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2. 본 론
1) 史記란?
2) 司馬遷은 어떤 인물인가?
3) 史記의 구성
4) 가장 인상적인 내용
3. 결 론(소감)
4. 참고 문헌
2. 본 론
1) 史記란?
2) 司馬遷은 어떤 인물인가?
3) 史記의 구성
4) 가장 인상적인 내용
3. 결 론(소감)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니다.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은 친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주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 상을 주며 재주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그에 맞는 임무를 맡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공을 이루는 임금은 사람의 재능을 살펴 벼슬을 주고 이름을 빛내는 선비란 임금의 하는 바를 올바로 지적하여 임긍믈 섬기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왕께서는 보통 임금과는 달리 고매하고 뛰어난 생각을 지니셨던 것으로 아옵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과분한 지위를 주셨는데. 신은 과연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명령에 잘 따르기만 하면 큰 허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감히 사양치 않았던 것입니다.
현명한 임금은 공을 이루면 그것이 허물어지지 않으므로 그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며 현명한 선비는 이름을 세우면 그 이름을 해치는 일이 없으므로 후세까지 칭송된다고 합니다.
처음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끝맺음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오자서는 그의 의견이 합려왕에게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오나라가 멀리 초나라 서울까지 점령했지만 그 뒤를 이은 부차는 오자서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죽여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서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부차는 선왕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면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자서를 죽이고도 후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오자서는 두 임금의 도량이 같지 않았던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강물에 던져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공로를 세워서 선왕의 업적을 밝게 드러내는 것이 신하된 사람의 최상책이며 모욕적인 비방을 받고 선왕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경우입니다.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고도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난 뒤에도 허물을 임금에 돌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4) 연나라 태자 단이 국무와 나눈 대화 중에서
무릇 사람들은 위험을 초래하면서 안전을 구하고 화의 씨앗을 뿌리면서 행복을 원합니다. 또한 눈앞의 자그마한 일에 사로잡혀 원한을 사고 한 개인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국가의 커다란 해를 돌보지 않습니다. 지금 태자께서 하시려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진나라의 반감을 사고 화를 초래할 것은 필연적입니다.
전광 선생과 형가가 만나서 나눈 대화 중에서
부탁이 있어서 왔소. 나는 지금 태자의 부름을 받고, 만나고 오는 길이오. 그런데 태자께서는 젊은 시절의 나를 알고 있을 뿐 이렇게 늙은 사실을 모르고 계셨소.
연나라와 진나라은 두 나라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으셨소. 그래서 나는 당신을 추천했는데 만나주시면 고맙겠소.
전광 선생은 형가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태자 단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그만큼 그는 형가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가는 즉시 승낙했다. 그러자 전광이 말했다.
뛰어난 인물은 남에게 의심받는 일은 하지 않는 법이오. 그런데 태자는 나라의 큰 일에 관한 것이니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소.
이 말을 들은 나는 일단 태자의 의심을 받은 것이오. 남에게 내 행동을 의심받는다면 의사라 할 수 없소.
태자를 만나거든 이렇게 전해주시오. 전광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며, 비밀은 영원히 지켜졌다고.
말을 마친 전광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형가는 곧 태자를 만났다. 우선 전광의 자결과 그가 남긴 말을 전했다. 그러자 태자는 자리에서 내려오더니 엎드렸다.
전광 선생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당신을 만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이 연나라를 가련하게 생각하고 나를 버리지 않은 표시라 할 것입니다. 아시는 바대로 진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천하의 영토를 다 빼앗고 모든 나라의 왕을 신하로 굴복시킨다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15) <와신상담>
월왕 구천의 선조는 우왕의 후손으로 하후제 소강의 서자였다. 몸에 입묵을 했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만의 풍속을 따랐으며 황무지를 개척해 촌락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그 후 20여대가 지나고 윤상(윤상)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오왕 합려와 싸우기 시작했다. 윤상이 죽자 구천이 왕위를 계승했다. 윤상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오나라 합려왕은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침공하였다. 그러자 구천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오나라의 침략을 저지하고 나섰다.
오나라 군사를 맞이한 구천은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눈 후, 선발대를 오나라 진영을 향해 접근시켰다. 그런데 선발대의 행동은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오나라 진영을 향해 나아가던 그들은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다가 갑자기 자신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오나라 군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는 동안 제2대, 제3대도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였다.
오나라 군사들이 먼 곳에서 넋을 놓고 보고만 있는 동안 월나라 군사들은 오군의 뒤를 습격해 취리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오왕 합려 또한 손에 부상을 입었는데, 결국 그 부상이 악화되어 급기야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합려는 죽음에 이르러 아들 부차를 불러 이렇게 유언하였다.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 원수를 갚아다오.
부차는 굵은 눈물을 닦으며 다짐하였다.
불초자, 어찌 이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3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이후 부차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장작개비 위에서 자며 아버지 합려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군사력 강화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3년이 지나지 않아 부차가 밤낮으로 군사를 훈련시켜 월나라에 보복하려 한다는 소문이 구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에 구천은 오군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월을 치기로 하였다. 그러자 대신 범려가 간했다.
무기는 흉한 물건이며 전쟁은 덕에 거역하는 일입니다. 서로 다투는 것이야말로 가장 더러운 가치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천제께서는 은밀히 역덕을 꾀하고 흉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공격함은 이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구천은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켰다. 오왕부차는 이 소식을 듣고 정예병을 배치시켜 부초산에서 월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다. 대패한 구천은 패잔병 5천명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퇴각하였다. 오왕은 그 뒤를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은 친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주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 상을 주며 재주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그에 맞는 임무를 맡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공을 이루는 임금은 사람의 재능을 살펴 벼슬을 주고 이름을 빛내는 선비란 임금의 하는 바를 올바로 지적하여 임긍믈 섬기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왕께서는 보통 임금과는 달리 고매하고 뛰어난 생각을 지니셨던 것으로 아옵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과분한 지위를 주셨는데. 신은 과연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명령에 잘 따르기만 하면 큰 허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감히 사양치 않았던 것입니다.
현명한 임금은 공을 이루면 그것이 허물어지지 않으므로 그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며 현명한 선비는 이름을 세우면 그 이름을 해치는 일이 없으므로 후세까지 칭송된다고 합니다.
처음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끝맺음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오자서는 그의 의견이 합려왕에게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오나라가 멀리 초나라 서울까지 점령했지만 그 뒤를 이은 부차는 오자서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죽여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서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부차는 선왕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면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자서를 죽이고도 후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오자서는 두 임금의 도량이 같지 않았던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강물에 던져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공로를 세워서 선왕의 업적을 밝게 드러내는 것이 신하된 사람의 최상책이며 모욕적인 비방을 받고 선왕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경우입니다.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고도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난 뒤에도 허물을 임금에 돌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4) 연나라 태자 단이 국무와 나눈 대화 중에서
무릇 사람들은 위험을 초래하면서 안전을 구하고 화의 씨앗을 뿌리면서 행복을 원합니다. 또한 눈앞의 자그마한 일에 사로잡혀 원한을 사고 한 개인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국가의 커다란 해를 돌보지 않습니다. 지금 태자께서 하시려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진나라의 반감을 사고 화를 초래할 것은 필연적입니다.
전광 선생과 형가가 만나서 나눈 대화 중에서
부탁이 있어서 왔소. 나는 지금 태자의 부름을 받고, 만나고 오는 길이오. 그런데 태자께서는 젊은 시절의 나를 알고 있을 뿐 이렇게 늙은 사실을 모르고 계셨소.
연나라와 진나라은 두 나라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으셨소. 그래서 나는 당신을 추천했는데 만나주시면 고맙겠소.
전광 선생은 형가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태자 단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그만큼 그는 형가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가는 즉시 승낙했다. 그러자 전광이 말했다.
뛰어난 인물은 남에게 의심받는 일은 하지 않는 법이오. 그런데 태자는 나라의 큰 일에 관한 것이니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소.
이 말을 들은 나는 일단 태자의 의심을 받은 것이오. 남에게 내 행동을 의심받는다면 의사라 할 수 없소.
태자를 만나거든 이렇게 전해주시오. 전광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며, 비밀은 영원히 지켜졌다고.
말을 마친 전광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형가는 곧 태자를 만났다. 우선 전광의 자결과 그가 남긴 말을 전했다. 그러자 태자는 자리에서 내려오더니 엎드렸다.
전광 선생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당신을 만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이 연나라를 가련하게 생각하고 나를 버리지 않은 표시라 할 것입니다. 아시는 바대로 진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천하의 영토를 다 빼앗고 모든 나라의 왕을 신하로 굴복시킨다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15) <와신상담>
월왕 구천의 선조는 우왕의 후손으로 하후제 소강의 서자였다. 몸에 입묵을 했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만의 풍속을 따랐으며 황무지를 개척해 촌락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그 후 20여대가 지나고 윤상(윤상)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오왕 합려와 싸우기 시작했다. 윤상이 죽자 구천이 왕위를 계승했다. 윤상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오나라 합려왕은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침공하였다. 그러자 구천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오나라의 침략을 저지하고 나섰다.
오나라 군사를 맞이한 구천은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눈 후, 선발대를 오나라 진영을 향해 접근시켰다. 그런데 선발대의 행동은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오나라 진영을 향해 나아가던 그들은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다가 갑자기 자신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오나라 군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는 동안 제2대, 제3대도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였다.
오나라 군사들이 먼 곳에서 넋을 놓고 보고만 있는 동안 월나라 군사들은 오군의 뒤를 습격해 취리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오왕 합려 또한 손에 부상을 입었는데, 결국 그 부상이 악화되어 급기야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합려는 죽음에 이르러 아들 부차를 불러 이렇게 유언하였다.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 원수를 갚아다오.
부차는 굵은 눈물을 닦으며 다짐하였다.
불초자, 어찌 이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3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이후 부차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장작개비 위에서 자며 아버지 합려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군사력 강화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3년이 지나지 않아 부차가 밤낮으로 군사를 훈련시켜 월나라에 보복하려 한다는 소문이 구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에 구천은 오군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월을 치기로 하였다. 그러자 대신 범려가 간했다.
무기는 흉한 물건이며 전쟁은 덕에 거역하는 일입니다. 서로 다투는 것이야말로 가장 더러운 가치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천제께서는 은밀히 역덕을 꾀하고 흉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공격함은 이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구천은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켰다. 오왕부차는 이 소식을 듣고 정예병을 배치시켜 부초산에서 월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다. 대패한 구천은 패잔병 5천명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퇴각하였다. 오왕은 그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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