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폴리아 : 희망없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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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테크노폴리아 : 희망없는 미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 About Neil Postman
1) 닐 포스트먼 소개
2) 닐 포스트만이 바라보는 미디어사회

2. 타무스왕의 판정

3. 도구사용문화에서 기술주의 문화로

4. 기술주의 문화에서 테크노폴리로

5. 불가능할 법한 세계

6. 무너진 방어체계

7. 마무리하며 : 한계점
1) 기술만이 사회변동의 완전한 인자가 아니다.
2)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본문내용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세계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여전히 성인(聖人), 죄, 조상, 가족, 지역적 충성심과 같은 것들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도구사용문화의 세계관도 기술주의문화와 함께 대립하며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테크노폴리는 모든 형태의 문화와 생활이 기교와 기술의 치하에 종속되는 사회이다. 기술주의문화의 쇠퇴와 테크노폴리의 성장과 함께 두개의 사상세계 가운데 하나가 사라진다. 테크노폴리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안을 제거한다. 테크노폴리는 자신을 대체할 대안들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볼 때 테크노폴리는 전체주의적 기술주의문화이다.
테크노폴리의 사상세계의 전제들은 테일러의 저서『과학적 경영원리』에서 최초로 본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신념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행하는 노동과 생각의 주된 목표가 효율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인 계산은 인간의 판단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며, 인간의 판단은 느슨하고 애매하며 불필요하게 복잡하다는 결점을 지니고 있어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것이고, 주관성은 투명한 사고의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측정 불가능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기술이 인간의 어떠한 종류의 생각이라도 대신할 수 있음이 가능하다는 것은 테크노폴리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러한 전제들이 갑자기 솟아나온 것은 아니다. 18,19세기의 기술주의문화로부터 배양되고 양육되어 온 것이다. 그렇기에 테크노폴리의 기원을 19세기 철학자인 콩트의 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볼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콩트의 주장은 후에 인간을 탐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테크노폴리에서 이러한 사상은 기술이 자신의 역할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에 불과하다. 기술주의문화는 기계의 발명에 열중한다. 생활이 기술에 종속이 되거나 인간 소외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들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기술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조건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술주의문화에서 그러한 조건은 철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기술주의문화는 인생의 의미를 기계와 기교에서 찾아야 하는 거대 환원주의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테크노폴리는 다르다. 한 사회를 제대로 섬기려면 인간을 기교와 기술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명백히 드러낸 것이 테일러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테크노폴리가 번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지금까지의 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여기에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인의 절제를 싫어하는 특성이 급진적이고 무분별한 기술의 침입을 도왔다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로 19세기 20세기 초반의 미국 자본가들의 천재적 자질과 대담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은 미래란 과거와 연관될 필요가 없음을 동포에게 설득했다는 데 있었다. 세 번째로 20세기 기술이 미국인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 속도, 위생, 그리고 풍요를 제공하면서 보여준 성공은 너무나 명백하고 희망적이었기 때문에 성취나 창의성, 혹은 동기 등 다른 것들을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술의 압도적인 승리는 구시대의 신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학자들의 파편적인 주장 속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생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기술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인들은 누구보다 테크노폴리의 창조라는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즉 미국인들의 절제에 대한 불신과 지도자의 개척 정신, 기술의 성공, 그리고 전통적 신념의 천시 등이 극도로 강조 될 수 있는 정황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기술주의를 테크노폴리로 탈바꿈하도록 만들었다.
5. 불가능할 법한 세계
중세에는 신(종교)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 그러나 현대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사회과학이 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
전근대 유럽 교회는 형이상학적 혹은 신학적 가정에 근거한 어느 정도 이해가능하고 질서 정연한 세계관을 제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에 질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었다. 교회는 한 줌의 원리로부터의 추론을 통해 전적으로 이성적이지는 않더라도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세계 속에서는 이론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연의 모든 활동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기술주의 문화가 도래하면서 교회가 제시한 도덕적, 지적 일관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신 정보가 인간 정신 구조와 자연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기술이 발달 하면서 정보 희소성의 문제는 해결 되었지만 정보과잉의 위험에 우리는 노출되었다.
예를들면 중동, 남미, 그리고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나는 민족간의 갈등 문제와 수백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는 이유가 정보가 부족해서 인가? 범죄율 증가, 질병의 만연이 정보가 부족해서인가? 이혼율의 급등과 정신병원 환자율 증가가 정보가 부족해서 인가?
위에 제시된 문제는 정보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일부 학계에서는 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편하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계의 탄생을 칭송한다.
정보과잉의 기원은 16세기 초 인쇄기술에 기인한다. 구텐베르크가 낡은 포도 압착기를 이용해 활판활자를 사용하는 인쇄기를 발명한 것이다. 40년 후 6개국 110개 도시에 인쇄기술이 확산되었고, 50년 후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분야의 도서가 800만 권 이상 인쇄되었다.
그 후 16세기 중반에는 책의 쪽수를 매기는데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1516년에 발간된 요한 프로벤의 신약성경 초판
. 또한, 색인, 주석, 상호참조 작업이 실행되었으며, 구두점 찍기, 절 표시, 문단 나누기, 표제지와 면주의 개선도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정보의 양을 더욱 늘려주는 기재로 작동하게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사람들은 인쇄된 책이 정보의 위기를 가져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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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07.19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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