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통일신라》
●신라의 삼국통일
◎통일 신라의 발전
◎발해의 건국과 발전
◎ 남북국 통치 체제
◎ 신라 말기의 정치 변동과 호족 세력의 성장
◎ 후삼국의 성립
☆ 신라의 삼한 일통 의식과 민족융합정책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전제정치의 확립
☆김흠돌의 난
☆신문왕의 개혁정치
☆진골귀족의 반발
●신라의 삼국통일
◎통일 신라의 발전
◎발해의 건국과 발전
◎ 남북국 통치 체제
◎ 신라 말기의 정치 변동과 호족 세력의 성장
◎ 후삼국의 성립
☆ 신라의 삼한 일통 의식과 민족융합정책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전제정치의 확립
☆김흠돌의 난
☆신문왕의 개혁정치
☆진골귀족의 반발
본문내용
권을 강화: 무열왕 즉위직후 김법민→병부령→태자
무열왕 5년(658), 7년(660): 중시-왕자 문왕, 상대등-김유신
-진골귀족의 불만 해소 정책을 시행했을 것: 진주를 병부령에 임명(문무왕 즉위 이후 제거)
○문무왕대 전제정치
-즉위 초기 진골귀족세력을 회유: 문무왕 원년(661), 8년에 모든 문무관의 관등을 하나씩 승진-문무왕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해 정치적 안정을 꾀한 것.
-진골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무열왕계의 전제정치를 확립시키려는 목적
-진골귀족들의 군사적 기반 박탈: 삼국통일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군사적이유로 진골귀족을 제거
문무왕 2년(662) 대당총관 진주, 남천주총관 진흠의 처형-전제정치를 반대하는 진골귀족에 대한 억압책
병부령의 제거는 전제정치의 확립을 위해 병권을 국왕직속으로 돌리 기 위한 조치
총관 출신 장군의 배반-문무왕이 군사적 측면에서 왕권강화책을 실시 했을 것이라는 추측
당시 6정의 성격-진골귀족이 군사적 실권을 행사하는 성격.→ 6정에 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귀족세력을 약화→9서당의 설치
사병의 혁파-‘주군의 병기를 거두어 농구를 만들라’ 문무왕의 유조
-관료질서의 확립: 기존 지방 통치체제-군정적 성격→행정일원화의 성격으로 전환
진골귀족세력에 대신하여 육두품이하 관료(학문적, 행정적능력)들에게 관심
법전의 정비, 행정관서의 정비-행정관료의 확충
율령체제의 대대적 정비-전제왕권을 법전화, 합법화
-삼국통일후 왕권강화의 집중: 대외전쟁의 성공을 바탕으로 하여 왕권강화를 위한 대내적 정치개혁으로 의 방향 전환
☆김흠돌의 난
-문무왕의 왕권강화책에 대한 진골귀족의 불만
-김흠돌: 문무왕 즉위초 大幢의 장군으로 임명, 고구려 정벌에 참여 군사적 활동
문무왕 5년 태자비로 딸을 바침
-김군관: 병부령을 역임, 문무왕 20년(680) 상대등 역임, 문벌에 의해 상대등에 오름
-김흠돌 세력과 관료세력간의 대립
-문무왕의 김흠돌 세력을 소외시키고자 함
-신문왕 즉위 직후 김군관의 퇴임후 진복을 상대등에 임명, 진복은 문무왕대 시중의 지위
⇒중시출신 귀족의 상대등 임명: 진골귀족의 성격을 왕권에 복속하는 존재로서 관료화 시키려는 의지
-문무왕은 유조로 신문왕에게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라고 명령
-신문왕 원년 8월 8일에 김흠돌의 난 발발
-김흠돌의 난 진압후 신문왕의 가담자 색출 살해-진골귀족세력을 탄압
-신문왕의 세력기반: 고굉(股肱):무열왕계, 김유신계, 6두품이하 관료집단
☆신문왕의 개혁정치
-군사제도의 개편: 시위부(侍衛府)의 개편-신문왕 원년 10월(681) 장군 6명을 둠
6정→9서당으로의 개편-왕의 직속 부대
-관료제도의 개편: 신문왕 2년-위화부의 령을 2인으로 함.-관료의 선발
국학의 설치, 경 1인을 둠-관료의 양성 배출
신문왕 5년(685)-제 4관직 사지(舍知)의 설치-5단계 관직제도 완성
-혼인 정책: 김흠돌의 딸을 출궁-아들이 없다는 이유
왕족 김씨의 족내혼(왕실혼인)-무열왕의 사위 김흠운의 딸과 혼인
왕족 김씨가 진골귀족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권력을 독점
-지방세력의 통제: 고구려 유민 안승 집단에 대한 관심
안승을 진골귀족에 편입, 왕경에 거주, 김씨의 성을 사성→고구려유민의 반란
9주 5소경제를 정비
-토지제도의 개편: 관료세력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경제제도의 필요
신문왕 7년(687)의 문무관료전-문무관료에게 차등있게 지급, 관직을 기준으로 지급
녹읍의 혁파: 진골귀족의 경제적 기반 약화, 관료전을 지급
녹읍과 세조의 체제→관료전과 세조의 체제
국가의 토지에 대한 지배가 강력해짐
-대구로의 천도계획-실패-잔여 진골귀족의 반발
-성덕왕대 전제정치의 극성기-만파식적으로 상징되는 평화
⇒ 왕권전제화를 확립
☆진골귀족의 반발
-효소왕대: 효소왕 6세의 나이로 즉위, 왕비의 섭정
국선의 실종, 만파식적, 현금의 분실, 혜성의 빈번한 출현-귀족세력의 움직임
집사부와 근위기구를 중심으로 개혁정치
외교적 변화: 효소왕8년(699) 당과의 조공 재개-중국의 문물, 제도를 흡수-왕권강화목적
사상적 변화: 법상종의 수용-6두품세력과의 연관. 화엄종과는 다른 측면의 왕권강화 기여
효소왕 9년(700) 이찬 경영(慶永)의 모반사건-진골귀족의 움직임
집사부 중시 김순원의 파면-왕당파세력의 패배
섭정중이던 모후의 죽음
김유신계를 포함한 세력기반의 인물들이 몰락
경영의 모반사건 2년 후 효소왕의 죽음-성덕왕의 즉위과정에 영향
-성덕왕대: 효소왕의 제(弟), 국인으로서 진골귀족의 추대
진골귀족의 영향-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
성덕왕5년 성복사탑을 건립
성덕왕 6년(707) 봉덕사-무열왕을 위한 사찰-전제왕권과 관련
성덕왕 10년 백관? 군신에게 제시-계명을 적은 것, 진골귀족에 대한 경고
불교에 대한 관심: 중대 유일한 불교식 왕명, 화엄종에 관심
유교 교육기관에 대한 관심
외교정책: 당나라와 빈번한 사신 파견- 13년(714) 통문박사 설치-외교문서 전담
재위 36년간 43회의 대당사신파견
왕당파세력의 지지-성덕왕의 후비로 딸을 바친 김순원
엄정황후(귀족세력대변)의 출궁사건-왕당파와 진골귀족의 충돌-진골귀족세력의 몰락
성덕왕 19년 김순원의 딸을 왕비로 삼음
정전의 지급
주변의 인물을 장군으로 임명
패강 이남 지역의 획득
⇒ 전제왕권의 극성기
-효성왕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즉위
재위 6년간 정치적 혼란
박씨 왕비와의 혼인-정치문제의 야기
모후세력-김순원세력의 실권장악-왕권을 제약-박씨세력에 관심
효성왕 3년(739): 신충을 시중으로 임명, 김순원 딸의 입궁, 헌영의 태자책봉
- 족내혼, 김순원세력의 정치정세에 밀접한 개입
효성왕 3년 김순영세력에 대한 반발- 8월 영종(첫번째왕비의 부(父))의 모반사건
2년 후 죽음
- 경덕왕(741): 왕당파 세력과 왕권강화책 실시
삼모부인의 출궁-무자를 원인-왕위계승권자의 확보
대당외교의 활발-왕권강화
관제개정-한화(漢和)정책 경덕왕 6년(747)-획일화된 관료제를 통한 왕권전제화
출궁당한 첫째 왕비세력의 반발-경덕왕 13년(754) 김옹의 반발
-상대등 사인이 경덕왕 15년 시정과 관련하여 왕에게 상소
왕당파 인물인 신충이 상대등으로 임명, 16년(757), 18년 한화정책
무열왕 5년(658), 7년(660): 중시-왕자 문왕, 상대등-김유신
-진골귀족의 불만 해소 정책을 시행했을 것: 진주를 병부령에 임명(문무왕 즉위 이후 제거)
○문무왕대 전제정치
-즉위 초기 진골귀족세력을 회유: 문무왕 원년(661), 8년에 모든 문무관의 관등을 하나씩 승진-문무왕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해 정치적 안정을 꾀한 것.
-진골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무열왕계의 전제정치를 확립시키려는 목적
-진골귀족들의 군사적 기반 박탈: 삼국통일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군사적이유로 진골귀족을 제거
문무왕 2년(662) 대당총관 진주, 남천주총관 진흠의 처형-전제정치를 반대하는 진골귀족에 대한 억압책
병부령의 제거는 전제정치의 확립을 위해 병권을 국왕직속으로 돌리 기 위한 조치
총관 출신 장군의 배반-문무왕이 군사적 측면에서 왕권강화책을 실시 했을 것이라는 추측
당시 6정의 성격-진골귀족이 군사적 실권을 행사하는 성격.→ 6정에 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귀족세력을 약화→9서당의 설치
사병의 혁파-‘주군의 병기를 거두어 농구를 만들라’ 문무왕의 유조
-관료질서의 확립: 기존 지방 통치체제-군정적 성격→행정일원화의 성격으로 전환
진골귀족세력에 대신하여 육두품이하 관료(학문적, 행정적능력)들에게 관심
법전의 정비, 행정관서의 정비-행정관료의 확충
율령체제의 대대적 정비-전제왕권을 법전화, 합법화
-삼국통일후 왕권강화의 집중: 대외전쟁의 성공을 바탕으로 하여 왕권강화를 위한 대내적 정치개혁으로 의 방향 전환
☆김흠돌의 난
-문무왕의 왕권강화책에 대한 진골귀족의 불만
-김흠돌: 문무왕 즉위초 大幢의 장군으로 임명, 고구려 정벌에 참여 군사적 활동
문무왕 5년 태자비로 딸을 바침
-김군관: 병부령을 역임, 문무왕 20년(680) 상대등 역임, 문벌에 의해 상대등에 오름
-김흠돌 세력과 관료세력간의 대립
-문무왕의 김흠돌 세력을 소외시키고자 함
-신문왕 즉위 직후 김군관의 퇴임후 진복을 상대등에 임명, 진복은 문무왕대 시중의 지위
⇒중시출신 귀족의 상대등 임명: 진골귀족의 성격을 왕권에 복속하는 존재로서 관료화 시키려는 의지
-문무왕은 유조로 신문왕에게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라고 명령
-신문왕 원년 8월 8일에 김흠돌의 난 발발
-김흠돌의 난 진압후 신문왕의 가담자 색출 살해-진골귀족세력을 탄압
-신문왕의 세력기반: 고굉(股肱):무열왕계, 김유신계, 6두품이하 관료집단
☆신문왕의 개혁정치
-군사제도의 개편: 시위부(侍衛府)의 개편-신문왕 원년 10월(681) 장군 6명을 둠
6정→9서당으로의 개편-왕의 직속 부대
-관료제도의 개편: 신문왕 2년-위화부의 령을 2인으로 함.-관료의 선발
국학의 설치, 경 1인을 둠-관료의 양성 배출
신문왕 5년(685)-제 4관직 사지(舍知)의 설치-5단계 관직제도 완성
-혼인 정책: 김흠돌의 딸을 출궁-아들이 없다는 이유
왕족 김씨의 족내혼(왕실혼인)-무열왕의 사위 김흠운의 딸과 혼인
왕족 김씨가 진골귀족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권력을 독점
-지방세력의 통제: 고구려 유민 안승 집단에 대한 관심
안승을 진골귀족에 편입, 왕경에 거주, 김씨의 성을 사성→고구려유민의 반란
9주 5소경제를 정비
-토지제도의 개편: 관료세력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경제제도의 필요
신문왕 7년(687)의 문무관료전-문무관료에게 차등있게 지급, 관직을 기준으로 지급
녹읍의 혁파: 진골귀족의 경제적 기반 약화, 관료전을 지급
녹읍과 세조의 체제→관료전과 세조의 체제
국가의 토지에 대한 지배가 강력해짐
-대구로의 천도계획-실패-잔여 진골귀족의 반발
-성덕왕대 전제정치의 극성기-만파식적으로 상징되는 평화
⇒ 왕권전제화를 확립
☆진골귀족의 반발
-효소왕대: 효소왕 6세의 나이로 즉위, 왕비의 섭정
국선의 실종, 만파식적, 현금의 분실, 혜성의 빈번한 출현-귀족세력의 움직임
집사부와 근위기구를 중심으로 개혁정치
외교적 변화: 효소왕8년(699) 당과의 조공 재개-중국의 문물, 제도를 흡수-왕권강화목적
사상적 변화: 법상종의 수용-6두품세력과의 연관. 화엄종과는 다른 측면의 왕권강화 기여
효소왕 9년(700) 이찬 경영(慶永)의 모반사건-진골귀족의 움직임
집사부 중시 김순원의 파면-왕당파세력의 패배
섭정중이던 모후의 죽음
김유신계를 포함한 세력기반의 인물들이 몰락
경영의 모반사건 2년 후 효소왕의 죽음-성덕왕의 즉위과정에 영향
-성덕왕대: 효소왕의 제(弟), 국인으로서 진골귀족의 추대
진골귀족의 영향-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
성덕왕5년 성복사탑을 건립
성덕왕 6년(707) 봉덕사-무열왕을 위한 사찰-전제왕권과 관련
성덕왕 10년 백관? 군신에게 제시-계명을 적은 것, 진골귀족에 대한 경고
불교에 대한 관심: 중대 유일한 불교식 왕명, 화엄종에 관심
유교 교육기관에 대한 관심
외교정책: 당나라와 빈번한 사신 파견- 13년(714) 통문박사 설치-외교문서 전담
재위 36년간 43회의 대당사신파견
왕당파세력의 지지-성덕왕의 후비로 딸을 바친 김순원
엄정황후(귀족세력대변)의 출궁사건-왕당파와 진골귀족의 충돌-진골귀족세력의 몰락
성덕왕 19년 김순원의 딸을 왕비로 삼음
정전의 지급
주변의 인물을 장군으로 임명
패강 이남 지역의 획득
⇒ 전제왕권의 극성기
-효성왕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즉위
재위 6년간 정치적 혼란
박씨 왕비와의 혼인-정치문제의 야기
모후세력-김순원세력의 실권장악-왕권을 제약-박씨세력에 관심
효성왕 3년(739): 신충을 시중으로 임명, 김순원 딸의 입궁, 헌영의 태자책봉
- 족내혼, 김순원세력의 정치정세에 밀접한 개입
효성왕 3년 김순영세력에 대한 반발- 8월 영종(첫번째왕비의 부(父))의 모반사건
2년 후 죽음
- 경덕왕(741): 왕당파 세력과 왕권강화책 실시
삼모부인의 출궁-무자를 원인-왕위계승권자의 확보
대당외교의 활발-왕권강화
관제개정-한화(漢和)정책 경덕왕 6년(747)-획일화된 관료제를 통한 왕권전제화
출궁당한 첫째 왕비세력의 반발-경덕왕 13년(754) 김옹의 반발
-상대등 사인이 경덕왕 15년 시정과 관련하여 왕에게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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