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세상을 구할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윤세명이라는 사람 때문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무런 목적의식이나 희망도 찾지 못한채 인당수에 몸을 던졌더라면 그의 행위는 정말 무의미했을 것이다. 심청이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세상이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적인 모습이겠지만 폭력과 불신, 무관심, 물질숭배에 찌든 이 세상의 눈을 다시금 밝게 뜨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Ⅲ. 결론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란 작품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페이퍼를 준비하면서 오태석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너에게 연극은 무엇이며 네가 보여주는 그 해괴하고 낯선 연극의 형식들은 대체 무엇을 뜻하느냐』고.
내게 연극은 「사람들 사이 말길을 터주는 꺼리」다.
장마가 졌을 때 농사일을 걱정하며 농사꾼 부부가 나누는 대화처럼 내 연극이 사람 사이에 다정하고 소박한 얘깃거리가 됐으면 한다. 컴퓨터프로그래머인 남편이 하루종일 컴퓨터에 시달리다 돌아와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마음의 벽은 높아지고 더불어 「말」도 사라진다. 그들이 내가 만든 「이상한」 연극을 보고 서로의 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겠다.
「틈」. 그래서 나는 내 연극에 틈을 많이 남긴다. 생략하고 비약시킨다. 연극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내가 즐겨쓰는 이 생략과 비약의 방식 때문에 퍽 당황해하고 낯설어 한다.
이 작품속에는 우리가 전날 밤 9시 뉴스를 보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 친구들끼리 "어제 그 사건 봤냐?" 라고 말하듯 전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어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 곳곳에 틈을 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이슈에 대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사회적으로는 크고 심각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인 얘기들이다.
자칫 고전이라는 생각에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기 어려운 [심청전]이란 작품을 독자들 또는 관객들로 하여금 심청이가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진 이유에 대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다. 이렇게 작가가 터준 길에 대해서 나는 세상의 눈을 뜨게 하려고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고 자연스럽게, 아니 자유롭게 답변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이며 멍든 양심으로 구조화되어 가는 사회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로운 대화를 유도하듯 서로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ference
1.
http://blog.naver.com/aura80.do?Redirect=Log&logNo
=80002291340 오태석, 공연예술
2.
http://cafe.naver.com/sisacaf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
=249 시사회나눔터
이러한 그의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윤세명이라는 사람 때문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무런 목적의식이나 희망도 찾지 못한채 인당수에 몸을 던졌더라면 그의 행위는 정말 무의미했을 것이다. 심청이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세상이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적인 모습이겠지만 폭력과 불신, 무관심, 물질숭배에 찌든 이 세상의 눈을 다시금 밝게 뜨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Ⅲ. 결론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란 작품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페이퍼를 준비하면서 오태석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너에게 연극은 무엇이며 네가 보여주는 그 해괴하고 낯선 연극의 형식들은 대체 무엇을 뜻하느냐』고.
내게 연극은 「사람들 사이 말길을 터주는 꺼리」다.
장마가 졌을 때 농사일을 걱정하며 농사꾼 부부가 나누는 대화처럼 내 연극이 사람 사이에 다정하고 소박한 얘깃거리가 됐으면 한다. 컴퓨터프로그래머인 남편이 하루종일 컴퓨터에 시달리다 돌아와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마음의 벽은 높아지고 더불어 「말」도 사라진다. 그들이 내가 만든 「이상한」 연극을 보고 서로의 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겠다.
「틈」. 그래서 나는 내 연극에 틈을 많이 남긴다. 생략하고 비약시킨다. 연극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내가 즐겨쓰는 이 생략과 비약의 방식 때문에 퍽 당황해하고 낯설어 한다.
이 작품속에는 우리가 전날 밤 9시 뉴스를 보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 친구들끼리 "어제 그 사건 봤냐?" 라고 말하듯 전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어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 곳곳에 틈을 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이슈에 대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사회적으로는 크고 심각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인 얘기들이다.
자칫 고전이라는 생각에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기 어려운 [심청전]이란 작품을 독자들 또는 관객들로 하여금 심청이가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진 이유에 대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다. 이렇게 작가가 터준 길에 대해서 나는 세상의 눈을 뜨게 하려고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고 자연스럽게, 아니 자유롭게 답변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이며 멍든 양심으로 구조화되어 가는 사회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로운 대화를 유도하듯 서로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ference
1.
http://blog.naver.com/aura80.do?Redirect=Log&logNo
=80002291340 오태석, 공연예술
2.
http://cafe.naver.com/sisacaf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
=249 시사회나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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