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자기철학화의 과정
Ⅱ. 도덕적 개념의 발생과 목적, 그리고 양심의 가책의 기원
Ⅱ. 도덕적 개념의 발생과 목적, 그리고 양심의 가책의 기원
본문내용
기본적으로 타자他者에 의존하며 살 수 밖에 없는―의존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조한 부분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는 분명 다수의 개인의 모인 집단이지만 개인의 의지와 목소리, 의견과 이해관계보다는 공동체 스스로의 목적을 더 우선시한다. 여기서 문제는 발생하게 된다. 공동체―대표적으로 국가를 들 수 있다―는 보다 많은 이른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하기 때문에 동시에 소수나 개개인을 억압하고 강제하며 구속하는 기재로서 작용한다. 그것이 이른바,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회정의이자 사회질서이다. 개인이 삶을 영위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전술하다시피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등에 대해 공동체로부터 도움과 보호를 받지만. 그것의 대가로서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와 개인의 일종의 계약관계-후술後術하겠지만 역시 위계적이고 수직적이다-라는 상호간의 약속이 깨졌을 때는 개인은 더 이상공동체가 주관하며 보호했던 영역에 머물 수 없게 된다.(Nietzsche는 그것을 ‘추방’이라고 표현한다) 즉, 다시 말해서 공동체는 일종의 채권자가 되는 것이고-강력한 권위와 힘으로 강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개인은 채무자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는 그 권력이 커짐에 때라, 개인의 위배違背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와 같이 공동체의 이른바 질서(약속)를 깨뜨린 경우에는 공동체의 유지-즉, 와해나 혼란의 방지-를 위해서 단호하게 처벌했지만 공동체 자체의 위력이 더욱 커지면, 그런 것은 더 이상 위험 요소가 되지 않지 때문이다. 오히려, 범죄자(채무자)를 보호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등가물로써 사건을 원만히 처리하거나 해결하고 범죄자와 범죄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변화가 나타난다.(이러한 특징은 형법이 발달함에 따라 눈에 띄게 명확해진다) 공동체는 권력과 자신이 증대함에 때라 형법에 대해서도 현재보다 그 엄격함을 완화시키지만, 그 자신이나 권력이 약화되었을 때는 다시금 준엄한 모습을 띄게 된다.(Nietzsche의 이러한 견해는 탁견卓見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일례로 우리나라의 제1공화국, 3공, 4공, 5공화국 때를 생각해보면 그 이해가 더욱 빠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 그리고 관용과 이해는 강대한 권력을 가진 공동체의 오만한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Nietzsche는 ‘고귀한 사치’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의 도덕적 개념의 기원과 발생, 목적 등에 살펴보았다. 이제 끝을 맺으면서 ‘양심의 가책’의 기원에 관한 Nietzsche의 탁견으로 마무리를 하려한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인간이 일찍이 체험한 모든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저 변화의 압력 때문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던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행해진다-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인간의 <내면화Verinnerlichung>라는 것이다. 이에 의해서 인간은 비로소 훨씬 후에 <영혼>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개발해냈다. 원래는 두 개의 얇은 피부막 사이에 펼쳐진 것처럼 빈약했던 저 전체 내면세계는, 인간본능의 밖으로의 발산이 저지됨에 따라 더욱 더 분화되고 팽창되었다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얻게 되었다. 낡은 자유의 본능에 대해서 정치조직(국가)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구축해 놓은 저 무서운 방벽―형벌도 이러한 방벽 중의 하나이지만―은 거칠고, 자유롭고, 방랑적인 인간의 저 모든 본능이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적의, 잔인, 박해, 공격, 변혁과 파괴의 쾌락, 이것이 바로 <양심의 가책>의 기원인 것이다.y
공동체는 그 권력이 커짐에 때라, 개인의 위배違背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와 같이 공동체의 이른바 질서(약속)를 깨뜨린 경우에는 공동체의 유지-즉, 와해나 혼란의 방지-를 위해서 단호하게 처벌했지만 공동체 자체의 위력이 더욱 커지면, 그런 것은 더 이상 위험 요소가 되지 않지 때문이다. 오히려, 범죄자(채무자)를 보호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등가물로써 사건을 원만히 처리하거나 해결하고 범죄자와 범죄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변화가 나타난다.(이러한 특징은 형법이 발달함에 따라 눈에 띄게 명확해진다) 공동체는 권력과 자신이 증대함에 때라 형법에 대해서도 현재보다 그 엄격함을 완화시키지만, 그 자신이나 권력이 약화되었을 때는 다시금 준엄한 모습을 띄게 된다.(Nietzsche의 이러한 견해는 탁견卓見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일례로 우리나라의 제1공화국, 3공, 4공, 5공화국 때를 생각해보면 그 이해가 더욱 빠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 그리고 관용과 이해는 강대한 권력을 가진 공동체의 오만한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Nietzsche는 ‘고귀한 사치’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의 도덕적 개념의 기원과 발생, 목적 등에 살펴보았다. 이제 끝을 맺으면서 ‘양심의 가책’의 기원에 관한 Nietzsche의 탁견으로 마무리를 하려한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인간이 일찍이 체험한 모든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저 변화의 압력 때문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던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행해진다-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인간의 <내면화Verinnerlichung>라는 것이다. 이에 의해서 인간은 비로소 훨씬 후에 <영혼>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개발해냈다. 원래는 두 개의 얇은 피부막 사이에 펼쳐진 것처럼 빈약했던 저 전체 내면세계는, 인간본능의 밖으로의 발산이 저지됨에 따라 더욱 더 분화되고 팽창되었다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얻게 되었다. 낡은 자유의 본능에 대해서 정치조직(국가)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구축해 놓은 저 무서운 방벽―형벌도 이러한 방벽 중의 하나이지만―은 거칠고, 자유롭고, 방랑적인 인간의 저 모든 본능이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적의, 잔인, 박해, 공격, 변혁과 파괴의 쾌락, 이것이 바로 <양심의 가책>의 기원인 것이다.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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