쓴 곳이다.
안동의 유명한 무형문화재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자...
선유(船遊)줄불놀이는?
당시 양반들이나 선비들이 강에 배를 띄우고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 줄을 매고 뽕나무 숯을 달아 야간에 불을 피우고 부용대 절경 위에서 아래 강으로 솔나무단에 불을 붙여 떨어뜨리는 놀이로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경관을 이루는 놀이이다. 이 놀이는 줄을 매어 불을 붙이는 것이 줄불이요, 솔나무단에 불을 붙여 떨어뜨리는 놀이가 낙화요, 배안에서 풍류를 즐기는 놀이가 선유라 하여 선유줄불놀이로 전해오고 있다. 이 놀이는 경비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자주 할 수는 없다.
하회별신(河回別神)굿 탈놀이란?
당시 서민들이 자기 상전이나 양반들을 희롱하는 놀이로서 사회의 경종을 불러일으키는 마당놀이 풍작 극이다. 하회탈은 이 놀이에 사용하던 얼굴을 가리는 기구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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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23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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