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Ⅰ. 70년 선거까지 칠레
Ⅰ― 1. 70년 이전까지 칠레의 정치사
Ⅰ― 2. 아옌데 집권전의 경제상황
Ⅰ― 3. 1970년 선거
Ⅰ― 4. 인민연합
Ⅱ. 70~73년 아옌데 정권
Ⅱ― 1. 경제 정책의 실패
Ⅱ― 2. 정치세력간 대립
Ⅲ. 73년 쿠데타 이후의 칠레
Ⅲ― 1. 피노체트
Ⅲ― 2. 民政 ― 새로운 칠레?
나오며
참고문헌
Ⅰ. 70년 선거까지 칠레
Ⅰ― 1. 70년 이전까지 칠레의 정치사
Ⅰ― 2. 아옌데 집권전의 경제상황
Ⅰ― 3. 1970년 선거
Ⅰ― 4. 인민연합
Ⅱ. 70~73년 아옌데 정권
Ⅱ― 1. 경제 정책의 실패
Ⅱ― 2. 정치세력간 대립
Ⅲ. 73년 쿠데타 이후의 칠레
Ⅲ― 1. 피노체트
Ⅲ― 2. 民政 ― 새로운 칠레?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1990년 4월 \'진실과 회해위원회\'를 설치하여 1973년부터 1990년까지 걸쳐 발생한 인권유린 사례를 조사하는 등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권회복 문제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헌법의 개정을 위한 노력은 아일윈 정부는 하지 못했다. 기득권 세력의 최후의 보루였던 헌법을 개정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개혁 정책은 군부의 반정부적인 행위를 묵인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3년 12월 선거에서 58%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프레이(Eduardo Frei Ruiz-Tagle) 후보는 1994년 칠레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칠레의 민주화가 조금씩 공고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보수우익의 알렉산드리 후보가 24.4%의 득표율에 그침으로써 독재의 힘이 더욱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듬해, 실시된 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중도-좌파 연립이 승리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칠레의 민주화는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이는 대선 공약에서 \'과거에 대한 확실한 정리\'를 내세웠지만, 전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군부와의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 노동, 교육 등의 분야에 더욱 치중하는 등 기득권의 세력과의 마찰을 피하게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피노체트 통치기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인권 유린 혐의로 사임압력을 받아온 루돌프 스땅헤 무장경찰 사령관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의 전 정권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과거사 청산 문제를 위해 국민화합조치를 발표하는 등의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집권기간이었던 1998년 3월 피노체트는 군총사령관직을 25년 만에 사임하게 되었고 이에 발맞추어 많은 단체들이 그의 상원의원 임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의 상원의원 임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집권당의 의원들은 피노체트가 국가의 명예와 안보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탄핵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였으며, 국회 특별위원회는 3대 2의 표결로 그를 탄핵하였다.
1999년 치러진 세 번째 민선 대통령 선거는 1990년부터 지속되고 있던 칠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여 21세기 칠레의 정치와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게 될 대통령 선거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선거였다. 이전의 두 번의 선거와 달리 이때의 선거는 2차 결선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사회당의 라고스 후보가 보수우익연합의 라빈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21세기 첫 칠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라고스가 아옌데 이후 합법적인 선거로 정권을 잡은 좌파 대통령이라는 점도 칠레의 정치가 조금씩 다원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라고스 대통령은 피노체트 군정시절부터 수없이 감옥과 망명생활을 되풀이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칠레의 과거사 청산과 개혁을 과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1980년에 기득권 세력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을 21세기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그의 개혁 정책은 오늘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3번의 민선 대통령이 집권한 칠레이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저항이 아직까지 칠레의 민주주의 공고화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군부는 여전히 피노체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고, 기득권에서 친 피노체트파가 많은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고령의 피노체트를 생각할 때 그의 영향력은 어떻게 해서든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며 군부는 어떤 형태로든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남미에서 발생한 쿠데타 중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도 칠레의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칠레이지만 라고스 대통령이 치중하는 부문이 경제부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경제 성장률이 6%대를 유지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칠레는 조금씩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나오며
이상 칠레가 경험한 혁명과 반동의 정치사를 살펴보았다. 논의를 정리하면서 간단히 논점을 제기하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서 개량주의의 문제이다. 급진좌파가 주장하듯 국가기구를 인정한 개량주의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가? 아니면 이 문제를 당시 사회적 갈등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 아옌데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제3세계 국가에서 혁명이나 개혁을 추진할 때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때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두 번째로 민정이후 피노체트의 그늘을 어떻게 떨쳐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가 만든 제도적 장치의 유산이라는 측면과 그의 억압적 통치가 남긴 상처라는 측면 모두에서 이는 극복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다른 제3세계 국가의 경험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의 악령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지배하듯이 칠레도 오랫동안 홍역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제를 칠레에 국한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3세계 국가와 비교해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여기에 비교정치학의 미덕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칠레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분명하게 혁명과 반동의 스펙트럼을 뚜렷이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서병훈. 1991. 『다시 시작하는 혁명 : 아옌데와 칠레식 사회주의』. 나남
송기도 강준만. 1996.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 중남미의 재발견』. 개마고원
원재홍. 2000. 『칠레의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과 전망』.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이미숙 김원호. 2001. 『남미가 확 보인다』. 학민사
이성형. 1990.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사』. 까치
장광익. 1993. 『칠레 경제현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정보센터
O\'Brien, Philip J., 편. 1987. 최선우 역. 『칠레혁명과 인민연합』. 사계절
그러나 인권회복 문제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헌법의 개정을 위한 노력은 아일윈 정부는 하지 못했다. 기득권 세력의 최후의 보루였던 헌법을 개정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개혁 정책은 군부의 반정부적인 행위를 묵인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3년 12월 선거에서 58%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프레이(Eduardo Frei Ruiz-Tagle) 후보는 1994년 칠레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칠레의 민주화가 조금씩 공고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보수우익의 알렉산드리 후보가 24.4%의 득표율에 그침으로써 독재의 힘이 더욱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듬해, 실시된 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중도-좌파 연립이 승리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칠레의 민주화는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이는 대선 공약에서 \'과거에 대한 확실한 정리\'를 내세웠지만, 전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군부와의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 노동, 교육 등의 분야에 더욱 치중하는 등 기득권의 세력과의 마찰을 피하게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피노체트 통치기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인권 유린 혐의로 사임압력을 받아온 루돌프 스땅헤 무장경찰 사령관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의 전 정권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과거사 청산 문제를 위해 국민화합조치를 발표하는 등의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집권기간이었던 1998년 3월 피노체트는 군총사령관직을 25년 만에 사임하게 되었고 이에 발맞추어 많은 단체들이 그의 상원의원 임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의 상원의원 임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집권당의 의원들은 피노체트가 국가의 명예와 안보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탄핵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였으며, 국회 특별위원회는 3대 2의 표결로 그를 탄핵하였다.
1999년 치러진 세 번째 민선 대통령 선거는 1990년부터 지속되고 있던 칠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여 21세기 칠레의 정치와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게 될 대통령 선거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선거였다. 이전의 두 번의 선거와 달리 이때의 선거는 2차 결선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사회당의 라고스 후보가 보수우익연합의 라빈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21세기 첫 칠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라고스가 아옌데 이후 합법적인 선거로 정권을 잡은 좌파 대통령이라는 점도 칠레의 정치가 조금씩 다원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라고스 대통령은 피노체트 군정시절부터 수없이 감옥과 망명생활을 되풀이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칠레의 과거사 청산과 개혁을 과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1980년에 기득권 세력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을 21세기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그의 개혁 정책은 오늘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3번의 민선 대통령이 집권한 칠레이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저항이 아직까지 칠레의 민주주의 공고화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군부는 여전히 피노체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고, 기득권에서 친 피노체트파가 많은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고령의 피노체트를 생각할 때 그의 영향력은 어떻게 해서든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며 군부는 어떤 형태로든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남미에서 발생한 쿠데타 중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도 칠레의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칠레이지만 라고스 대통령이 치중하는 부문이 경제부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경제 성장률이 6%대를 유지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칠레는 조금씩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나오며
이상 칠레가 경험한 혁명과 반동의 정치사를 살펴보았다. 논의를 정리하면서 간단히 논점을 제기하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서 개량주의의 문제이다. 급진좌파가 주장하듯 국가기구를 인정한 개량주의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가? 아니면 이 문제를 당시 사회적 갈등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 아옌데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제3세계 국가에서 혁명이나 개혁을 추진할 때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때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두 번째로 민정이후 피노체트의 그늘을 어떻게 떨쳐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가 만든 제도적 장치의 유산이라는 측면과 그의 억압적 통치가 남긴 상처라는 측면 모두에서 이는 극복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다른 제3세계 국가의 경험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의 악령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지배하듯이 칠레도 오랫동안 홍역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제를 칠레에 국한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3세계 국가와 비교해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여기에 비교정치학의 미덕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칠레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분명하게 혁명과 반동의 스펙트럼을 뚜렷이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서병훈. 1991. 『다시 시작하는 혁명 : 아옌데와 칠레식 사회주의』. 나남
송기도 강준만. 1996.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 중남미의 재발견』. 개마고원
원재홍. 2000. 『칠레의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과 전망』.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이미숙 김원호. 2001. 『남미가 확 보인다』. 학민사
이성형. 1990.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사』. 까치
장광익. 1993. 『칠레 경제현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정보센터
O\'Brien, Philip J., 편. 1987. 최선우 역. 『칠레혁명과 인민연합』. 사계절
키워드
추천자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당제도 고찰 - 정당운영의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정치폭력과 이데올로기-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투쟁 ․ 희생
[우수평가자료]국제인권법과 피노체트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
이슬람과 권위주의
[민주주의][민주주의사상]민주주의와 민주주의사상 심층 분석(민주주의 이념, 민주주의 본질,...
[칠레][칠레문화][칠레의 문화][칠레의 경제][칠레의 사회][칠레의 정치]칠레의 정치, 칠레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칠레][라틴아메리카][중남미][칠레의 문화]라틴아메리카 칠레의 개황, 라틴아메리카 칠레의 ...
제 3세계 민주주의에 관한 비교연구-래리 다이어몬드, 후안 린쯔, 세이무어 마틴 립셋 번역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